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달랐다. 전임 총재들은 외국인선수 제도 등 가시적인 제도부터 손을 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정대 총재는 KBL 직원들부터 챙겼다. 현재 직원들의 상황을 먼저 파악했고 착실하게 업무를 해온 직원들을 승진시키는 등 내부를 챙겼다. '일할 맛 나지 않던' 직원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과거 수직적이고 딱딱하고 모든 걸 숨기려고 했던 KBL은 이 총재 연임 기간에 180도 바뀌었다. 수평적이고 유연해졌고 모든 걸 오픈했다. 팬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KBL의 슬로건도 '와이드 오픈'이었다. 하염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던 KBL은 천천히 오르막 계단을 밟았고 프로농구에 등을 돌렸던 팬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3년이 지나 이 총재의 임기도 끝에 다다랐다. 짧았지만, KBL에 강렬한 변화를 가져온 이 총재를 점프볼이 만났다.
※ 본 기사는 점프볼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Q 마지막이 다가오면 기분이 좀 달라지는데, 지금 그런 마음이 드시는지요.
일단, 아쉬움이 남습니다, 임기 첫 시즌(2018~2019시즌)에는 전임 집행부가 세운 사업계획 이어가야 했고, 제대로 하고자 했던 2019~2020시즌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2020~2021시즌은 제한(지방 경기장 수용인원의 30%·수도권 10%)에 맞춰 한정된 팬들만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KBL 총재로 자리하면서 뭔가 이룩하기보다는 리그가 재도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상적으로 리그가 운영이 됐다면 KBL이 의도했던 방향대로 가면서 팬들의 반응도 살펴 확실하게 기반을 닦아놨을텐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부족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총재 취임 후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직원들 급여를 올리고, 승진 누락자들을 먼저 챙기셨는데요.
저는 현대자동차에서 30년 넘게 조직 생활을 했습니다. 하급사원에서 부사장이 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은 조직이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동기부여야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안 되면 모래성 위에 성을 쌓는 격입니다. 처음 KBL에 왔을 때가 그랬죠. KBL 직원들이 대기업을 갔다면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했을겁니다. 농구가 좋다는 이유로 이곳에 와서 일을 하는데, 조직의 대우가 형편없었어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몇 년째 대부분이 동결이었고요. 대기업 수준은 아니지만 타 종목 연맹 직원 평균 수준은 되어야겠다고 생각습니다.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타 종목 연맹 직원 연봉 현황을 알아봤습니다. 무조건 이 이상은 맞춰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주변에서 '예산도 없는데 어쩌느냐'는 말도 들었는데 일단 시행했죠. 직원들과의 미팅에서 “지금부터 직급은 없다. 내가 있는 동안만큼은 기죽지 않게 해줄테니 눈치보지 말고 일하고 모든 제1의 판단기준은 '농구를 진 일보 시킬 수 있는가'로 맞추자”고 말했습니다. 그 후 직원들과 자주 식사를 했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밤새 야근은 하는데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어요. 명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겠더라고요. 전쟁에서 장군이 '돌격앞으로'라고 말하기 전에 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목표의식이 있어야 군인들이 따르지 않습니까. 내부 동기부여가 시급했습니다. 품의 가져오면 집단 토론을 시켜보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바로 시행했습니다. 와이드오픈 KBL이라는 말도 그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직원들이 내 진심과 의도를 선하게 빠르게 받아들여줬어요. 그런 면에서 직원들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입니다. 지금은 직원 복지 시스템을 어느 정도는 구축을 해놨습니다. 월급쟁이는 승진과 급여 인상이 최고의 낙입니다. 후임자인 김희옥 총재에게도 이 부분은 절대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기존 KBL이사회의 모든 결정이 하향평준화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0개 구단 다 사정이 달라 각자 입장에서만 의견을 내놓으니까 거기에 맞춰졌습니다. 각 구단 단장들에게 구단 이기주의는 버려달라고 했습니다. 소탐대실하는 상황이 반복 되서는 안됩니다. 당장은 손해를 좀 보더라도 이후에 그 이상의 효과를 내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설득을 했습니다. 구단 내에서 힘이 부족하다면 내가 직접 각 구단 구단주를 만나 설득하겠다고 했고요. 취임 초기에 각 팀 구단주들을 다 만났습니다. 만날 때 왜 미리 언질을 주지 않고 가느냐고 불만을 털어놓는 팀도 있었습니다. 구단을 거치면 운영에 관심도가 낮은 팀들은 만남이 차일피일 미뤄질 것 같아 내가 직접 연락해 찾아갔습니다. 구단주들을 만나보니 농구팀에 대한 관심도를 알 수 있어요. 어떤 팀은 구단주가 팀에 관심이 많은 반면, 자신의 회사 농구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구단주들에게 그래도 1년에 100억 가량을 쓰는데 그 정도 돈이 들어가니까 업무 중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달라, 단 5분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봐달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이사회 결의를 하면 각 구단주들에게 메일을 다 보냅니다. 그래서 지금은 각자 이기주의보다는 '프로농구 발전'이라는 대의에 최우선을 두고 결정을 내리는 문화가 정착이 됐습니다. 진일보된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보람을 느낍니다.
