
[점프볼=강현지 기자] “나 말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 인터뷰 해줘요.” 2019 KUSF U-리그 여대부 전반기가 한창인 어느날. 박현은 코치(60)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보다는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더 조명해달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졌다. 강아정(KB스타즈)과 박혜진(우리은행), 안혜지(BNK) 등 팀의 주전을 꿰찬 부산 출신 여자선수들을 길러냈으며, 부산대 역시 그를 만나면서 여대부를 휩쓸고 있다. U-리그 전반기에 이미 1위를 확정지었다. 과연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지 듣고 싶었다.
(※ 본 인터뷰는 8월 16일에 개막한 제35회 MBC배 전국대학농구 상주대회 시작 전에 진행됨을 알려드립니다.)
Q. 1992년부터 동주여상을 맡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도자 경력이 어마어마한데요(웃음).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원래부터 지도자로서의 꿈이 있었던 것일까요?
은퇴 후 국민은행에서 근무를 하다가 당시(1992년 2월) 배태경 은사님이 도와달라고 하셔서 (동주여상으로) 가게 됐어요. 사실 그 전에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9개월 정도 있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잠시 쉬다가 해운대초등학교에 자리가 나서 코치 생활을 이어갔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네요. 허만덕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대신초 농구부를 창단하면서 그곳에서도 8년 정도 있었죠. 동주여중에서도 1년 정도 있었고요. 강아정, 박언주, 안혜지 등은 제가 발굴한 선수들이죠. 아, 박혜진도 있어요.
Q. 강아정 선수가 동주여상에 있을 때 4명이서 뛰며 우승을 일궜다는 내용을 기사로 본 적이 있습니다. 엔트리에 9명밖에 없어 자체 연습도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고요.
가르치는 건 어려움이 없었는데, 선수 수급에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스트레스였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오히려 지금이 더 심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요즘은 다행인 게 부산에 BNK가 창단하면서 희망이 생긴 것 같아요. 프로팀이 생기다 보니 인식이 좋아진 것 같더라고요.
Q. 강아정 선수의 경우는 코치님께 특별한 제자기도 하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프로에 갈 때까지 지도를 하셨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아정 선수가 ‘엄마같은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때 스카우트를 해서 중,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죠. 7~8년을 함께했는데, 그렇게 한 선수를 오래 본 경우도 드물 거예요. 그때 ‘농구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라고 했는데, 아정이는 신장도 있고, 똘똘하게 생겨서 스카우트 했죠.

Q. 박혜진 선수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요?
어릴 때부터 언니한테 이기려고 했어요(웃음). (박)언주는 순하고, 책임감이 강했죠. 공부도 잘했어요. 반면, 혜진이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에 매달렸어요.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였을 거예요. 언주가 5학년 2학기때 왔으니까요. 언주와 혜진이 학년 선수들이 농구를 잘했어요. 성적도 좋았고, 자기들끼리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면서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고 했죠.
Q. 대학리그 전반기에 강아정, 안혜지, 유현희 등이 부산대를 찾았잖아요. 인사도 드리고, 후배들에게도 맛있는 걸 사주러 부산까지 찾아왔는데, 뿌듯했을 것 같아요.
아정이 뿐 아니라 선수들이 자주 찾아와요. 옛날이야기를 하면 재밌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으니 제가 무서웠겠죠. ‘선생님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는데, 그때는 선생님이었고, 애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지금은 같은 사회인이고요(웃음).
Q. 남성 지도자들 사이에서 롱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습니다. 이 주제로 언젠가 연가초 임혜영 코치, 성남수정초 이미정 코치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하다 보니 제가 가장 오래된 것 같아요. 임혜영 선생님과도 초등학교 때 같이 있었는데, 한 자리에서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실업, 아마, 대학 팀 등 여러 곳에 있었지만, 그분은 꾸준히 연가초를 지키고 있잖아요. 남자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어딜 가면 5년을 해야지, 10년을 해야지 한 적이 없어요. 1년 만을 바라보고 한 거죠. 그러다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근데 동주여고에서 하다 보니 어느덧 제 나이가 56세 정도 됐더라고요. 학생들 훈련시키는데 (체력적으로) 한계도 오고요. 본 연습을 하고, 야간 연습을 하는데, 쉬려고 누우면 피곤하고, 아이들에게 등한시 하는 것 같아 잠시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게 2013년이에요. 미국에서 김화순 코치가 들어올 무렵이었죠.
