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손대범 칼럼 : 모든 것의 1쿼터 ③ 하프에서 쿼터로! 10분씩 4쿼터를 치르며 생긴 변화

손대범 기자 / 기사승인 : 2024-03-20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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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편집인(KBS·KBSN 농구해설위원)] 한국프로농구의 역사는 1997년 2월 1일, 안양 SBS와 인천 대우증권의 경기로 시작됐다. 농구대잔치의 유산을 물려받았기에 대다수가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생소한 점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바로 제럴드 워커, 네이트 터브스 같은 외국선수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쿼터’ 제도였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KBL 출범 이전까지 한국농구는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에 따라 전·후반 제도를 따랐다. 전반 이후 휴식, 그리고 다시 후반을 치르는 시스템이었다. 네이스미스 박사에 의해 농구란 종목이 탄생할 당시부터 전·후반은 존재해왔다. 다만 최초의 농구 규칙에 명시된 전·후반 경기 시간은 15분씩이었는데,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치 않다고 느껴 20분씩으로 늘린 것이 10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한동안 미국 프로농구(NBA)를 제외하면 쿼터 제를 사용하는 리그는 없었다. NBA는 전신인 BAA의 원년인 1946-1947시즌부터 쿼터제를 사용해왔다. NBA는 한 쿼터 12분으로 운영해왔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더 오래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는 NBA만의 규칙으로 남아있었다. 유럽 리그도 전·후반 20분 시스템을 사용했다.

대한민국 농구가 쿼터 제를 채택한 건 1997년 프로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거의 모든 나라의 프로리그가 그렇지만, 한국프로농구도 기본 골격은 NBA의 운영 메뉴얼을 많이 참고했다. 프로화를 앞두고 쿼터 제, 24초, 3심제, 지역방어 금지 등의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기성 농구인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쿼터 제는 경기 운영에 새로운 재미를 더해주었고, 당시 높은 농구 인기 덕분에 시청률에서 재미를 봤던 중계사 입장에서는 광고 영업 역시 도움이 되었다. 미국도 감독이 타임아웃을 요청하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경기를 중단하는 ‘TV 타임아웃’이 존재하는데, 모든 것이 광고에 의한 것이다.

올스타게임에서 처음 시행된 쿼터 제

사실, 한국농구가 처음으로 쿼터 제를 사용한 건 1997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1년 남녀농구 올스타게임은 시범적으로 NBA처럼 12분, 4쿼터로 경기가 진행됐고, 남자부는 156-137, 여자부는 108-106이라는 어마어마한 스코어가 나왔다. 남자부에서는 당시 허재와 이충희, 이원우, 강동희, 김유택, 김상식, 정재근, 문경은 등이 출전했고 한국농구 최초로 3점슛을 성공시켰던 김재득(전 한국은행)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 대한민국농구협회 내 한국농구코치협회가 낸 것이었는데 ‘NBA를 따라한다’라는 취지보다는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들이 골고루 많이 뛰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코치협회 회장이었던 방열 전 회장은 “당시에는 올스타게임을 앞두고 아이디어를 많이 냈습니다. 190cm 이상 장신과 190cm 미만의 선수들이 청백전을 펼치기도 했죠”라고 회고한 바 있다. 실제로 1990년 올스타게임은 190cm 이상의 백군과 190cm 미만의 청군이 부딪쳤는데 장신팀이 107-95로 승리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리바운드 차이가 49-19로 엄청났다. 청군에서는 이충희가 31점을 올리는 등 선전했지만 한기범과 서대성, 강양택 등을 못 막아 패했다.

농구인들이 돌아본 쿼터 제
다시 쿼터 제 이야기로 돌아가자. 농구협회는 1992년에도 12분, 4쿼터 제로 올스타게임을 치렀는데 이때도 남자부(149-147), 여자부(100-99)에서 점수가 많이 났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NBA가 대중화됐기 때문이었을까.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쿼터 제를 맞이한 감독, 선수들은 크게 어색함은 없었다고 돌아봤다.

