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NBA 올스타위켄드는 취재기자들조차 첫 취재에서는 주눅들 수밖에 없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올스타가 된 선수들은 저마다 이 자리에 온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뽑아준 팬과 감독들에게 고마워하며 말이다.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2월 19일(한국시간) 열린 미디어데이에서도 처음 선발된 자 모란트(멤피스 그리즐리스), 대리우스 갈랜드(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프레드 밴블릿(토론토 랩터스) 등은 저마다의 감격을 표현했다.
“오프시즌에 쏟은 내 노력을 보상받은 느낌이다. 누구도 보지 못했겠지만 난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그래서 얻게 된 자리 같다.” (자 모란트·멤피스 그리즐리스)
“축복을 받은 기분이다. 정말 특별하다. 내가 올스타라니! 연습 코트에 가보니 모든 스타들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늘 고대해왔던 순간이다.” (대리우스 갈랜드·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매일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휴가 중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자신감을 갖고, 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이 자리는 그렇게 얻었다.” (프레드 밴블릿·토론토 랩터스)
NBA 올스타게임 출전수당은 승리 팀에 각 10만 달러(1억 2천만 원), 패배 팀에 2만 5천 달러(약 3천만 원)다. 연봉 200만 달러(23억 원)가 넘는 슈퍼스타들에게는 적은 돈일지 모른다. 그러나 스타들에게 올스타게임은 ‘수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올스타가 됨으로써 후원 브랜드로부터 보너스를 받을 수 있고 부가적인 기회를 더 창출할 수 있다. 또한 NBA 올스타들은 기간동안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비행기도, 숙소도 말이다. NBA와 후원 브랜드, 선수협회 등에서 개최하는 파티에도 참여할 수 있다. 한마디로 ‘느바 인싸’가 될 수 있다는 의미. 여기에 지인 2명을 초청가능한데, 계약서를 보면 이 2명도 비행기 1등석과 같은 올스타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대우는 바로 슈퍼스타들의 리스펙트가 아닐까. 르브론 제임스, 스테픈 커리를 동료로 둘 기회는 그리 흔치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스타들의 스타’로 올라선 이들도 ‘올스타 막내’로서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다”, “축복받은 기분이다”라고 말하던 ‘올-린이’ 시절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시대를 호령해온 당대 최고 스타들의 첫 올스타게임을 돌아봤다.
황제에게 도전했던 샛별
코비 브라이언트
데뷔 : 1996년 / 첫 올스타게임 : 1998년
‘농구의 성지’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1998년 올스타게임의 키워드는 단 하나.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맞대결이었다. 당시 코비는 LA 레이커스의 식스맨이었음에도 팬 투표에 의해 선발로 출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역대 올스타게임을 돌아봐도 존 하블리첵(1966년, 1970년)과 댄 멀리(1995년)만이 해낸 그리 많지 않은 사례였다. 또, 미국 나이로는 20살이 채 되지 않은 역대 최연소(19세 2개월) NBA 주전이 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었다. (기존 1위는 매직 존슨으로 20세 2개월이었다.) 경기 전에는 ‘열혈 레이커 팬’으로 알려진 배우 잭 니콜슨이 코비에게 농구공에 기념 싸인을 받기도 했다.
이날 코비의 포커스는 단 하나. 바로 마이클 조던과 대결하는 것이었다. 조던을 동경해온 코비는 덩크 할 때도 혀를 내밀고 하는 등 여러 퍼포먼스에서 조던을 따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바로 ‘BE LIKE JORDAN’ 그 자체였던 선수. 그래서일까. ‘판’을 깔아주자 대놓고 조던에게 '도전'했다. 조던의 샷을 컨테스트하는가 하면, 조던을 상대로 포스트업을 했다. 또한 조던의 포스트업을 1대1로 수비하기도 했다. 조던은 그런 ‘햇병아리’의 도전을 즐겼다. 마치 조카의 도발을 보는 삼촌의 표정이었다. 조던은 “다른 스타들도 많기에 우리 둘만 분리시키지는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 반면, 코비는 놀이동산에 온 소년처럼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놀라울 뿐이다”라며 신난 표정이었다.
