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년이여, 전설이 되어라…‘현실판 강백호’ 다니엘이 쓰는 KBL의 새 역사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3 06: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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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와, 저 아이는 최소 200cm까진 크겠는데요!?” 2019년 11월의 어느 날, 잠실학생체육관이 한 소년의 등장과 함께 술렁였다. 톡톡 튀는 헤어스타일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서울 SK의 연고 지명 행사에 임한 이 초등학생의 키는 이미 전태풍보다 컸고, SK 관계자들도 “기대대로 성장한다면 2025년에 우리 팀 유니폼을 입고 있을 겁니다”라며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비록 키는 기대에 다소 못 미쳤지만,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성장세를 그렸다. 이 소년은 예상대로 SK 유니폼을 입고 펄펄 날아다닐 뿐만 아니라 만 19세의 나이로 대표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자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KBL의 새로운 역사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실판 강백호’ 에디 다니엘(19, 191cm)의 이야기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됐으며, 인터뷰는 7월 29일 진행됐습니다.


“세 발 걸으면 트래블링이야!”

다니엘과 농구의 인연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늘푸른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다니엘은 친구들 사이에서 네이마르, 반 다이크라 불렸다. 축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슈퍼스타들이다. 이미지가 비슷하기도 했지만, 다니엘은 그만큼 축구를 좋아했고 골키퍼로서 소질도 있었다.

유소년클럽 팀식스에서 축구를 즐긴 것을 계기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던 찰나,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이들이 나타났다. SK 유소년총괄을 맡고 있는 권용웅, 동국대 출신 김대광이었다. 팀식스에서 농구를 담당하는 클럽이 바로 SK 주니어 나이츠 농구교실이었고, 김대광은 주니어 나이츠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었다.

“(김)대광이 형이 제 안양고 선배거든요. 대광이 형이 다니엘을 추천해 줬고, 이후 저랑 같이 설득했어요. ‘골키퍼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서 재미없잖아. 그 피지컬로 농구하면 더 재밌을걸!?’이라면서 데리고 왔습니다(웃음).” 권용웅의 회고다.

그렇게 규정도 모른 채 주니어 나이츠 유니폼을 입은 다니엘의 농구 입문기는 흡사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를 연상케 했다. 주니어 나이츠 합류 후 규정도 숙지하지 못한 채 치른 첫 연습경기. “세 발 걸으면 트래블링이야!” 코치들의 가르침에도 바이얼레이션을 범하기 일쑤였지만, 공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다니엘이 있었다. 또래들보다 한 뼘 더 큰 키에 운동능력까지 타고났던 다니엘은 불쑥 튀어 올라 리바운드를 싹쓸이했고, 득점을 올리면 세상을 다 얻은 듯 즐거워했다.

권용웅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치른 연습경기였는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본능적으로 공을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골키퍼 경험이 있어서 그랬나 봐요(웃음). 다니엘은 공 잡으면 바로 가드에게 패스한 후 사라졌어요. 찾아보면 제일 빨리 공격 진영까지 뛰어가고 있었죠. 골 넣는 게 재밌었나 봐요. 첫 득점 했을 때 짜릿했대요. 그때부터 영락없는 강백호였어요”라고 돌아봤다.

다니엘의 기억도 다를 바 없었다. “규정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첫 득점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단 공을 준 다음 반대편까지 제일 빨리 달려갔어요. 뛰는 거라면 뭐든 열심히 했죠.”

그렇게 입문한 농구의 세계. SK는 농구공을 잡은 지 6개월밖에 안 된 ‘풋내기’를 연고 지명했다. 2019년 11월 2일, 당시 휘문중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성훈과 함께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연고 지명 행사를 진행하며 미래의 홈 팬들에게 일찌감치 첫인사도 남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키가 180cm를 훌쩍 넘겼다 해도 아직 기본기가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는 걸 고려하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농구한 지 6개월밖에 안 됐을 때라…. 감사했지만 저조차도 의아했죠. 그때부터 책임감이 생겨서 더 열심히 했어요.”

SK 유소년 팀이 본 다니엘의 최대 강점은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운동능력과 체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면, 농구를 대하는 다니엘의 자세는 SK 유소년 팀에게 미래를 걸어볼 만하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혼혈이라고 다 운동능력이 좋은 건 아니거든요. 다니엘은 혼혈 가운데에도 돋보이는 신체 조건, 운동능력을 겸비했어요. 게다가 배우려는 자세도 너무 좋았어요. 겸손한 자세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니 하나 가르칠 거 두 개 더 가르치고 싶었죠. 그런 마음가짐으로 농구를 대하니 실력도 쑥쑥 성장했어요. 드리블, 슈팅은 조금 부족했지만 강백호처럼 본능적이었죠. 공을 향한 투지, 이기고자 하는 승부 근성은 또래들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농구를 보면 팀을 이기게 만드는 에너지를 가진 선수가 있잖아요. 다니엘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런 선수였어요.” 권용웅의 설명이었다.

