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점프볼 인터넷기자, KBL, KT, 강태진 전력분석은 편견을 깼다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2-03-26 17: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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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진지하게 농구선수를 꿈꿨지만, 이른 나이에 좌절을 맛봤다. 미국대학에서 전력분석을 맡으며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품었지만, “한국은 선출이 아니면 전력분석 하기 힘들다”라는 냉정한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두드리니 문이 열렸다. ‘프로팀 최초 비선출 전력분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수원 KT의 상위권 싸움에 기여하고 있는 강태진(34) 전력분석의 이야기다.

※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Q.점프볼과 인연이 있다. 2014-2015시즌에 인터넷기자로 활동했는데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A.농구와 관련된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취미로 즐기고 봤던 농구를 현장에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인터뷰를 통해 내가 좋아했던 감독님, 선수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Q.인터넷기자에 지원하기 전까진 호텔에서 근무를 했는데?
A.전공이 국제관광학과였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기도 했다. 호텔에서 6개월 정도 근무했는데 어릴 땐 농구선수가 꿈이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새로운 뭔가를 해보고 싶었고, ‘더 늦기 전에 농구와 관련된 일을 찾아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Q.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농구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A.아직 (허)훈이에게 얘기 안 한 건데 아버지가 허재 감독의 엄청난 팬이셨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따라 농구 직관을 많이 다녔다. 어머니도 현주엽 감독의 팬이셔서 자연스럽게 농구를 좋아하게 됐다. 중립경기가 있던 시절 잠실체육관에서 2경기 연속 열릴 때도 다 봤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허재 감독을 좋아했다.

Q.농구선수가 꿈이었지만 농구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던데?
A.초등학교 때는 내가 농구를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학교에 농구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긴 했지만, 체육선생님이 농구 너무 잘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송도중에 농구부가 있다는 걸 알고 체육선생님을 통해 송도중 농구부에 지원했다. 하지만 어릴 때 천식을 심하게 앓아서 오랫동안 운동을 할 순 없는 몸이었다. 키도 작고 왜소했다. 결국 “초등학생 때 정식 농구를 안 했고 허약체질이다”라는 이유로 농구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울면서 집에 갔던 기억이 너무 또렷하다. 가슴 아팠다. 중학생 때 190cm가 넘는 친구가 있었는데 송도중으로부터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 선생님께 나도 따라가면 안 되냐고 하니 “넌 키가 작아서 안 될 것 같다”라고 하셨다. 당시 키가 160cm도 안 됐고, 그래서 농구부 입문에 2번 실패한 셈이 됐다. 정작 그 친구는 농구가 재미없어서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더 열받았다(웃음). 어릴 땐 선수가 아니면 농구와 관련된 뭔가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래서 농구에 대한 꿈을 접고 호텔에 취직했던 것이다. 선수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다 크고 나서 알았다.

Q.인터넷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A.당시에는 인터뷰실이 아니라 기자들이 경기전 라커룸에 찾아가 감독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허재 감독을 처음 뵈었는데 너무 떨렸고 재밌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감독님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허재 감독은 경기 외적인 얘기를 굉장히 재밌게 말씀해주셨던 분이다.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Q.2014-2015시즌 종료 후 미국 베데스다대학 농구부로 갔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A.인터넷기자로 활동할 때도 유소년 농구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하숙례 교수님(전 신한은행 코치)도 같이 지도해주셨는데 스스로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농구도 잘 모르는데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친다는 게…. KBL에 지원서도 넣었는데 떨어졌다. 이래저래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고, ‘뭐라도 배워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다녔던 대학에 스포츠경영 대학원이 생겼다. 대학원을 통해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었고, 교환학생이 가능한 미국대학 감독님들께 일일이 메일을 보냈다. (무슨 내용이었나?)“농구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다. 돈은 안 받아도 된다. 어떤 일이든 해보고 싶다”라고 썼는데 유일하게 답장이 온 학교가 베데스다대학이었다. 베데스다대학 감독님이 “돈은 못 주지만 도와주고 농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주겠다”라고 하셔서 유학을 가게 됐다.