Q. 그렇게 잠시 쉬셨나요?
원래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부산시 체육회에서 실업팀을 맡아달라고 했죠. 여태껏 실업팀을 두 번 했었어요. 처음에는 부산/경남 농구협회 회장님이 서원유통이라는 마트를 하셨는데, 거기서 농구부를 창단하셨어요. 그때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선수로 뛰었죠. 그때가 42살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부산시 체육회에서 2번째였죠. 하지만 1년 정도 하다가 손을 뗐어요. 이후에 스포츠 강사도 하고, 제 모교인 초당초에서 재능기부도 했어요. 농구공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죠.

Q. 2016년 종별선수권 출전을 앞두고 부산대 코치로 부임하셨습니다. 그해는 준우승, 2017년에는 우승을 거두시며 돌풍을 일으켰는데, 어떻게 부산대로 오시게 됐나요?
동주여상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있는데, 부산대에서 종별선수권 열흘 정도를 정도 앞두고 연락이 왔어요. (이준호)감독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고 전국체전까지만 도와 달라고 하셨어요. 처음에 광주대에게 져서 준우승에 그쳤어요. 하지만 2017년에는 우승을 거뒀죠. 이후에는 참가팀이 없어서 나가지 못했어요. 전국체전만 나가서는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카오 대회(2018년, 준우승)에 나가기도 했는데, 선수들을 위해서는 경기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선수들을 지도해보니 어떤가요? 아무래도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선수들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선수들이 있다 보니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학교 자체가 운동도 운동이지만, 학업에도 역할을 다해야 교원 자격증이 나와요. 저는 선수들 운동에만 신경을 썼어요. 교수가 되겠다, 혹은 다른 직업을 알아보겠다고 말하는 선수들도 있지요. 하지만 부산대 농구부에서 선수들을 뽑은 건 ‘농구할 선수’를 뽑은 거잖아요. 물론 선수들도 힘들 겁니다. 공부도 해야하고, 수업도 들어가야 하고, 과제도 해야 하잖아요. 게다가 리그가 홈&어웨이로 치러지다보니 다 힘들어했죠. 저도 그랬고요.
Q. 대학리그에는 처음으로 출전했는데, 장기 레이스를 치러보니 어떤가요?
저도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홈&어웨이는 처음이었고, 경기 수가 늘어났잖아요. 덕분에 선수들은 실력이 늘었어요. 처음에는 경험 부족을 걱정했어요. 저희는 운동은 해왔어도 경기수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팀에도 경기를 많이 뛰어본 선수가 (이)지우 뿐이었어요. 게다가 수업 일정이 있다 보니 훈련을 많이 못 했어요. 딱 두 시간 반 정도했죠. ‘두 시간을 다섯 시간이라고 생각하자’며 선수들과 훈련했어요. 애들이 힘들다고 하면 ‘그래도 우리는 두 시간 반밖에 안 하잖아~’라고 해요. 그럼 선수들이 ‘두 시간이 다섯 시간 같다’고 하죠(웃음). 운동 중에는 쉬는 시간을 안주거든요.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선수들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요. 전반에 시소를 타다가도, 후반에는 ‘지면 우린 죽는다’는 마음으로 뛰어요.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길겠어요. 하하.
Q. 조직적인 움직임을 강조하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습니다.
왜 5명이냐. 단체종목이잖아요. 팀플레이를 하되 개인기는 본인이 연습을 해야 해요. 훈련 시간이 짧은데 많은 걸 하기 쉽지 않거든요. 스스로 하는 운동을 했으면 하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아요. 과제도 늦게까지 한다는데 강요를 할 순 없잖아요. 지금 강조하는 건 본인이 찾아서 하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너희들끼리 재밌게 운동을 해봐라’라고 이야기하죠. 지금 보시면 코트에서 제 고함 소리가 제일 클걸요(웃음). 예전에는 선수가 많아서 언니들이 운동하면 동생들은 코트 밖에서 드리블 치고, 훈련을 했는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어요. 기초가 없는데, 집을 어떻게 짓겠어요. 그러다 보니 실력이 빨리 안 느는 부분도 있죠. 안타까운 부분인데, 최대한 시간을 쪼개서 알려주려고 해요.