대학이냐, 프로냐

SK로부터 연고 지명을 받은 후, 다니엘은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삼광초 전학을 거쳐 농구 명문 용산중에 입학, 아마무대를 평정했다. 신장은 당초 기대만큼 자라지 못했지만, 성장세만큼은 단연 돋보였다. 코스트 투 코스트부터 힘을 바탕으로 한 포스트 플레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꾸준히 30점 이상을 기록했다.

“연고 지명 받을 당시에는 키가 컸는데…. 그대로 컸으면 200cm는 됐겠죠? 그럼 농구를 더 편하게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다니엘의 회고다.

다니엘은 3학년 시절에 춘계연맹전, 종별선수권, 왕중왕전 모두 용산중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싹쓸이한 것은 물론, 중학생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2022 U16 아시아컵에도 출전했다. 용산중-용산고를 거치는 동안 무릎, 발목을 다쳐 휴식을 거치기도 했지만 다니엘이 성장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아마농구 현장을 찾았던 프로 관계자들은 “당장 프로에서도 통할 수준입니다”라며 다니엘을 극찬했고, 용산고 2학년 시절에는 NBA 국경 없는 농구 캠프에도 초대를 받았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용산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휩쓸었으니 연고 지명을 통한 우선권을 갖고 있었던 SK로선 다니엘의 프로 직행을 추진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2025년 5월, SK는 오랜 논의 끝에 다니엘의 프로 직행을 공식 발표했다. KBL이 2018년 연고 지명 도입 후 대학을 거치지 않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첫 사례였다.

“구단 입장에서는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다니엘 가족들은 프로와 대학을 두고 고민했어요. 어머니가 다니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한 반면, 할아버지는 대학 진학도 염두에 두고 계셨죠. 대학에 가면 아무래도 언더사이즈 빅맨 역할도 맡게 될 테고, 성장하는 데에 제약이 따를 것 같았어요. 프로에서 자리를 잡는 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잘 육성시키겠다면서 비전을 제시했고, 전체 1순위와 같은 조건도 제안했습니다. 여러 차례 만난 끝에 다니엘 측에서도 프로 직행을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최종적으로 계약이 성사됐죠.” 주형근 SK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실제 다니엘은 신인 최고액인 1억 2000만 원에 계약했고, 2년 차 시즌에 이 연봉을 받는 선수는 다니엘과 드래프트 1순위 문유현(정관장) 단 2명이다. 연고 지명이 다니엘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지만, 직접적인 성장을 이끈 건 그의 은사들이었다.

허남영 SK 유소년코치는 “SK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한 것도, 권용웅 유소년총괄이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던 것도 맞습니다. 그래도 전 다니엘의 중고교 시절 스승인 신석, 정선규, 이세범 코치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세범 코치는 고교생 다니엘에게 외곽에서의 움직임을 강조했어요. 왕중왕전에서 3점슛을 10개 넘게 실패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계속 던지라고 지시하더라고요, 다니엘의 겸손한 자세, 승부 근성,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준 모든 은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지하 100층 뚫고 식스맨상

다니엘은 데뷔 시즌에 낯선 경험을 했다. SK는 주축선수들의 줄부상이라는 악재 속에도 32승 22패로 4위에 올랐지만, 7개월 사이 22경기에서 패한 건 아마시절 우승을 밥 먹듯 했던 다니엘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통틀어서 진 경기보다 프로에서 진 경기가 더 많았어요. 초반에는 졌을 때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에도 지장을 받을 정도였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왜 졌는지, 다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패배에 익숙해졌다는 건 아니에요. 우승이 목표였는데 6강에서 시즌을 마쳤다는 점도 많이 아쉬워요. 여전히 졌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지만, 패배 속에서도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즌이었죠.”

SK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즌을 치렀지만, 다니엘은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D리그를 거쳐 3라운드에 데뷔한 다니엘은 이후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핵심 식스맨으로 자리를 잡았다. 3라운드 5경기에서는 평균 9분 1초를 소화하는 데에 그쳤지만, 4~6라운드는 매 라운드 출전시간이 20분을 훌쩍 넘겼다. 만 19세의 어린 선수였음에도 벤치보단 코트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주요 전력이었다. 신인으로는 신종석(1998-1999시즌) 이후 최초의 식스맨상 수상자도 됐다.

