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임종호 기자] 가을이 완연한 10월의 끝자락, 한국 농구의 새싹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 10월 28일부터 8일간 ‘동양의 나폴리’ 통영에선 윤덕주배 제32회 전국초등학교 농구대회가 열렸다. 한국초등농구연맹(회장 서정훈)은 코로나19의 여파를 잘 비켜가며 무사히 대회를 마쳤다. 방역과 안전에 최우선을 둔 가운데 총 39개 팀(여-16, 남-23)이 참가한 가운데 광주 방림초교, 경기 성남초교가 나란히 정상을 차지했다.
(본 기사는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3년간 사천에서 개최되었던 윤덕주배 대회는 올해 故윤덕주 여사가 잠들어있는 곳인 통영으로 장소를 옮겨 한 시즌을 결산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래 이번 대회 참가팀 수는 총 41개였다. 조 추첨까지 마무리된 상황에서 급작스레 남자 초등부 두 팀(여수 쌍봉초교, 청주 비봉초교)이 내부 사정으로 인해 불참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그들이 속한 D조와 E조는 예정보다 빠르게 예선 일정을 마무리했다. 원래 세 팀만 배정된 E조는 한 경기로 순위가 가려졌다.
울산 송정초교와 제주 함덕초교는 개막일부터 맞대결을 펼쳤고, 송정초교가 47-44로 승리했다. 그러나 양 팀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결선 토너먼트에 합류했다. 조 2위까지 결선행 티켓이 주어졌기 때문. 덕분에 이들은 단 1경기 만에 다음 라운드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통영체육관에서 진행된 남자 초등부 예선전은 충주 국원초교-청주 중앙초교의 경기를 끝으로 나흘간 예선전을 모두 소화했다.
곧바로 시행된 14강 대진 추첨 결과 A조 1위의 광주 우산초교와 B조 2위 서울 연가초교가 8강에 직행하는 행운을 누렸다. 추첨 현장에서 한가지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다. 보통은 각 팀의 지도자들이 순서에 따라 직접 뽑기에 나선다. 하지만 이때 몇몇 학교의 코치들은 자신의 제자를 대동하고 와 그들에게 팀의 운명을 맡기기도 했다.
성남초교, 송천초교 꺾고 시즌 2관왕
11월의 시작과 함께 문을 연 남자 결선 경기. 토너먼트를 거듭할수록 우승 후보의 윤곽이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살아남을 팀들은 준결승까지 모두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1,2차 결선 무대를 통과한 전주 송천초교와 광주 우산초교, 경기 성남초교-인천 안산초교가 결승으로 가는 문턱에서 만났다.
3연승을 달리며 4강전까지 무난하게 오른 송천초교는 김준환(177cm, C)을 앞세워 박주현(168cm, G), 정유민(178cm, C)이 분전한 우산초교를 43-40으로 가까스로 제압하고 결승전에 선착했다. 1쿼터 4-13으로 끌려간 송천초교는 2쿼터부터 기세를 올렸고, 후반 들어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우산초교의 결승 진출을 무산시켰다. 팀의 메인 옵션인 김준환은 6경기 평균 15.2점, 12.3리바운드, 3.0어시스트, 1.6스틸을 기록했다. 포지션은 센터지만 전천후 플레이어에 훨씬 더 가깝다. 공격에선 직접 볼을 운반하기도 하고 넓은 코트 비전을 바탕으로 한 어시스트능력도 갖췄다. 여기에다 저돌적인 돌파는 상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 이러한 이유로 김준환에게는 ‘코뿔소’라는 별명이 붙었다. 올 시즌 한 차례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경기 성남초교는 인천 안산초교에 첫 패배를 안기며 무난히 결승 무대를 밟았다.
대회의 대미를 장식한 남초부 결승전은 성남초교의 2관왕과 송천초교의 대회 2연패 중 하나가 결정되는 날이었다. 긴장감 때문인지 묘한 기류가 경기장 전체에 맴돌았다. 초반 쉬운 슛 찬스를 거푸 놓치며 양 팀은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이내 엎치락뒤치락하며 팽팽히 맞섰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접전 승부에서 웃은 팀은 성남초교였다. 성남초교는 윤지훈(164cm, G)의 결승 자유투에 힘입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올해 열린 두 번의 대회서 모두 정상을 차지한 성남초교는 2관왕으로 2020시즌을 자신들의 해로 장식했다.
남초부 MVP의 영예는 성남초교 주장 윤지원(169cm, F)에게 돌아갔다. 대회 기간 내내 팀의 주장으로서 중심을 잘 잡은 윤지원은 “올해 열린 두 번의 대회를 모두 우승해서 기분좋다. 주장인 나를 잘 따라와 준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다”라며 우승의 기쁨을 동료들과 함께 나눴다. 코트 안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며 팀원들을 아우르는 리더십까지 선보인 그는 “사실 (정)은찬이가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당황했다. 그래도 받고 싶었던 만큼 기뻤다”라며 수상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방림초교, 여초등부 시즌 2관왕
16개 팀이 참가한 여자 초등부에선 광주 방림초교가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렸다. 방림초교 역시 경기 성남초교와 마찬가지로 올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조별리그에서 한 차례 맞붙었던 디펜딩 챔피언 성남초교를 다시 한번 누르고 2관왕을 달성한 것. 성남 수정초교, 창원 산호초교, 선일초교와 함께 A조에 묶인 방림초교는 예선 전승을 거두고 8강전에 진출했다.
