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9년 전 원주의 함성, 이제 제 편이잖아요” 박찬희가 그리는 베테랑의 피날레

김용호 / 기사승인 : 2021-09-18 14: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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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6일, ‘프로농구 선수’ 박찬희에게는 인생 최고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주 팬들의 탄식이 깔려있던 치악체육관에서 박찬희는 포효하며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그랬던 그가 돌고 돌아 원주에 왔다. 그것도 자신의 첫 우승을 함께했던 이상범 감독의 부름에 응답하며 말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이 담겨있는 원주. 팀의 베테랑이 된 박찬희는 원주의 뜨거운 열정을 기대하며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반성하게 만든 트레이드 소식
농구계는 5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 문을 닫을 때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트레이드로 눈이 돌아간다. 프로농구의 오프시즌을 흔히 ‘에어컨 리그’라고 부르지만, 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될 때면 그 말이 무색할 만큼 리그는 뜨거워진다. 올해도 그랬다. DB와 인천 전자랜드(현 한국가스공사)가 두경민, 그리고 박찬희와 강상재를 주고받는 2대1 트레이드에 합의했다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농구계의 온 시선이 쏠렸다.

박찬희는 지난 2016년 안양 KGC인삼공사에서 전자랜드로 자리를 옮긴 이후 5년 만에 트레이드를 겪었다. 다시 FA 자격을 취득하기까지 단 한 시즌을 남겨둔 시점에서 새로운 유니폼을 입게 된 것. 6월 중순 DB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박찬희는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차피 선수로서 트레이드는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갈 수 있는 팀 중에 가장 좋은 팀에 온 거라고 생각해요”라며 이적 소감을 전했던 바 있다.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가고 있다. 6월 성실하게 몸 관리에 힘쓴 박찬희는 7월 초에 시작된 연습경기 일정에 처음부터 함께했고, 그달 말 통영 전지훈련을 소화해 DB에 더욱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


본 인터뷰가 공개될 즈음이면 그의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진지 3달이 지난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자신의 세 번째 팀. 박찬희는 “일단 DB는 소문대로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젊은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려면 저도 제대로 운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정말 열심히 시즌을 준비하고 있어요. 훈련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아요”라며 DB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오프 시즌 훈련이 물론 힘들지만, 지금 DB에서처럼 이렇게 활기차게 땀을 흘린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선수들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다 열심히 운동하고 있거든요”라며 새로운 환경을 연신 실감했다.

이번 트레이드는 박찬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심었다.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을 때)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사실 최근에 그런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생각에 쌓여 있었어요. 그러다 DB에 오게 되니 저를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농구를 어떻게 대해왔던 건지, 농구에 대한 제 마음을 많이 반성하게 되더라고요”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생각의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일까. 박찬희는 7월 8일 성균관대와의 오프시즌 첫 연습경기에 나서 활발하게 코트를 뛰어다녔다. 당시 경기를 회상한 박찬희는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팀원들과 합을 맞춰야하는 단계잖아요. 또, 물론 제가 그럴 생각도 없지만, 대학생들과 연습경기를 한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연습경기라도 코트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짧게 뛰고 교체 사인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으로 뛰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에요”라고 말했다.


스스로 팀 적응에 애쓰는 만큼 코칭스탭도 신뢰를 보내고 있다. 박찬희는 “이상범 감독님이 고참으로서 후배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중심을 잡아달라는 말을 한 번 하셨어요. 감독님이 원래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짧은 말 몇 마디로 저를 어떤 의도로 데려오신 건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역할을 이행하려고 더 노력 중이고요. 저를 응원하고 위해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박찬희가 추구하는 베테랑의 가치


우연처럼 박찬희는 프로 데뷔 후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5시즌을 치르고 날 때마다 트레이드를 겪게 됐다. 두 번의 이적 모두 FA 자격 취득을 단 한 시즌을 남겨둔 시점에서 마주하게 됐다. 비슷한 시점에서 일어난 두 번의 이적을 박찬희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 “솔직히 처음 트레이드가 될 때와는 다른 기분이긴 해요”라며 말을 이어간 박찬희는 “5년 전보다는 제 마음이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저는 분명히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5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자랜드’ 시절 이야기 말이다. 2016-2017시즌을 앞뒀던 전자랜드는 확실하게 앞선을 이끌 주전 포인트가드가 절실했고, 박찬희는 전자랜드의 가려움을 시원하게 긁었다. 이적 첫 시즌에 5년 만의 정규리그 전 경기 출전 기록을 남겼고, 어시스트 평균 7.4개, 스틸 1.8개는 여전히 커리어하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시간을 돌아본 박찬희는 “전자랜드에서 농구를 재밌게 했어요. FA가 되기 직전에 이적해서 선수들을 이끄는 중책도 맡아봤고, 2018-2019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도 가봤잖아요. 우승은 한 끗이 모자라서 하지 못했지만…. 재밌었던 기억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막바지에는 중요한 것들을 많이 느끼기도 했죠. 그런 경험을 발판 삼아 지금은 인간적으로나 농구에 있어서나 더욱 성숙해질 준비를 하고 있어요”라며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찬희는 최근 두 시즌 동안 하락세다 두드러졌다. 자잘한 부상이 있었고, 후배의 성장도 있었다. 여전히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그에게 넘어야할 언덕이 생긴 것이다.