실제로 코비는 기회가 될 때마다 쇼타임 본능을 감추지 않았다. 단독 속공 찬스에서는 360도 덩크를 꽂는가 하면, 케빈 가넷과는 기가 막힌 앨리웁 덩크도 합작했다. 특히 후반에는 디켐베 무톰보가 마크하는 상황에서 비하인드 백 패스를 주는 듯 속임 동작을 한 뒤 레이업을 올라갔는데, 덩크슛만큼이나 큰 환호를 끌어냈다.
그런 코비를 보면서 중계진은 “저 젊은 친구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잘 아는 것 같습니다”라며 함께 즐거워했다. 당시 올스타 중계는 NBC가 맡았는데, 틈날 때마다 조던과 코비를 집중조명했다. 조던에게는 NBC 스포츠의 간판 아나운서 아먀드 라샤드가, 코비에게는 짐 그레이 아나운서가 붙어 1쿼터, 2쿼터, 하프타임에 교차 인터뷰를 시도한 것이다. 이 시기 조던은 1997-1998시즌이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다는 루머가 있었기에 NBC측에서는 조던과 코비를 동시에 담을 마지막 기회라고 봤던 것 같다. 조던과 코비는 방송사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 올스타전은 동부의 135-114 승리로 끝났는데, 조던은 32분간 23점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의 마지막 올스타 MVP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워싱턴 위저즈 시절을 포함, 총 14번 올스타전에 나간 그에게는 3번째 올스타 MVP이기도 했다. 반면 '어린 도전자' 코비는 22분간 18점을 기록했다. 덩크슛 대회 우승(1997년)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조던의 전철을 밟아간 그는 이 올스타게임을 시작으로 18번이나 올스타게임에 나섰다. 올스타 MVP가 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2002년의 일. 2007년과 2009년, 2011년에도 올스타 MVP가 된 그는 과거 조던이 그랬듯, 올스타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가장 많은 인파를 끌어모으는 인물이 된다. 100여 명이 몰려 마이크 없이는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심지어 올스타 인터뷰 도중 외신기자로부터 ‘조공’을 받는 일(한 일본인 기자가 코비의 그림이 담긴 액자를 선물하기도 했다)까지 벌어졌으니 그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제에게 도전했던 풋내기는 18번이나 올스타에 나가면서 젊은 스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20년, NBA는 불의의 헬기사고로 운명한 코비를 기리기 위해 새로운 룰을 도입했고 MVP 트로피에는 코비의 이름을 새겼다.

르브론 제임스
데뷔 : 2003년 / 첫 올스타게임 : 2005년
2003년 전체 1순위로 지명된 르브론 제임스는 2005년, 샤킬 오닐, 빈스 카터에 이어 동부 선수 중에서는 3번째로 많은 표를 받으며 주전 자격으로 첫 올스타게임에 출전했다. 그가 루키였던 2004년만 해도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이 모두 동부에 있었기에 르브론을 비롯한 2003년 스타 루키들이 낄 자리가 없었다. 2년차였던 르브론은 샤킬 오닐, 코비, 야오밍, 팀 던컨 등 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힘께 섰는데, 그때만 해도 선배들이 “Hey, boy!”라 부를 정도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올스타전 이후 공개된 ‘Mic'd Up’ 클립에서는 르브론도 선배들에게 ‘Sir’를 붙이는 등 예의를 차리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 ‘킹(king)’이라 불리며 독보적 위상을 갖게 된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귀엽고 풋풋함(?)이 느껴진다. 르브론은 이날 라커룸에서 자신의 농구화에 싸인을 받았다. 샤크, 카터, 그랜트 힐, 앨런 아이버슨, 앤트완 재미슨 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농구화를 내밀었던 것. 조심스럽게 농구화와 네임펜을 내미는 모습 또한 풋풋하다. 그런데 이런 풋풋함과 달리 올스타게임에서는 굉장히 폭발적이었다. 사실, 이미 이틀 전 루키 올스타게임에서도 르브론은 충분한 스타성을 입증했다.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쉬, 아마레스타더마이어 등 2002-2003시즌 루키와 2003-2004시즌 소포모어가 만난 이날 경기의 백미는 마지막 2분이었다. 승부가 결정된 시점에서 각 팀의 내로라하는 플라이어(flyer)들이 덩크 묘기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 르브론 역시 멜로와 앨리웁 플레이를 합작하는 등 자신의 레퍼토리를 풀었는데, 당시 중계진은 “여러분은 미래의 덩크 컨테스트를 보고 계십니다”, “미래의 올스타들을 보고 있습니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놀라운 건 이때 르브론은 발목 부상 중이었다는 것이다. 