Q FA, 외국인선수 제도에 자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맞습니다. 이사회에서 단장들에게 '프로가 무엇이냐, 바로 자본주의의 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율만 있으면 됩니다. 왜 외국인선수 키를 재야 하고 금액을 제한해야 합니까. 재정에 부담이 되니까 돈을 적게 쓰는 구단 수준에 맞춰서 제도를 정하는 것은 프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능력 있는 사람이 자본을 투입해서 최대 효과를 내는 것이죠. 단장들하고 가장 많이 부딪친 부분입니다. 연맹은 최소한의 규율만 정해놓고 전부 구단에 맡기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했습니다. 우승이 목표인 팀은 투자를 해서 브랜드 인지도 극대화로 가면 됩니다. 최소의 투자를 하는 팀은 그에 맞춰 방향을 잡으면 됩니다. 하향평준화는 하지 말아야죠,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자고 매번 강조해왔습니다. 그 길만 걷다가 지금 프로농구가 얼마나 초라한 상황이 됐습니까. 최소 4대 프로스포츠에서 가치 있는 리그가 되는 방향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제약은 다 바꿨어요. 급속도로 바꾸려다 보니 리그 규모에 맞지 않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지만, 일단 바꾸고 그에 맞게 제도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샐러리캡도 하드캡에서 소프트캡으로 바꿨고요. 외국선수 연봉 상한도 나는 다 없애고 싶었습니다. 상한을 두니까 어느 팀이 편법을 써서 좋은 선수를 데려왔다느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심증만 가지고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요. 그럴 바에 제약 없애고 각자 재정 상황에 맞는 선수를 영입하면 됩니다. 어느 구단은 스테판 커리를 데려올 수도 있고, 어느 구단은 적은 금액 안에서 스카우트 팀을 잘 구축해 우수한 선수를 발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Q 소통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노선 자체가 달랐습니다. 기존 KBL은 소통을 하지 않는 집단으로 타 리그에도 잘 알려질 정도 였습니다.
취임할 때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부분입니다. 팬, 언론사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했어요. 다 오픈하고 잘못된 건 지적을 받고 잘 된 건 칭찬을 받으면 됩니다. 소통은 있는 그대로를 오픈한다는 기본 전략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만 팬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팬들이 바라보는 것은 하늘인데, 우리는 우물 안을 보고 있는 상황이 반복이었죠. 보이스 오프 KBL도 그 일환입니다. 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발전적인 제안이라면 바로 사무국장 회의에 붙여서 이사회에 상정했습니다. 팬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부분과 결합이 된다면 언제든지 반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숨기려 하다보니 언론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습니다. 감추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사회, 재정위원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오픈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KBL이 진정성을 가지고 하는구나'라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언론들도 생겼고요. 옛날처럼 연맹 뜻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발표해서 모양새를 내고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소통이 아닙니다.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시스템이 정착이 됐습니다. 임기 3년간 내 능력 안에서는 열심히 했습니다.
Q 지난해 '스폰서데이'에 대한 반응도 엄청 좋았습니다. 그것도 소통 방식의 일환이었군요.