Q. 아참, 코치님, 축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정규리그 1위 확정, 축하드립니다(웃음).
사실 한림성심대에게 참 미안했어요. 그날 아나운서가 경기 전에 와서 ‘오늘은 1위 확정이니까 꼭 인터뷰 해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안 하려고 하는데, 1위라고 꼭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 시즌 처음으로 방송 인터뷰를 했던 것 같아요. 선수들에게 경기 전에 1위 확정 경기라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아마 아나운서 분도 의아했을 거예요. 선수들이 크게 기뻐하지 않았거든요. 후반기 남은 2경기가 홈이니, 홈에서 축하파티를 하려고요. (인터뷰 이후 부산대는 제35회 MBC배 전국대학농구 상주대회에 처음으로 출전, 용인대와의 결승전에서 박인아와 이지우, 이주영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다.)

Q. 후반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1위를 확정 지었습니다. 목표는 통합 우승일까요?
전국체전과 플레이오프를 남겨두고 있어요. 10월 말까지는 빡빡할 것 같은데, 애들이 ‘전승’이라고 목표를 말했더라고요. 그럼 책임을 져야죠(웃음). 더 열심히 해야 할 거예요. 경기를 다 한 번씩 해봤고, 전력들이 다 파악됐으니 모두 우승을 목표로 임하겠죠. 저도 목표를 우승으로 잡고,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Q. 동주여상에서 예비 스타들을 발굴할 때와는 달리, 여자 농구의 환경이 전체적으로 안 좋아졌어요. 여대부는 더 힘들 거 같은데, 여대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 있는 팀이라도 잘 유지되었으면 해요. 용인대도 농구부가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극동대의 경우는 선수가 없다고 하고요. 고등학교 선수는 실력이 조금만 있으면 대학을 거치지 않고 프로를 가는데, 우리도 남대부처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러다 특출난 선수는 조기 진출로 (프로에) 내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프로에 곧장 가면 좋긴 하지만, 당장 그 선수들이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경기 출전을 하는 경우도 드물잖아요…. 이제는 대학리그도 있으니 선수들이 대학진학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코치로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세요?
환갑이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 물어봐요. 제 스타일이 앉아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힘이 부치긴 해요. (경기를)할 때는 모르겠는데, 하고 나면 힘들거든요. 앞으로 1년을 할지, 2년을 할지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찾아줄 때까지 코트에 있고 싶어요. 최종 목표는 꼭 팀을 맡지 않더라도 꿈나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대회 성적에 연연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받고, 건강도 안 좋아지고 했는데, 나중에 누군가가 ‘선생님 초등학교에서 1주일 정도만 기초 좀 알려주세요’라고 말할 때 가서 알려주고 올 수 있는 것처럼요.
Q. 마지막으로 제자들, 후배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살다 보니 세월은 가요. 시간은 가죠. 그 시간 안에 집중하고, 전진하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결과가 나오거든요. 꼭 공부가, 농구가 아니더라도 그래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목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현은 코치는?
1959년 3월 3일생인 박현은 코치는 90년대 초반, 모교 동주여상 코치로 부임해 부산 해운대초, 대신초, 동주여중을 거쳐 동주여상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실업팀 지휘봉을 잡은 적도 있지만, 그는 대부분 유망주들과 생활했다. 박정은, 변연하, 강아정의 재능을 이끌어 낸 것도 박 코치이며, 박혜진, 안혜지, 유현희 등 부산 출신 여자농구선수들 대부분을 지도하기도 했다. ‘부산농구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 소속팀 부산대에는 2016년 종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부임했다.
사진_박상혁, 한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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