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정병민 인터넷기자] 알고리즘은 참 신기하면서도 때로는 무섭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양구군 문화체육회관과 청춘체육관을 오가며 농구 이야기에 파묻힌 하루를 보낸 뒤, 잠들기 전 유튜브를 켜면 또다시 중고농구 영상이 맨 위에 떠 있다. 하루 종일 보고 들었던 그 농구가, 하루의 끝에서 다시 나를 반겼다.
보통 아마추어 농구 영상이 프로나 국가대표 경기의 조회 수를 따라잡는 건 쉽지 않다. 관심도, 팬층, 접근성, 쇼맨십 등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판도가 달라질 때가 있다. 주인공이 바로 삼일고의 양우혁일 때다. 춘계연맹전, 연맹회장기, 주말리그, 왕중왕전까지 모두 다니며 확인한 결과, 올 시즌 중·고교 통틀어 인기는 단연 독보적으로 그가 1위였다.
그의 주변엔 늘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팬들이 몰린다. 초등학생들에게 그는 말 그대로 ‘슈퍼스타’다. 인기의 비결을 물어보면, 한 단어가 머릿속을 관통한다. ‘화려함’.
양우혁의 플레이를 보면 자연스레 앨런 아이버슨, 카이리 어빙 같은 드리블 마스터들이 겹쳐진다. 상대방 발목을 앗아가는 앵클 브레이커, 감각적인 풀업 점퍼, 그리고 최근 KBL에서 활약한 아시아쿼터 선수들의 독특한 박자감과 리듬까지 갖췄다.
어린 팬들이 안 빠져들래야 안 빠질 수가 없는 선수다. 화려한 농구의 압축본이자 끝판왕이다. 왕중왕전 예선 기간, 삼일고 경쟁 학교 학생들마저 식당에서 그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화려함 뒤엔 그림자도 존재했다.
그의 하이라이트 영상 댓글에는 “하이라이트 필름용 선수”, “멋있기만 하지 팀을 승리로 이끌진 않는다”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타 선수들에 비해 관심을 배 그 이상으로 받는 만큼 비난의 강도도 높았다. 일찍 슈퍼스타가 된 팀의 에이스가 감당해야 할 숙명이었다.
왕중왕전 대회 기간, 양우혁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NBA와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요. 슈퍼스타들이 성공한 이유를 보면 남의 시선과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저도 쉽진 않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요. 제 것만 보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양우혁이 말한 NBA에서도 ‘항상 누가 더 슈퍼스타냐, 누가 더 최고의 선수이냐’를 따질 때 ‘우승 경험이 있느냐’란 조건이 자주 따라오곤 한다. 물론 사람마다 스타 플레이어의 자질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기에 정답이 정해진 질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양우혁은 계속해 증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그리고 그 증명의 기회는 이번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도 찾아왔다.
예선 2승 1패로 결선에 오른 삼일고의 첫 상대는 용산고였다. “운이 없다”는 말과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을 일찍 만났을 뿐”이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 예선에서 효율이 아쉬웠던 양우혁은 결선부터 진짜 실력을 꺼냈다. 위기마다 특유의 드리블로 길을 뚫었고, 점퍼와 3점 슛을 미친 듯이 꽂으며 코트를 지배했다.
시즌 내내 우승을 반 독식한 용산고를 꺾자 삼일고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배재고, 광신방송예고를 연파했다. 결승 상대는 다시 경복고. 예선 첫날, 두 자릿수 점수 차로 패한 팀이었다. 시즌 내내 결승에 오르지 못했고, 경복고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던 삼일고였다.
하지만 양우혁은 담담하게 “올해 계속 졌지만, 많이 만나봤다는 건 익숙하다는 거예요.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알고 쫄지도 않아요, 자신감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마찬가지죠”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강팀들을 상대할 땐 평소에 하던 거 그 이상을 해야 된다고 항상 생각해요. 머릿속으로 상대가 '용산고다, 경복고다'라며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실제로 이렇게 해보니 상상이 현실이 되더라고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양우혁의 자신감에도 삼일고는 한때 17점 차까지 밀리며 패배의 그림자가 일찍 드리우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빅맨처럼 활동하는 2학년 권대현마저 5반칙으로 코트를 떠나며 분위기는 더욱 경복고로 기울었다.
현장 대부분 사람들이 경복고의 우승을 점쳤던 상황이었지만 양우혁은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오타니 선수의 만다라트 계획표에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란 말이 있어요. 딱 그 문구만 떠오르더라고요. 점수는 벌어졌지만 무조건 따라잡고 우승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권)대현이가 나가도 어차피 다 같이 연습하던 선수들이에요. 모두가 준비되어 있는 친구들이기도 하고요. 믿었죠(웃음). 시간을 되돌릴 순 없는 거니까...”
전반의 양우혁 플레이가 주사위 6이었다면, 후반의 그는 거짓말 같은 야투 성공률로 주사위 12를 던지며 끝내 팀의 역전을 일궈냈다. 역전까지 도달하는 과정의 점수와, 역전 점수까지 모두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내며 힘차게 포효했다.
첫 결승 진출에 본인 농구 인생 첫 우승, 뉴 챕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결승 왔는데, 우승하게 되어 정말 꿈만 같네요. 꿈만 같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이구나를 느끼게 된 순간이에요”
기록지를 받아든 양우혁의 점수엔 이날도 용산고전과 동일하게 35점이 표기되어 있었다. 2점슛 성공률은 무려 87%(13/15). 수비가 그렇게 강하다는 두 ‘강호’ 용산고와 경복고를 상대로 도합 70점이었다.
“남들 시선을 신경 안 쓴다고 했는데, 사실 저도 댓글에 ‘멋있기만 하지 팀을 본선에도 못 올리고 강팀만 만나면 퍼센테이지가 어떻고 어떻고...’ 이런 말들을 자주 봤거든요. 이젠 제가 조금 증명했다고 봐요. 대중들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주지 않을까 하네요”
모든 경기가 끝난 뒤, 스코어보드의 숫자는 사라졌지만 이날의 함성과 열기는 오래 남았다. 수많은 시선과 말속에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끝내 플레이로 답했다. 화려함으로만 주목받던 소년은 마침내 팀을 정상으로 이끈 진정한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비판과 의심을 딛고 코트 위에서 증명한 양우혁. 그의 농구 인생에서 2025년 여름, 이 우승은 어쩌면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까.

#사진_배승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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