김진 전 오리온스 감독은 “좀 짧아졌다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몸이 풀릴만하면 끊기는 기분도 들었습니다”라고 돌아봤다.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지금은 제주도에서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는 코칭스태프에게 ‘쿼터 제’는 디테일을 더해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기 운영에서 차이가 있었죠. 전·후반보다는 호흡이 짧기 때문에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선수 기용도 마찬가지고요.”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의 생각도 같았다. 농구대잔치 인기를 주도했던 연세대 감독이었고, 프로에서는 현대모비스와 전자랜드 감독을 맡았던 그는 “대학과 프로는 여러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10분, 4쿼터 제는 호흡이 더 빨랐고 쿼터 막판 선수 교체나 체력 안배 등 운영에 신경을 쓸 것이 많았습니다”라고 돌아봤다. 대다수 농구인들이 비슷한 의견이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진 인물은 유수종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다. 대한민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전·후반과 쿼터 제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여자대표팀이 올림픽 4강 신화를 이룬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전·후반으로 치러진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국제농구연맹은 2002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현 농구 월드컵)부터 쿼터 제를 도입했다. 유수종 감독은 2007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개최된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현 아시아컵)에서 쿼터 제를 경험했다. “쿼터 제가 되면서 식스맨 사용 타이밍 등이 더 중요해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타임아웃을 언제 사용해야 할지도 고민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유수종 감독의 말이다.

NCAA의 전·후반 제도는?
2024년 NBA 올스타게임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연고지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개최됐다. 이 도시가 낳은 최고의 농구 스타 중 하나가 바로 레지 밀러다. 스테픈 커리와 레이 앨런 이전 최고의 슈터로 평가된 그는 올스타 중계 중 이런 말을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도 많이 나섰습니다. 1994년 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우승도 차지했죠. 2002년은 더 뜻깊었습니다. 바로 이곳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렸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성적이 안 좋았어요. 세계와의 격차가 많이 좁혔거든요.”

밀러의 회고대로 2002년 세계선수권은 미국이 NBA 선수들을 내보내고도 우승을 하지 못한 최초의 대회다. 자국에서 열린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회는 NBA가 오랫동안 고수해온 쿼터 제가 도입된 최초의 세계대회였는데, 오히려 유럽팀들이 더 효과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며 미국에게 망신을 주었다. FIBA가 10분, 쿼터 제를 도입함에 따라 비로소 모든 나라의 규칙이 변하기 시작했다. 1994년 첫 회의를 가진 이래 무려 8년 만의 변화였다. FIBA는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토론토에서 총회를 갖고 ‘해당 국가의 농구협회가 원할 경우’ 로컬룰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이때만 해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는 제외였는데, 1999년 5월 총회를 통해 공격 제한 시간 24초, 10분 4쿼터, 3심제 도입 등을 결정하면서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농구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전·후반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바로 미국 남자대학농구다. 듀크 대학 여자부 전력분석을 맡고있는 김태경 코치는 “흥미롭게도 여대부는 쿼터 제입니다. 남대부만 전통적으로 전·후반을 유지하고 있어요. 공격 제한 시간도 30초죠.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도 NCAA만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전술 전개도 더 정확히 볼 수 있고요”라고 NCAA 대학농구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NCAA는 디비전 I에만 무려 350개 학교가 존재한다. 모든 학교가 다 환경이 같을 수 없다. 학교에 따라 경기 수준 차이가 어마어마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전·후반으로 치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수가 체감하는 전후반과 쿼터의 차이점은 어떨까. 불과 2년 전인 2022년 3월까지 대학생으로 NCAA 토너먼트에 출전했던 이현중에게 물어봤다. 현재 그는 호주프로농구(NBL) 일라와라 호크스에서 뛰며 전혀 다른 환경을 체감하고 있다. 이현중은 “다르긴 다르지만, 전반과 후반, 쿼터… 그런 부분에서는 큰 차이점은 없었어요. NCAA는 전·후반 20분이지만 경기 중에 TV 타임아웃이 주기적으로 있어 쉴 타이밍도 있습니다. 