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감독, 노장… 나이에 대한 인식변화 필요하다

김종수 / 기사승인 : 2022-03-18 22: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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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명 대사중 하나다. 우리 사회는 종종 여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은퇴를 강요하기도 한다. '모두를 위해서'라는 이유가 두루뭉술하게 언급되는 가운데 대놓고 거부라도 하게 되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이는 육체 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포츠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년을 훌쩍 넘어서야 나이를 먹었다는 말을 듣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스포츠계에서는 30대 중반 정도만 되도 노장 취급을 받는다. 농구 쪽 역시 다르지 않다. 체계적 시스템, 몸 관리 등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선수 생명이 길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노장 축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눈치가 보이는게 사실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은 은퇴 후 삶을 살아가고 있는 K씨는 “운동선수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은퇴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잘 뛰고 있는데도 물러날 때가 됐다는 식의 말을 듣거나 분위기가 형성되면 많이 서글프다. 예전 선배들이 그랬고 나도 겪었다. 세대교체라는 명분도 자주 언급되지만 사실 이것저것 복잡하게 할 것 없이 후배가 실력으로 선배를 밀어내면 된다. 많은 노장들이 바라는 것은 나이가 들었어도 써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다”고 말했다.
 


노장의 올바른 활용, 팀전력 올린다

‘나이를 먹었으면 알아서 물러나야지’ 등 노장을 죄인 취급하는 풍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가 선수 말년 구단과 얼굴을 붉히고 불명예스럽게 혹은 기분 나쁘게 은퇴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고 얼핏 보기에는 별일 없는 듯 보이지만 후에 인터뷰 등을 통해서 당시의 서운했던 감정을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여전히 국내 농구계에는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농구 선진국 미국같은 경우 없는(?) 스토리도 만들어낸다. 현역 선수는 물론 은퇴한지 한참 지난 이들까지 수시로 소환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는 다양한 흥밋거리로 끊임없이 재창출되고 리그 흥행의 중요한 요소중 하나로 작용한다. 우리도 이러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내 실정에 맞게 잘 가공, 발전 시켜야된다는 의견도 많다.


물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만만치않은 존재감을 보이며 노장의 품격의 선보이는 선수도 있다. 김동욱, 함지훈, 양희종, 김영환, 이현민, 이정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여전히 팀내 전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며 인정을 받고 있다.


노장들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해서는 지도자들은 물론 선수 스스로도 생각해볼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다. 노장들에게는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와 더불어 젊은 선수들을 다독이며 팀분위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있다. 노련한 감독은 이러한 부분에서 노장의 쓰임새를 잘가져 간다. 팀 운영은 물론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장들 같은 경우 기술적인 부분에서야 크게 다운될 일이 적겠지만 육체적 전성기가 지나고 있는 관계로 기동성, 체력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잦다. 이른바 에너지 레벨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수비에서 특히 문제가 되기 십상이다. 팬들 사이에서 혹평이 쏟아져나오는 베테랑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비는 활동량과도 밀접한 관계가 깊은지라 아무래도 노장이 젊은 선수들만큼 수비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노장 또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득점에서의 공헌도를 앞세워 ‘난 아직 쌩쌩한데’라며 선발 혹은 많은 출장시간을 욕심내는 경우도 있지만 승패는 공격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10득점을 하더라도 15실점을 허용하면 팀 입장에서는 마이너스다. 그 과정에서 본인으로 인해 생긴 수비 구멍을 메우러 다른 선수들이 고생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노장들도 이런 부분을 감안해 출전 시간 욕심, 선발 욕심 보다는 중요한 순간에 투입되는 조커나 소방수 역할로 변화를 주면서 효율성을 보여주는게 좋다. 자신의 단점은 인정하지 않은채 무리한 욕심으로 일관할 경우 장기레이스에서 체력문제가 유발된다. 이로인해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등 응원하던 팬들마저도 등을 돌리고 세대교체를 외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선수 시절 말년 김주성이 모범사례다. 당시 김주성은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공수에서 위협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을 아껴가며 주로 후반에 투입됐는데 동료들에게는 든든함을 상대팀에게는 두려움을 안겨주는 선수로 존재감을 떨쳤다.
 


한국의 포포비치 탄생은 가능할까?

노장 선수 못지않게 노감독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는 의견도 많다. 최근 프로 무대에서는 노감독을 찾아보기 힘든 추세다. 감독의 연령층은 지속적으로 젊어지고 있지만 이른바 산전수전 다겪은 노송 캐릭터는 사라져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베테랑 선수에게 그렇듯이 감독 역시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물러나야된다는 인식이 생겨나고있는 분위기다.