“이전까지는 10분 안팎으로만 뛰다가 삼성(1월 11일)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20분 이상(26분 3초)을 뛰었어요. 그런데…. 너무 못했어요. (이)관희 형에게 살살 녹았죠(웃음). 기록이 농구의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기회를 받았는데도 2점 2리바운드 밖에 못했고요. (자신감이) 지하 100층까지 떨어졌는데 코치님들, 형들이 멘탈적인 면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특히 (김)명진이 형, 레디(프레디) 형, (안)성우 형에게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이틀 만에 DB 상대로 커리어하이(16점)를 세웠죠. 감독님이 그 경기를 기점으로 많은 기회를 주신 덕분에 데뷔 시즌을 잘 마칠 수 있었어요.”

다니엘에게 공은 자석과도 같았다. 거짓말처럼 공이 있는 곳에 항상 다니엘이 있었고, 웬만한 경력을 쌓은 선수들보다도 악착같이 1대1 수비에 임하며 팀의 에너지레벨을 끌어올렸다. 에너지레벨을 의인화한다면 그게 바로 다니엘 아닐까.

“공이 여기로 튈 것 같다는 감이 있어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보단 그런 부분에서는 감이 있는 것 같아요. 스틸도 제 능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상대 실책을 유도하는 부분을 잘 준비한 덕분이죠. 저보다 에너지레벨 높은 선수들이 많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김진유 선수(소노), 조쉬 하트(뉴욕), 아멘 탐슨(휴스턴)이 진짜 에너지레벨이 좋은 선수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나이가 어려서 좋게 봐주시는 것 아닐까요?”

나란히 고졸 신분으로 프로에 직행한 김건하(현대모비스), 양우혁(가스공사)이 먼저 주목을 받은 것도 다니엘에겐 큰 동기부여가 됐다. “시즌 초반 D리그를 소화할 때 (김)건하, (양)우혁이는 이미 많은 기회를 받고 있었죠. 저는 훈련 끝난 후 TV로 그 모습을 봤는데 기분 좋더라고요. 우리 학년을 ‘골짜기 세대’라고 평가하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친구들이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게 좋았고, 저도 빨리 1군 무대에서 같이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하이라이트 필름도 만들었다. 덩크슛 실패라는 흑역사를 남긴 적도 있지만, 송교창을 상대로 포스트업에 이은 훅슛을 성공한 장면은 새로운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 상징적인 한 장면이었다.

“(덩크슛 실패는) 이제 팬들 뇌리에서도 지워지지 않았을까요. 저는 크게 신경 안 썼어요. 팀이 이겼고, 욕하는 팬도 많지 않았죠. 다만, 욕하는 사람들은 제 농구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고2 때 처음 성공한 이후 40번 넘게 덩크슛을 했는데 실패한 적이 없었어요. 그날이 처음이었죠. 그런데 ‘키도 작고 탄력도 안 되는데 왜 깝쳐?’라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긁힌 건 아니고 그냥 제일 웃겼어요. ‘진짜 농구를 모르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송)교창이 형 상대로 1대1 했던 건 무식해서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제 키로 수비 잘하는 교창이 형에게 포스트업을 시도하는 건 절대 좋은 공격 옵션이 아니죠. 제가 좋아하는 위치에서 찬스가 생겨서 훅슛이 들어갔지만, 10번 던지면 1, 2번 들어가는 정도? 아마 똑같은 상황에서 또 시도하면 안 들어갈 것 같아요.”

선수가 인정하는 선수

용산중부터 용산고에 이르기까지 아마농구를 평정했지만, 다니엘에겐 어린 시절부터 따라붙은 꼬리표가 있었다. “고교 무대에서는 1대1로 대적할 상대가 없지만, 슈팅이 많이 약합니다. 굳이 던질 필요가 없었거든요. 프로에서 슈팅이 얼마나 개선되느냐가 이 선수의 미래를 결정하겠죠.” 아마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경기를 지켜본 프로 관계자, 취재진이 공통으로 꼬집은 다니엘의 단점이었다.

실제 다니엘의 루키시즌 3점슛 성공률은 23.2%(13/56)에 불과했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약점이었다. “더 성장해서 최고의 선수가 되려면 ‘슛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상대가 내 슛을 체크하는 정도는 되어야죠.”

다행히 그의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인 전희철 감독이 있다. 역대 최소 경기 100승(147경기)에 이어 새 시즌에는 최소 경기 200승도 경신할 가능성이 높은 전희철 감독은 현역 시절 내외곽을 오가는 전천후 포워드였다.