식스맨들도 그 구간을 기다리며 교체를 준비하죠”라고 데이비슨 대학 시절을 돌아봤다. 이어 그는 “차이점이 있다면 대학 농구가 좀 더 정신이 없다는 것 정도겠네요. 하하. 다들 의욕과 에너지는 넘치지만,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실수도 많습니다. 프로는 완성된 선수들이 경기를 하지만 대학은 다르죠. 모두가 프로를 꿈꾸는 것이 아니기에 선수들 중에는 농구를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는 선수들도 많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2016년부터 프로선수 생활을 해온 자밀 워니(서울 SK)는 스토니브룩 대학 시절을 회고하며 “전·후반 시절에는 시간 사용에 조금 여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쿼터는 좀 다릅니다. 코트에 있는 모든 순간에 신중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이들은 쿼터 제에서 오랫동안 선수로 뛰어오다 오랜만에 전·후반을 겪은 이들이다. 지난 시즌까지 프로농구 선수 생활을 했고, 지금은 UT 알링턴 대학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있는 양희종의 생각도 비슷했다.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전·후반 제도와 30초라는 샷클락이 어색했다고 했다. “현장에서 줄어드는 샷클락을 보며 혼자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쿼터 제는 쿼터 막판에 주전들을 쉬게 한다거나, 식스맨들을 적절히 투입해 흐름을 되돌릴 기회가 있는데 전·후반은 그게 좀 다른 것 같았어요. 주력 멤버를 언제, 어떻게 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23-2024시즌,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여준석의 곤자가 대학 경기를 중계 중인 김일두 해설위원에게 쿼터와 전·후반을 묻자 자신의 중계 경험을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체감이 잘 안 됐죠. 공격 제한 시간도 FIBA나 프로는 24초인데 NCAA는 30초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 어? 던져야 하는데!’라고 혼자 급해서 안절부절못했어요. 정작 제 옆에 있는 최연길 해설위원은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쿼터 제는 쿼터 막바지에 에이스를 쉬게 해준다거나 하는 로테이션이 있는데, 전·후반 제도는 하프타임에 한 번만 쉬니 백업을 언제 투입할지에 대한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번 흐름이 넘어가면 다시 가져오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NCAA는 홈 분위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다 보니 한번 흐름을 뺏기면 재정비가 잘 안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걸 보니 선수 기용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UAB(The University of Alabama at Birmingham)에서 NCAA 토너먼트 업셋을 이룬 최승태 코치도 ‘흐름’을 언급했다. “저도 20분 전·후반을 뛰어본 시대였기 때문에 어색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전·후반제로 치를 경우에는 경기가 중단되는 상황이 아무래도 더 적죠. 경기에 대한 집중력도 더 커지는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벤치 유닛들이 투입되어도 뛸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것 같아요. 쿼터제는 쿼터 막판에 투입되더라도 다시 다음 쿼터가 시작되면 벤치로 돌아갈 경우가 있잖아요. 다만 이렇다 보니 흐름이 넘어갔을 때 반전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반대로 흐름을 가져오면 끊기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NCAA는 학생스포츠이다 보니 미국 성인 스포츠 단체 중 가장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막대한 중계권료와 입장 수익 등을 벌어들이면서도 정작 선수들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영리 활동을 제한시켜 오랫동안 지적을 받아왔던 이 단체는 최근에야 부분적으로 이를 풀어줬다. 덕분에 인기 있는 대학선수들은 일찌감치 광고 후원 계약을 체결하면서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전·후반에 대한 불만은 크게 제기되지 않고 있고, 광고를 위한 미디어 타임아웃을 더 많이 쓸 수 있다는 점이 있기에 NCAA가 쉽게 움직이진 않을 전망이다. (한편 NCAA는 전·후반뿐 아니라 원-앤드-원 자유투 방식도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 1구를 놓치면 2구 기회까지 날아가는 방식인데 필자는 종종 KBL이 로컬룰로 원-앤드-원 방식을 도입하면, 경기도 더 쫄깃해지고 자유투의 소중함을 더 깨닫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쿼터 제 이후 달라진 것
프로화와 함께 쿼터제가 가져온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선수 기용폭이다. NBA가 식스맨과 선수 기용이 다채로워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반년에 가까운 장기레이스와 긴 이동 거리, 잦은 백투백 등 험난한 스케줄에 대비한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한 시즌에도 여러 차례 맞붙는 상대에 대한 전략적 대비, ‘개인 기록=연봉’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에 따른 선수단 동기부여 등 배경은 다양하다.