사실 감독은 선수처럼 신체능력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장기레이스에서 선수단을 이끌려면 기본적인 체력은 있어야겠지만 직접 뛰는 것은 아닌지라 신체적 노쇠화하고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구단은 나이 많은 감독을 쓰기를 꺼려한다. ‘나이를 먹으면 젊은 트랜드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등 미리 선입견을 가지기보다는 해당 인물을 직접 겪고 판단하면 될 일이다.


물론 새로운 얼굴이 지도자로 들어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지 특정 인물들이 장기집권을 하게 되면 이른바 ‘고인물’같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좋지않다. 나이를 따지지 않고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면 서로 경쟁하는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신예 감독같은 경우 지휘봉을 잡기 이전에 충분한 준비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경험적인 측면이 얇다보니 여러 가지 예기치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미숙하고 팀 장악차원에서도 나이차가 많지않는 고참급 선수들과 신경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히려 신세대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 같은 젊은 감독들이 권위적인 행태로 선수단을 휘어잡으려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역효과로 이어져 팀 분위기를 망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례까지 생겨난바있다


선수 시절 이름 값을 무기로 일찍 프로무대에 뛰어든 상당수 젊은 감독들 같은 경우 성공보다는 실패한 케이스가 많은게 사실이다. 선수는 신입시절 다소 못하더라도 성장 가능성이라도 기대 받는다. 감독은 다르다. 당장 성적을 내기를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 발표는 리빌딩에 신경을 쓰겠다고해도 정작 성적이 나쁘면 어느새 자진사퇴 등의 형식으로 내보내버린다. 그렇게해서 일찌감치 싹이 잘려버린 젊은 감독도 적지않다. 한번 그렇게 실패한 인상을 주면 다른 팀에서도 선뜻 영입하기가 꺼려진다. 감독에 앞서 충분한 경험이 아쉬운 이유다.


프로에서 감독을 역임한 모 농구인은 여기에 대해 “상당수 구단은 감독을 믿어주는 기간이 너무 짧다. 누가봐도 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해당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펼칠 수 있게 여유를 주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전에 성적을 냈던 감독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감독이 조급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제대로 능력을 펼치기가 쉽지않다. 특정선수 혹사, 세대교체 등은 팬들 사이에서도 수없이 대두되는 사안이다. 누군들 성적을 내가면서 신예들까지 키우고싶지않겠는가. 감독도 개인적으로는 직장인인지라 성적의 압박이 들어오면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해 특정선수만 고집할 수밖에 없게되고 폭넓은 선수기용이 어려워진다. 한경기 한경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팀의 미래나 프랜차이즈에 대한 대우를 생각할 틈이 어디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한때 LG의 공격농구를 주도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김태환 전 감독은 특정 스타에 의지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는 팀 전체의 틀을 단숨에 바꿔버리는 파격적 행보를 통해 눈길을 끌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현재도 드문 스타일의 감독이었다. 하지만 SK를 이끌 당시 게이브 미나케의 부상과 함께 당초 구상해놓았던 팀 플랜이 일그러졌고 결국 더 이상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프로무대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기아 왕조를 이끌어왔고 이후 SK의 첫우승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최인선 전 감독 또한 암수술 이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감독 복귀를 꿈꿨으나 ‘표면적으로는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적지않은 나이에 감독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각 구단의 의구심과 함께 더 이상 지휘봉을 잡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금까지도 별다른 건강문제없이 캐나다에서 시니어 골프 지도자로 활동하는 등 왕성하게 살고 있다. 검증된 인물들에게마저도 이럴진데 이것저것 폭넓게 장기적 계획을 세워 끌고 갈 수 있는 감독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긴 시간 동안 유재학 감독과 동행하고있는 울산 현대모비스는 훌륭한 선례를 남기고 있다. 기본적으로 유감독의 능력이 뛰어난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구단은 꾸준하게 신뢰를 줬고 이는 역대 최다승 구단으로 올라서는 계기가 됐다. 감독으로서 뒤가 불안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데로 플랜을 펼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스타 양동근의 은퇴 이후 최강자 자리에서는 잠시 내려선 상태지만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향후 미래는 밝은 편이다. 유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키우면서 노장까지 잘 활용하는 등 자신의 농구를 여전히 잘 펼치고 있다. 유독 현대모비스에서 신예들이 잘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타팀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1949년생) 감독은 정규리그 통산 역대 최다승 신기록을 작성했다. 1996년부터 샌안토니오에서만 26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그는 NBA 사상 단일팀 최장기간 감독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바로 스토리다. 샌안토니오 팬들은 역대 어떤 프랜차이즈 스타못지않게 포포비치를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 과거 김동광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2번째 들어왔을때 60살이 넘은 나이 때문에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비교되는 부분이다.


최근 농구계에서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인기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가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노장, 노감독에 대한 인식변화와 공존의 해법을 찾아보는 것 또한 중요한 키포인트임은 분명해보인다. 스토리와 역사는 단순히 시간만 흐른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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