1경기에 9개의 3점슛을 터뜨린 적도 있었으며, 지도자가 된 이후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10년 넘게 SK 코치를 맡는 동안 선수 개개인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에 최적화된 지도력을 뽐냈고, 지휘봉을 잡은 이후에는 SK를 매 시즌 플레이오프로 이끌며 ‘롤러코스터 구간’을 종결시켰다.

전희철 감독은 사령탑이 된 이후 슈팅에 대해선 코치들에게 일임해 왔지만, 다니엘의 슈팅만큼은 직접 잡아주겠다며 두 팔을 걷었다. “제가 관여하면 더 헷갈릴 수 있어서 슈팅은 코치들에게 맡기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다니엘은 직접 잡아줘야 할 것 같아요. 냉정히 말해서 피지컬은 좋은데 슈팅 능력은 떨어지는 선수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서 슛 매커니즘을 싹 바꿔야 합니다.”

모범 사례도 있었다. 신인상, MVP를 차례로 수상하며 SK의 새로운 간판이 된 안영준이다. 안영준은 2017 신인 드래프트 4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었고, 당시부터 2020-2021시즌까지 집중적으로 조련했던 코치가 바로 전희철 감독이었다. 안영준은 루키 시즌만 평균 0.7개를 넣었을 뿐, 이외의 시즌은 모두 평균 1개 이상의 3점슛을 터뜨리는 등 공수와 내외곽을 모두 겸비한 포워드로 성장했다. 통산 3점슛 성공률(35.5%)도 준수하다.

“(안)영준이도 입단했을 때는 기복이 있었어요. 림에 인사하는 것처럼 고개 숙이면서 슛을 던지더라고요(웃음). 농담으로 누구한테 슈팅 배웠냐고 물어볼 정도였는데 금세 바뀌었어요. 받아들일 자세가 갖춰진 덕분이었죠. 저를 믿고 따라오며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다니엘의 경우도 시즌 도중에 당장 바꾸려고 하진 않았어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면 아예 못 던질 수도 있거든요. 슈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의 느낌을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한데 꾸준한 연습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뀌어야 합니다. 다니엘도 영준이처럼 다음 시즌에는 3점슛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한 선수인 만큼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의 ‘밀당’도 잊지 않았다. 다니엘은 “지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슛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지만, 감독님이 격려를 해주셨어요. 저에게 원하는 건 슛이 아닌 막내다운 패기와 에너지라고, 슛은 연차가 쌓일수록 연습한 만큼 늘 거라고 하셔서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 수 있었죠”라고 돌아봤다.

다니엘은 여전히 슛 이외에 이뤄야 할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만 19세의 유망주다. 겉으로 드러나는 우승 횟수나 기록, 대표팀 경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다니엘이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는 예상보다 훨씬 비장하고 패기가 넘쳤다.

“강백호는 좋은 의미의 별명이잖아요. 너무 감사한 별명이지만, 나중에는 서태웅이나 마성지라고 불려야죠(웃음). 저는 목표가 많은 편이에요. 식스맨상을 넘어 언젠가 MIP, MVP에 도전하고 싶지만,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제가 이룬 목표도 더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선수가 봐도 ‘이 선수는 인정이지’라는 얘기를 듣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저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학생체육관은 저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체육관이에요. 농구를 시작한 이후 첫 경기를 시작으로 학창 시절에 수많은 대회를 치렀죠. 학생체육관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우승 축포를 터뜨리는 팀은 우리가 될 겁니다.”

다니엘의 TMI
한국 이름은?

성하랑이에요. 할아버지, 엄마의 성을 따랐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의미죠. 한국 이름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싶어서 만들었는데 사실 쓸 일이 없긴 해요. 영어 이름도, 주민등록상 이름도 에디 다니엘이에요.

전희철 감독이 한국이 마지막으로 아시아컵(1997년)에서 우승했을 때 대회 MVP였던 것을 알고 있나요?
진짜요? 몰랐어요. 제가 감독님 뒤를 따르겠습니다(웃음). 감독님 현역 시절 영상은 하이라이트를 몇 개 보긴 했어요. 점프를 가볍게 뛰시더라고요.

등번호 36번의 의미는?
아무 의미 없어요(웃음). 그냥 농구를 처음 시작할 때 쓴 등번호였어요. 한국에서는 거의 안 쓰는 번호잖아요. KBL에서도 저랑 숀 롱(KCC) 밖에 없죠. 별다른 의미가 없지만, 저를 통해 다른 선수들도 쓰고 싶은 번호처럼 보이게 만들어야겠어요.

다니엘이 본 이현중
대표팀 이전까지는 (이)현중이 형과 얘기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함께 훈련하고 생활하고 얘기하면서 정말 멋진 선수라는 걸 알게 됐어요. 편한 길을 두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_유용우 기자, 대한민국농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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