박찬희는 분명 성숙했다. 그는 “뭔가 큰 걸 짊어진 선수는 당연히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비난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라고 마음 속 이야기를 꺼내며 “결과적으로 좋은 모습으로 전자랜드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지 못했어요. 마지막 두 시즌 동안은 일이 정말 많았어요. 2019-2020시즌에 들어갈 때 제가 33살이었는데, 팀에서는 갑작스레 제 비중을 줄여나가는 흐름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정신적 스트레스도 컸고요. 비중이 줄어드는 시기가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고 생각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 또한 그에게는 든든한 베테랑으로 거듭나기 위한 예방 주사가 아니었을까. 남모를 고충을 겪었던 박찬희는 근본적인 문제를 짚으며 자신이 추구해나가야 할 가치를 분명히 했다. 박찬희는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어요. 요즘 들어서는 농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농구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게 정말 오랜 시간 동안 해온 내 직업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직업이기 전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큰 존재에요. 그래서 요즘 제가 농구란 존재 자체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돼요. 솔직히 농구를 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더욱 최선을 다해서 농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농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더 뜨거울 원주의 함성 속에서 정상으로


박찬희는 KGC인삼공사에서도, 전자랜드에서도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경험했다. 자신의 세 번째 팀인 DB에서도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마찬가지다. 9년 전으로 시계가 멈춰있는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DB의 연고지인 원주에서 경험했다.


챔피언결정전 이야기를 꺼내자 박찬희는 “당연히 가장 높은 무대를 바라보는 게 최우선이에요”라며 목표를 확고히 했다. 더불어 “개인적인 욕심은 별로 없어요. 제가 아마 개인상은 MVP와 이성구 페어플레이상을 빼놓고는 다 받아봤을 거예요. MVP는 후보로만 3번 올라가 봤고요. 개인상에는 관심이 없어요. 진짜 오랜만에 우승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후배들과 힘을 합쳐 영광스러운 피날레를 하면 정말 좋지 않을까요?”라고 우승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우승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2011-2012시즌, 이상범 감독과 함께했던 첫 우승 시절이 떠오른다. 그 시절 박찬희는 원주와 마주 보고 섰지만, 이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사이다. 이에 박찬희는 “치악체육관에서 우승을 했었는데, 그때도 원주 팬들은 정말 열정적이었던 기억이 나요. 코트에서도 느껴지는 열기와 에너지가 엄청났죠. 근데 이제 제가 그 응원을 등에 짊어지고 코트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요.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서 경기장에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리 지르면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어요”라며 원주 팬들의 열정에 든든함을 표했다.


결국 선수가 프로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우승에서 비롯된다. “우승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솔직히 커리어죠”라며 말을 이은 박찬희는 “경험과 커리어. 솔직히 지금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우승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두고두고 회상하며 그 당시 멤버들을 추억하기도 하고, TV나 인터넷에는 가끔 우승 경기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선수로서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을 얻는다는 게 가장 큰 가치이지 않을까요”라고 우승을 갈망하는 이유를 더했다.


9년 전과 같은 우승을 바라보고 있지만, 박찬희의 위치는 많이 달라졌다. 첫 우승 당시 막내급 선수였던 그가 이제는 어린 선수들을 뒷받침해줄 베테랑이 됐다. 박찬희가 막내였던 시절 팀의 중심을 잡아줬던 김성철은 이제 자신의 코치가 됐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재차 추억을 떠올린 박찬희는 “김성철 코치님, 은희석 감독님 두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승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선수로서 어떤 본분을 지켜야하는 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셨거든요. 동생들에게 정말 잘해주셨어요. 그렇게 신구조화가 잘 이뤄졌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으로 동부라는 큰 산성을 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며 선배들의 역할을 회상했다.

이어 “이제는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해요. 어떤 역할이든 다 해낼 준비를 하고 있어요. 우승이 얼마나 힘든지 제가 잘 알고 있잖아요. 우승은 운도 맞아야 하거든요. 아마 다가오는 시즌에는 그 운이라는 기운이 치악산으로 한 번 올 것 같아요(웃음). 후배들이랑 한 번 열심히 준비해 볼게요”라며 덧붙였다.


박찬희는 2021-2022시즌이 끝나면 다시 FA가 된다. 다가오는 이 한 시즌에 DB와의 동행 여부, 이를 넘어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장의 향방이 결정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그에게 중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끝으로 박찬희는 “제가 은퇴를 언제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은퇴하는 날까지 원주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제가 뭘 보여드리질 못해서 팬들에게 어떤 말을 들으면 그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싶은데, 일단 원주에 온 걸 환영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새 시즌 선전을 다짐했다.

박찬희 프로필_
1987년 4월 17일생, 가드, 190cm/84kg, 쌍봉초-삼선중-경복고-경희대
2010년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KGC→전자랜드→DB)

주요 수상 이력
2010-2011 신인 선수상
2016-2017 베스트5
2016-2017 수비 5걸상
2017-2018 최우수 수비상
2017-2018 수비 5걸상
2018-2019 베스트5
2018-2019 최우수 수비상
2018-2019 수비 5걸상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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