르브론은 올스타게임 직전 경기에서 발목을 다쳤는데, 코트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아다녔다. 르브론은 이후 인터뷰에서 “발목이 100%가 아니어서 조심했다”라고 말해 주위를 더 놀라게 했다. 본 경기에서 보인 덩크슛만 봐도 발목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점프를 할 수 없었고, 사람들을 기쁘게 할 정도의 덩크를 꽂을 자신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안 좋은 컨디션에도 불구, 또래들과 기가 막힌 쇼타임을 즐긴 르브론은 본 경기에서도 남다른 경기력을 보였다. 아이버슨과의 콤비 플레이를 비롯해 여러 차례 ‘원맨쇼’를 펼치면서 선배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것. 이날 르브론은 13점 6어시스트 8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MVP는 아이버슨에게 돌아갔다. 경기 후 르브론은 “동부, 서부 할 것 없이 모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거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덤덤히 소감을 전했다. 한 취재진은 “20살답지 않게 부담을 안 느끼는 것 같다”고도 했는데, 르브론은 이에 “그저 내 경기를 하려고 했고, 우리 팀이 이기는데 집중했다”고 답했다. 2005년 올스타게임은 ‘르브론 전설’의 시작과도 같았다. 이때부터 올스타전에 단 1번도 빠지지 않았다. 통산 17번 출전은 카림 압둘-자바에 이어 역대 2위이며, 누적 득점과 야투 시도, 야투 성공 부문에서도 역대 1위를 달리고 있다. MVP도 세 번이나 차지했는데, 더 놀라운 건 이렇게 오랜 시간 뛰면서도 올스타 팬투표 선두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1위를 차지해왔다. 르브론이 아닌 다른 사람이 1위를 차지한 건 2016년이 마지막이다. 그때 주인공은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케빈 듀란트
데뷔 : 2007년 / 첫 올스타게임 : 2010년
텍사스 주 댈러스의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년 NBA 올스타게임은 10만8713명이 입장해 사상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이 경기의 MVP는 마이애미 히트의 드웨인 웨이드였고, 여전히 앨런 아이버슨, 르브론 제임스, 드와이트 하워드, 케빈 가넷, 코비 브라이언트, 스티브 내쉬, 팀 던컨,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등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2010년에는 무려 9명이 첫 올스타게임을 치렀다. 동부에서는 최연소 MVP 데릭 로즈가 대표적이었고, 서부에서는 크리스 폴의 라이벌(이었던) 데론 윌리엄스와 케빈 듀란트가 대표적이었다. 대부분이 감독 추천, 혹은 부상 대체 선수로 뽑혔는데, 듀란트는 감독 추천을 통해 뽑혔다.
208cm의 듀란트는 2007년 드래프트에서 그렉 오든에 이어 전체 2순위로 지명된 장신 스코어러였다. 2009-2010시즌에 그는 평균 30.1점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NBA 득점왕을 차지했다. 지금과 달리 발목이나 무릎에 부상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어지간해서는 막기 힘든 존재였다. ‘KD’라는 별명만큼이나 ‘듀란튤라’라는 별명으로도 자주 불렸다. 기자회견에서도 ‘듀란튤라(Durantula)’라는 별명에 대해 ‘오피셜 별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거의 안 쓰인다.) 흥미롭게도 듀란트는 이날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던 걸로 알려졌다.
1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유명한 ‘짤’이 하나 있는데, 바로 르브론이 듀란트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장면이다. 르브론이 듀란트에게 “좋아 보이는데! 기분이 어때”라고 물은데 이어 “역사의 일부가 됐어! 첫 올스타게임이잖아. 10만8000명이나 너를 보러 온 거야”라며 듀란트에게 축하를 건넸다. 듀란트는 이에 “굉장한걸”이라고 짧게 답했는데, 여유가 느껴지는 르브론과 달리, 듀란트는 다소 굳어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22년 NBA 올스타 드래프트에서 르브론과 듀란트가 마주했다. 르브론은 팬투표 1위, 듀란트는 팬투표 2위로써 ‘팀 르브론’, ‘팀 듀란트’의 일원을 뽑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당시 일화가 화두가 됐는데, 듀란트는 “너무 긴장해 있어서 말을 더하지 못했다”라고 돌아봤다. 아마도 르브론은 예전의 자신이 생각나서 듀란트에게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 등이 칭찬해주고, 엉덩이를 쳐줬던 것처럼 말이다.