Q.구체적으로 맡았던 업무는?
A.제일 먼저 매니저를 맡았다. 매니저만 해선 농구를 배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하숙례 교수님께서 전력분석을 시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셨다. 이후 자료를 보내주셨고, 자료를 보며 ‘도전해볼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매니저, 전력분석 업무를 병행했다. 베데스다대학에는 2015년 9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있었다. 2시즌을 치른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Q.돈을 안 받고 일했다면 금전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했나?
A.미국에 가기 전까지 농구교실을 비롯해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둔 돈과 대출로 한 시즌을 버텼다.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한 시즌 만에 체중이 8kg 빠졌다. 돈이 다 떨어져서 한 시즌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내가 크리스찬인데 마침 미국에서 다니던 교회 집사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라며 무료로 차를 제공해주셨다. 이후 아르바이트도 구해서 한 시즌 더 치를 수 있었다. 두 번째 시즌은 밥 먹으면서 일했다(웃음).

Q.미국대학에서 일한 게 얼마나 도움이 됐나?
A.벤치에서 농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도움이 됐다. 농구는 벤치, 관중석, TV 등 보는 방법에 따라 보이는 게 다 다르다. 벤치에서 보면 선수들을 비롯해 감독님, 코치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들을 수 있다. 디테일한 부분이 더 잘 보였다. 전력분석을 맡으며 농구와 관련해 몰랐던 부분에 대해 너무 많이 배웠다. NCAA 코트에 서있다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랜드캐니언에 있는 대학과 경기한 적도 있는데 상대팀에 NBA 선수였던 댄 멀리 감독이 있었고, 관중들도 가득 들어찼다. 2015-2016시즌에는 컨퍼런스 최초로 NCAA D1에 있는 팀을 이겼다. 그래서 인터넷방송과 지역방송,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 경기를 팀의 일원으로 함께 했다는 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다. 사실 베데스다대학은 규모가 큰 학교는 아니었다. 크리스찬대학이 모여있는 NCCAA라는 연맹에 소속된 학교였고, NCAA 팀들과 연습경기를 하면 학교 레벨에 따라 포인트가 쌓이는 방식이었다. 내가 전력분석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좋은 학교였다면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Q.귀국 후 곧바로 KBL에 입사한 건가?
A.미국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올 때만 해도 ‘전력분석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농구동호회를 통해 친분이 생긴 (양)동근이 형에게 “한국에서 전력분석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굉장히 현실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은 선출이 아니면 전력분석을 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다른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해봐”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2017년 10월에 KBL 공고를 확인했고 지원해서 입사하게 됐다.

Q.KBL 경기본부에서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은 건가?
A.심판들의 경기를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경기 영상을 우리 팀에 맞춰 편집하고 데이터를 수집했다면, KBL에서는 심판 시점에서 경기를 편집했다. (그래서 심판설명회 때 볼 수 있었던 건가?)그렇다. 거기에 나온 영상을 내가 만들었다.

Q.KT 전력분석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된 건가?

A.친구가 잡코리아에 KT 전력분석 공고가 올라온 걸 봤고, 얘기를 들은 후 직접 찾아봤다. 프로팀이 전력분석을 공개 채용하는 건 처음 봤고, ‘하느님이 주신 기회다’ 싶었다. 내가 크리스찬이라고 하지 않았나(웃음). 안 되더라도 지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무작정 지원했다.

Q.궁극적으로 꿈꿔왔던 일을 이루게 된 건데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A.너무 놀랐지만 고민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지만 나이는 30대 중반인데 미국에서 돈도 못 벌었고, 모아둔 돈도 없었다. 사실 전력분석은 안정적인 일이 아니지 않나. 반면 KBL은 정규직이고 업무 스트레스도 크지 않았다. 즐겁게 일했고 그만둔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안정적이고 재밌는 일을 포기하고 도전을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1주일 넘게 했다. 잠도 못 잤고 여기저기 자문도 구했다. 동근이 형한테 또 전화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니까 “하고 싶은데 확인받고 싶어서 전화한 거 아냐?”라고 하더라. 듣고 보니 그게 맞았다. 원래 귀가 얇다(웃음). 부모님을 비롯해 대부분의 친구들은 반대했다. 미국 간다고 했을 때도 다 반대하는데 갔던 것이다.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냐는 얘기를 들었지만,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 하자’라고 결론을 내려 굉장히 고민한 끝에 결정했다.