이후 연암초교, 대구 월배초교마저 차례로 물리친 방림초교는 결승전에선 전년도 우승팀마저 42-27로 완파하며 왕좌에 올랐다. 방림초교의 2관왕에는 임연서(167cm, F)의 공이 상당했다. 여초부 최고의 테크니션 임연서는 이번 대회 6경기서 평균 27.7점 15리바운드 3.5어시스트 2.7스틸 2.5 블록슛을 기록하며 맹위를 떨쳤다. 교체 멤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임연서는 꾸준했다. 득점부터 리바운드, 블록슛에 이르기까지. 팀의 공격과 수비 작업에서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임연서는 모든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팀을 2관왕으로 이끈 임연서는 본인도 두 번 연속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그는 “첫 대회 끝나고는 주변에서 우리 팀이 운이 좋아서 우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선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우승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팀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내가 MVP에 선정됐는데 내 기량을 인정받은 것 같아 더욱 값진 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남초부의 경우 대회 전 예측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던 반면, 여초부는 달랐다. 다수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간 경기들이 종종 나왔다. 11월 1일 충무 체육관에서 열린 대구 월배초교와 수원 화서초교의 8강전. 결승 무대 단골손님 화서초교를 맞아 월배초교는 시종일관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월배초교는 초반부터 전면 강압 수비를 내세워 산뜻한 출발을 보였다. 박효은(163cm, G,F)이 전반에만 10점을 퍼부으며 팀 공격을 주도한 월배초교는 상대 주포들을 봉쇄하며 먼저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후반 들어 급격히 흔들렸다. 화서초교는 조연후(7점)를 필두로 이시온(5점), 정예림(4점) 등이 힘을 보태며 격차를 좁혔고, 4쿼터 막판 우영기(177cm, C)의 극적인 동점 골로 승부를 원점(25-25)으로 돌려놓았다. 1차 연장에서도 승부를 보지 못한 양 팀은 3분간 경기를 더 이어갔고, 박효은이 결정적인 순간 5점을 몰아치며 팀에 승리(33-27)를 안겼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준결승전에 진출한 월배초교는 19점 7리바운드 4스틸을 기록한 박효은을 앞세워 우승 후보 화서초교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사실 이 대회서 월배초교의 경기력은 이전과는 달랐다. 예선 두경기를 연달아 승리하며 내심 B조 1위도 기대했으나, 온양 동신초교의 벽에 가로막혀 조 2위로 결선행에 몸을 실었다.
이번 대회 여초부에서 창원 산호초교 만큼이나 아쉬움을 삼킨 팀이 또 있을까. 산호초교는 올해 들어 전력이 급상승한 팀 중 하나로 결선 진출도 충분히 노려볼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올해 열린 두 번의 대회 모두 산호초교는 조별리그서 걸음을 멈췄다. 성남 수정초교, 선일초교와 A조에 묶인 산호초교는 첫 상대였던 수정초교를 28-26으로 누르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다음날 방림초교에 무릎을 꿇었으나, 선일초교를 잡는다면 결선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밟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산호초교는 예선 마지막 상대였던 선일초교에 1점(31-32)차의 석패를 당하며 결선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방림초교를 제외한 세 팀이 1승 2패로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산호초교는 공방률에서 밀려 탈락했다. 지난 여름 양구에선 방림초교, 화서초교에 밀려 예선 탈락한 산호초교였던 만큼 목표 달성에 있어 대진운이 조금은 따라주지 않았다.
대회장 분위기 역시 코로나가 바꿔놓았다. 경기장 출입시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선수들의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 역시 조금은 달랐다. 보통,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팀은 체육관 내부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워밍업을 하며 몸을 예열시키곤 한다. 하지만 접촉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체육관 밖에서 몸을 푸는 장면 그리고 체육관 입구부터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광경 역시 전에는 볼 수 없어 다소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초등농구연맹은 이번 대회를 통해 사상 최초의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바로 남초부 결승 경기에 해설자를 투입한 것. 국내 초, 중,고 농구대회 최초로 생중계에서 캐스터와 해설자가 동시에 마이크를 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등농구연맹은 대회가 열리는 동안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로 전 경기 영상을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종종 결승전에서 캐스터가 홀로 중계석에 앉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설자까지 대동한 적은 없었다.
한국초등농구연맹 서정훈 회장은 “대회의 질을 높이고, 색다른 변화를 위해 이러한 시도를 제안했다. 우리 연맹에서 주최하는 모든 대회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승전에서는 해설자를 투입해 경기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원래는 남, 녀 결승전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소통이 좀 안 된 부분이 있었다. 내년부터는 이런 형식의 중계를 더 많은 경기에서 선보일 계획이다”라며 해설자를 투입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연맹 측의 제안으로 남초부 결승전(경기 성남초교-전주 송천초교)에서 정경현 캐스터와 울산 송정초교 하성기 코치가 해설위원으로 나섰다. 초등농구 지도자로 오랜 세월 몸 담고 있는 하 코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결승전) 해설을 맡았는데, 캐스터의 도움으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이러한 시도가 연맹도 나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초등학교 선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연맹 측에서도 계속 해설을 권유할 만큼 나 역시 (지도자로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미래이자 풀뿌리가 되는 초등농구에서 먼저 선보인 이러한 시도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프로농구 만큼의 인지도나 관심을 가지는 콘텐츠는 아니지만, 향후 프로 선수가 될 새싹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대회를 알리는 취지에서 홍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사진_ 점프볼 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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