프로는 스폰서 없이는 존재 할 수 없죠. 프로구단을 돕는 분들을 개별로 만나기는 어려워서 아예 하루 날을 잡아 행사를 만들었습니다. 각 구단 감독들도 다 불러서 함께 조를 짜서 골프를 치고 식사를 했습니다. 다들 좋은 반응이었어요. 이걸 매년 가져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는 하지 못했습니다. 임기 마지막 전에 스폰서 데이를 갖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아쉽습니다. 이것 역시 지속 시켜야 할 부분입니다. 상호 간 이해를 높이고 스킨십을 하는데에 아주 좋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엄청 돌아다녔습니다. 사람을 설득하기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합니다. 많은 분들과 만나 설득하고 설명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정의선 회장(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이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말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KBL 총재로 오면서 정 회장에게 “그룹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그만큼 도움도 많이 받았죠. 그 덕분에 내가 더 자신 있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고요. 나로 인해 거꾸로 현대모비스 구단은 불이익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독, 단장에게 “자네들과는 통화도, 밥도 먹을 수 없다. 대신 내 임기가 끝나면 자주 보고 골프도 치자”고 했습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묵묵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현대모비스 구단에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Q 유망주 육성에도 각별한 신경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유소년 육성은 장기적으로 질을 높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밭이 잘 가꿔져 있어야 뭐라도 심을텐데, 내가 처음 왔을 때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중구난방이었어요. 농구협회 간의 협조도 잘 안되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비용 문제가 있었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부분은 해놔야 했습니다. 유소년 육성팀을 만들어 지지부진했던 부분을 풀어나갔습니다. 장신자 발굴 프로젝트로 50명의 선수를 관리하면서 체력 측정도 하고 개인 평가한 부분을 보내주고 피드백도 받고 있습니다. 비용 부담이 있었지만, 캠프도 열고 미국 연수도 보냈습니다. 유소년 프로젝트는 내가 물러나면 또 유야 무야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저질러 놓은 것도 있어요(웃음). 후임 총재에게도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 했습니다. 이 선수들이 몇 년 후면 KBL에 옵니다. 리그 품질 높이기 위한 일이죠. 단기간에 성과를 볼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Q 마지막 임무였던 전자랜드 인수도 잘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7, 8개월간 인수에 올인 하다시피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B2B(기업 대 기업 비즈니스) 기업은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B2C(기업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기업을 찾았습니다. 프로농구 연고가 없는 광주, 대전, 청주, 대구 지역의 중견기업 이상 규모를 가진 기업은 다 찾다시피 해 프리젠테이션을 했고요. 전자랜드같이 '더 이상 못하겠다'며 중간에 빠지는 일이 또 생기면 안되니까 구단주가 존속 할 수 있는 기업체를 찾아 접촉했습니다. 어떤 기업은 주주들이 반대하고 또 어떤 기업은 부친의 반대로 안된다더군요. 그러다 한국가스공사와 이야기가 됐습니다. 가스공사의 채희봉 사장이 농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침 가스공사가 있는 대구에 연고 구단이 없었고요. 가스공사는 구성원들에게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동기부여를 시킬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규모가 큰 회사인데 인지도가 낮죠. 일반 사람들은 가스공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를 겁니다. 브랜드가 감춰져 있기 때문에 농구단 창단이 안성맞춤이라 생각했습니다. 브랜드를 알리는 면에서도 뜻이 잘 맞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정부 투자 기관이다보니 절차가 많더라고요. 총력을 기울여서 정부도 설득을 하고 우리는 측면 지원을 하면서 다행이 인수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인수 관련해 노력을 기울인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늘이 도왔죠. 9개 구단 체제가 됐다면 스폰서, 중계권 계약을 다 바꿔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건 직무유기나 다름없었죠. 인수 협약식(6월9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보쌈에 소주 한잔했는데 속이 다 후련하더라고요. 숙제가 끝난 기분이었습니다.
Q 임기 동안 KBL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연임을 바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감사합니다. KBL은 10개 구단이 10분의 1씩 권한을 가지고 의사 결정해 통과시키고 실행하는 곳입니다. 각 사가 돌아가면서 총재 추대를 하는 의결을 했는데 첫 번째인 나부터 그것을 뒤집어엎으면 이사회 위상이 떨어집니다. 결의에 따르는 게 맞죠. 몇 텀을 돌아가다가 의사회 결의가 바뀔 수 있지만, 첫 번째인 나부터 그래서는 안된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나름대로 잘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놨습니다. 후임 총재로 오시는 분도 다른 기업(KCC)에서 추천을 받았으니 분명 나보다 좋은 능력이 있을 겁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관리하면서 농구 발전을 도모하길 바랍니다. 몇몇 단장들은 연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단장들에게 “나도 이제 70인데 인생을 좀 즐겨야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프로농구에 보내주신 사랑과 관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팬들에게 프로농구를 좋은 스토리로 만들어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리그가 중단 됐을 때는 여기저기 농구 선수들을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추천하고 KBL이 직접 스폰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즌 중단에 대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 방안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더 잘 준비해 좋은 환경에서 재밌는 프로농구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분명 프로농구는 더 발전할 겁니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낌없는 사랑과 조언도 부탁드립니다. 저도 이제는 농구 팬으로 경기장을 찾아 팬들과 함께 박수치며 응원하겠습니다.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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