Q.비선출이 프로팀의 전력분석을 맡은 건 KBL 출범 후 최초의 사례다.
A.신기하다. 운도 따른 것 같다. 올 시즌 개막 직전 급하게 전력분석을 뽑았다. 준비가 다 끝난 상태였다면 공개 채용으로 뽑지도 않았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Q.전력분석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 소개한다면?
A.다른 팀 전력분석과 업무가 똑같은지는 모르겠다. 매 경기 상대 팀 패턴과 수비 방법 외에 어떤 성향인지, 어떤 데이터가 축적됐는지 정리해서 리포트를 만든다. 영상을 편집할 때 상대팀의 패턴을 만들고, 주요선수들의 플레이를 모아서 정리한다. 비디오 미팅을 할 때도 있고, 코치님이 따로 요청한 선수에 대해서도 준비한다. 다른 팀에 대체 외국선수가 오면 해외리그에서 어떤 성향이었는지 편집해 외국선수들에게 보내준다. 경기 끝난 후에는 잘된 부분, 안 된 부분에 대한 리포트를 쓴다. 다음 시즌에 대비해 외국선수들 영상도 틈틈이 보고 있다.

Q.전력분석과 관련된 공부는 어떻게 해왔나?
A.한국에 돌아온 후 꿈을 계속 유지했던 게 아니라 미국에 있을 때 한 게 전부다. 취미로 농구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도 했다. 공부라기보단 외국선수, 패턴 분석을 취미 삼아 올렸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Q.휴무가 거의 없을 것 같다.
A.KBL에 있을 때도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당직도, 매 경기 분석도 해야 해서 사실상 모든 경기를 챙겨봤다. 집에서도 농구만 봤다. KT에 와서 달라진 건 숙소 생활을 한다는 점 정도다. 10월에 KT로 온 이후에도 한동안 KBL에서 인수인계를 했다. 보름 동안 KBL 근무가 끝나면 KT 숙소로 넘어와서 저녁에 일을 했다.

Q.전력분석이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A.아직 크게 보람을 느끼진 않았지만, 팀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5개월 동안 정말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별다른 기분은 못 느끼고 있다.

Q.고충은 어떤 게 있나?

A.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선출이 아니다 보니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도 헷갈렸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다운 수비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아이스라고 한다. 다운 수비는 공식적으로 쓰는 용어가 아니다. (세컨드 리바운드도 잘못된 표현 아닌가?)그런 단어는 미국에서 한 번도 못 들어봤다.

Q.KT가 시즌 초중반에 좋은 성적을 유지했지만, 4라운드를 기점으로 경기력이 저하됐다. 요인이 있다면?
A.당연히 팀 성적이 안 좋으면 나도 아쉬움이 크다. 나는 아직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족한 부분도 있는데 ‘내가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일도 많은데 내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Q.전력분석과 관련된 대화를 위해 찾아온 선수도 있었나?
A.미국에 있을 땐 많이 찾아왔고, 찾아달라는 영상도 많았다. 한국은 아직 그런 문화가 아닌 것 같은데 (양)홍석이가 처음으로 찾아왔다. 최근에 (박)지원이도 나에게 물어본 게 있었다. 외국선수들은 영상을 따로 보내달라고 얘기한다. 특히 라렌과는 팀 공격, 수비에서 어떤 부분이 안 됐는지 얘기를 많이 한다. 개인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경기를 보다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한데 민감한 측면도 있다. 선수들이 먼저 찾아와서 물어보는 것과 내가 먼저 안 된 부분을 얘기하는 건 차이가 크다. 미국은 대부분의 선수가 먼저 찾아왔고, 안 된 부분을 보여주고 얘기하면 인정을 했다. 물론 선수들이 먼저 나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게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Q.이외에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A.당장은 ‘재밌게 일하자’가 목표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일해왔다. 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일단 나 스스로 재밌게, 즐겁게 일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잘 주고 싶고,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에게 드리는 리포트도 팀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Q.혹시 인터뷰하면서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A.KBL 경기본부에서 심판들의 경기영상을 분석하다 보니 심판들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했고, 욕먹는 것도 봤다. 구단 입장에서 판정을 보면 억울한 게 있다. 나도 구단으로 와서 보니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구단의 눈으로 봐서 오심인 상황도 있다. 심판들도 경기가 끝난 후 잘못된 부분을 자책하고 공부한다. 팬들은 일부러 그런다고 하는데 심판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난 경기본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걸 안다. 지금은 구단 소속이다 보니 심판들과 연락할 수 없지만, 심판들도 실수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팬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 사진_KT 구단, 강태진 전력분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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