듀란트는 2010년을 시작으로 12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됐다. 부상 때문에 경기에 나선 건 10번 밖에(?) 안 되지만, 이미 누적 득점은 역대 5위까지 올라있다. 올스타게임이든, 국가대표든 출전하는 어느 게임에서든 ‘절대적 에이스’로 활약해온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출전했던 2019년 올스타게임에서도 그는 단 25분 만에 31점을 기록했으며, 득점을 아낀(?) 2017년에는 21점에 그친 대신에 리바운드 10개와 어시스트 10개를 곁들여 트리플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스테픈 커리
데뷔 : 2010년 / 첫 올스타게임 : 2014년
‘대기만성’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는 데뷔 후 한참이 지나서야 첫 올스타가 됐다. 2014년 뉴올리언스 올스타게임이 그의 시작이었다. 폭발적인 3점슛과 재기발랄한 드리블이 리그로부터 막 인정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제임스 하든과 함께 나란히 주전이 되었는데, 둘 다 첫 출전에 주전 자리를 거머쥐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커리의 명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인터뷰하기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도 헤드라이너는 코비, 르브론, 듀란트 등이었다. NBA는 올스타게임 2일 전에 미디어데이를 갖는다. 국내와 달리, NBA 선수들이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기자들이 그 테이블 앞에 가서 질문을 하는 형식이다. 코비나 르브론 등을 인터뷰하려면 일찍 가서 마이크도 세팅하고 자리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먼 발치에서 목소리만 듣다가 와야 한다. 한번은 기자들이 어찌나 많이 몰리는지, 몸싸움에 밀려 카메라를 떨어뜨린 적도 있다. 커리는 그런 경쟁(?)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말이다. 1년 뒤는 달랐다. 단시간에 커리는 코비, 르브론 만큼이나 많은 기자들을 끌어모으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다시 2014년으로 돌아오자. 2014년은 ‘훗날’ MVP 야니스 아테토쿤보가 루키 올스타게임에 출전한 해이기도 하다. 아테토쿤보 앞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기자들은 옆에 있던 선수들에게 “Giannis Antetokounmpo라는 이름을 어떻게 읽어하는지 아나?”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컨텐츠를 만들려고 일부러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커리는 그 정도 무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미디어가 ‘반드시’ 취재해야 할 리스트에는 올라있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필자가 편하게 인터뷰한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커리의 첫 올스타게임 성적은 12점 11어시스트 1스틸이었다. 장기인 3점슛은 11개를 던져 단 2개에 그쳤는데, 어시스트 11개를 주목해야 한다. 커리의 어시스트 중 절반은 블레이크 그리핀에게, 나머지는 대부분 ‘미래의 동료’ 듀란트에게 전달됐다. 그리핀은 이때만 해도 ‘점프’가 아니라 ‘이륙’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커리의 패스 하나하나를 하이라이트로 연결시켰다. 듀란트도 이날 38점이나 기록했는데, 커리와의 호흡이 절묘했다.
비록 서부 올스타팀이 지긴 했지만, 커리는 승패를 떠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커리는 첫 올스타게임에 대해 “꿈을 이룬 기분"이라며 "내가 뉴올리언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소박한 소감을 남겼던 그 커리는 이 올스타전을 시작으로 8번 올스타게임에 출전(2022년 포함)하게 된다. 커리는 지난해까지 이미 31개의 3점슛을 성공시켜 누적 3점슛 부문 역대 3위(1위 : 제임스 하든, 39개)에 올라있다.
그런데, 커리는 아직 올스타 MVP 트로피가 없다. 득점이나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재밌게 플레이하려는 자세 때문일 수도 있다. 늘 올스타에 주전으로 나섰지만, 30분 이상 뛴 경기도 없다. 그러나 늘 밝은 모습으로 동료들을 챙기고 놀라운 개인 능력을 보여줬기에, 커리가 올스타게임에 보이지 않는다면 기분이 많이 이상할 것 같다.
#사진_김은기, 손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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