프로 시스템이 체계화되면서 보스턴 셀틱스와 같은 팀들은 일찌감치 벤치 멤버를 잘 활용하며 빠른 페이스의 농구를 구사했는데 이것이 세컨 유닛 운영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프로농구도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외국선수 2명이 동시에 출전하던 시절까지는 외국선수 2명이 기본적으로 풀타임에 가깝게 소화하고, 나머지 주전 멤버들이 시간을 쪼개 쓰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외국선수 동시 기용이 사라지고, 출전 시간이 제한되면서 선수 기용 폭도 함께 넓어졌다. 로테이션과 라인업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평균 30분 이상 뛴 선수가 외국선수 포함 40명을 넘어섰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는 20명대로 줄었고, 딱 10년 전인 2013-2014시즌에는 8명이 됐다. 이 시즌 출전 시간 1위는 김선형으로 34분 27초였다.

최근에도 전 구단 통틀어 평균 30분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대체로 12~15명 수준이며 평균 35분 이상 뛴 선수는 2018-2019시즌 브랜든 브라운(KCC, 35분 23초)이 마지막이었다. 다만 올 시즌 이정현(고양 소노)이 팀 사정상 36분 33초를 소화하고 있는데 2015-2016시즌 양동근(36분 28초)이래 가장 긴 시간을 소화한 국내선수로 남을 전망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랬겠지만, 농구는 계속해서 그 특유의 스피드와 박진감을 제공하기 위해 규칙을 다듬고 보강해왔다. 24초 공격 제한 시간, 8초 바이얼레이션(8초 안에 하프라인을 넘어와야 함), 공격자 3초 바이얼레이션(공격자는 페인트존 안에 3초 이상 머무를 수 없음) 등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게더스텝까지 도입되며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선수들의 슛거리가 길어지고 경기 페이스가 더 빨라지는 지금, 어쩌면 농구는 머지않아 또 한 번 변화의 시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특정 나라만을 위한 종목이 아닌 만큼, 세계농구계 모두가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가 이뤄지겠지만, 과연 다음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어떤 것이 정비되고, 어떤 것이 도입될지도 궁금하다.

쿼터 제 이후 기록들
남자프로농구 한 쿼터 최소 득점은 2점으로 모두 다섯 번 있었다. 가장 최근 나온 기록은 2022년 2월 1일, LG가 홈에서 세운 2점이다. 2쿼터에 KCC를 상대로 2-14로 크게 밀렸다. 나머지 4번은 모두 인천 프랜차이즈 팀이 세웠다. 대우증권이 1998년 2월 21일 현대(현 KCC) 전에서 기록했고, 이후 전자랜드가 2006년, 2009년, 2021년에 작성했다. 한 쿼터 10점 미만 경기는 887회 있었다.

사실 한 쿼터 2점은 한국농구에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유럽농구의 챔피언스 리그라 불리는 ‘유로리그’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발생했다. 2005년 이탈리아의 베네통 바스켓이 에페스 필센(튀르키예) 전에서 2점에 묶였고, AS모나코 팀은 2023년 5월 19일 경기에서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와 맞붙어 2점에 묶인 바 있다. 심지어 2011년 이탈리아 명문 몬테파스치 시에나는 전반에 9점에 그치기도 했다. 물론 한 시즌에 여러 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여자농구도 올 시즌 역대 최소 점수 기록이 세워졌다. 2023년 12월 6일, 신한은행이 하나원큐 전 4쿼터에 기록한 1점이다. 자유투 1개로 간신히 무득점을 벗어난 것. 또, 우리은행 역시 KB스타즈와의 맞대결에서 2쿼터 2점에 그쳤는데, 이는 WKBL 역사상 4번째 ‘한 쿼터 2점’ 기록이었다.

남자농구와 달리 여자농구의 최근 득점 갈증은 걱정을 해야 할 부분이다. 부상자가 늘고 그 자리를 ‘덜 무르익은’ 젊은 선수들이 채우면서 전체적인 경기력이 저점에 머물렀다. 이 부분 해소를 위한 연구는 지속되고 있다. 외국선수 제도 부활, 아시아쿼터 도입 등 여러 아이디어가 오가고 있다. 제일 중요한 건 WKBL은 10년을 주기로 세대교체와 과도기가 찾아왔다. 그 시기를 잘 이겨내고,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저득점’ 기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쿼터 51점 경기는 KBL에도 있었다. 1997-1998시즌 청주 SK가 그 주인공이다. SK는 다시 삼성 원정경기에서 4쿼터에 51점을 몰아치며 124-119로 역전승했다. 레지 타운젠트와 드와이트 마이베트가 무려 38점을 합작했다. 이는 상대팀 삼성이 4쿼터에 올린 33점보다도 많은 기록이었다. SK는 이 시즌 평균 득점 3위팀(94.8점)이었다. 51점 기록을 세우기에 앞서 1997년 12월 28일 동양을 상대로는 4쿼터에 47점을 올리며 128-103으로 이겼다. 이날은 윤제한, 손규완, 전수훈이 4쿼터에 26점을 합작했다. 바로 2일 뒤 삼성 전에서는 1쿼터에 40점을 쏟아부었다.

시간이 지나며 농구가 더 디테일해지면서 한 쿼터에 40점 이상을 실점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프로농구 역사상 한 쿼터 40점 이상 기록은 22번 있었는데 2020년대에는 단 2번뿐이었다. 2번 모두 안양 프랜차이즈 팀이 기록했다. 2021년 11월 8일 KGC(현 정관장)가 KCC를 상대로 40점을 뽑았고, 2023년 11월 21일에는 대구 한국가스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1쿼터를 41-30으로 시작했다. 최성원이 1쿼터에만 15점을 올리며 활약했던 그 경기다. 한편, 한 쿼터 개인 최다득점은 24점으로 래리 데이비스(전 SBS)가 1997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모두 24명이 기록했다. WKBL 한 쿼터 개인 최다득점은 20점인데, ‘농구여제’ 정선민이 2001년 여름리그에서 금호생명을 상대로 작성했다.

# 사진_점프볼 사진부, AP/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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