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된 글이며, 인터뷰 진행은 FA 시장이 열리기 전 3월에 진행됐음을 알립니다.
기아차 시절 명품수비로 허동택 트리오 뒷받침
동양 이적 후엔 팀 최다 32연패로 수모 맛봐
이훈재 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한 공격보다 끈끈한 수비로 이름난 선수였다. 양정고, 성균관대를 나와 기아자동차에 입단한 그는 뛰어난 수비수로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허동택 트리오가 이끌었던 기아 전성기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동양으로 이적한 뒤에는 프로농구 사상 최다 팀 연패인 32연패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야말로 극과극의 행보를 걸은 셈이다.
서호민_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당시 실업 최강으로 군림했던 기아에 입단했다. 당시 기아에는 한기범, 김유택이 버티고 있었기에 출전 시간을 보장받기 어려운 팀이기도 했다. 기아를 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사실 성균관대 졸업반 당시에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어 있는 은행권 팀으로 가고 싶었다. 당시 기아, 현대, 삼성에는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지 않았나. 그런데 은행권 팀으로 갈 만한 연결고리가 없었다. 당시 기아를 이끌고 계셨던 방열 감독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는지 영입 제안을 해주셨고 결국 기아로 가게 됐다.
민준구_ 프로 원년 우수수비상,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수비하면 이훈재로 통했는데 어떻게 능력을 키운 것인가.
당시 기아 농구단의 멤버 면면을 보면 정말 화려했다. 농구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았다. 근데 제가 냉정히 봤을 때 그 선수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량도 아니었고, 갑자기 농구 실력이 팍 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이 갖고 있지 않는 수비나 궂은일에서 나의 역량을 펼쳐야 무조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수비나 궂은일 만큼은 내 전문 분야라고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했고, 방열, 최인선 감독님께서도 좋게봐주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수비 하나로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농구 관련 일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시작은 남들보다 조금 뒤처졌지만, 지금까지 20년 넘게 농구계에 몸 담으면서 농구 관련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내 자신에게 칭찬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용호_ 동양으로 트레이드 된 뒤 출전시간이 늘었지만, 아직까지 회자되는 32연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팀의 주장이라 더더욱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은데.
당시 팀 전력이 워낙 좋지 못했다. 외국선수가 도중에 이탈하고 국내선수들도 골밑 자원이 약해서 3쿼터까지 버티다 지는 경기가 허다했다.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10연패를 넘어서면서부터 어느 샌가 우리도 모르게 패배 의식에 젖어들었다.
김용호_ 32연패에서 탈출할 때와 기아에서 우승할 때 기분을 비교해본다면?
32연패를 끊었을 때는 기아에서 우승했을 때처럼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리는 순간에는 너무너무 좋았지만, 그 기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연패를 끊었다고 해서 시즌이 끝난 게 아니라 그 다음 경기를 치러야 하고, 또 연패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민준구_ 현역 은퇴 이후 여자농구 금호생명 코치로 지도자 생활에 입문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누구나 마찬가지로 속 시원하게 은퇴 하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동양에서 감사하게도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나 생전 해보지도 못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 한달 간 지도자 수업을 받던 도중 당시 신동찬 금호생명 감독께서 연락을 했다. 나와는 그동안 별다른 접점이 없어서 조금 의아해하기도 했는데, 한국에 와서 코치직을 맡아볼 의향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당시 나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있었는데 미래가 확실치 않은 상태였다. 기회가 왔을 때 움직이는 게 맞다고 판단했고, 지도자 연수 한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처음에는 은퇴한 지 1년도 안 됐을 때라 정말 멋모르고 했던 것 같다. 물론 당시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면서 지도자로서 현장의 느낌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
“양동근은 솔선수범했던 성실한 선수”
이훈재 감독이 상무에 부임한 건 2004년이었다. 서동철 감독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아 15년 간 불사조 군단을 꿋꿋이 지휘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팀 코치로 유재학, 허재 감독 등을 보좌하며 숱한 국제대회 경험도 쌓았다.
서호민_ 현재 상무 감독을 맡고 있는 장창곤 감독은 이훈재 감독의 농구인생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장창곤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장 코치와는 2004년부터 함께 했으니 감독, 코치로만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서로 잘 맞았다. 아무래도 군대에 계속 있다 보면 어디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할 때가 많았다. 또 군 조직에서 선수들을 관리하다 보면 여러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장 코치와 머리를 맞대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고민을 해결했던 것 같다.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
서호민_ 상무를 거쳐간 선수들 중에 기량이 늘었거나 정말 열심히 훈련한 선수가 있다면.
잘했던 선수보다 성실했던 선수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런 면에서 (양)동근이는 정말 최고였다. 리더로서 역할을 정말 잘했다. 솔직히 양동근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최고 가드지 않나. 때로는 겉멋이 들 법도 한데 근이에게선 그런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항상 자기가 먼저 나서서 훈련을 주도했고, 자기 자신을 낮추며 모범적으로 후임들을 이끌었다. 후임들은 그런 동근이를 잘 따랐고, 나중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자발적으로 훈련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유재학 감독님한테는 행운이자 복이고, 정말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민준구_ 상무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국가대표 코치 자격으로 각종 국제대회를 다니기도 했다. 그 부분은 본인의 지도자 생활에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됐나.
7, 8년 전만 해도 매년 해외에서 세계군인농구대회가 열렸다. 그 때 해마다 해외에 나가 많은 대회를 경험 해본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세계군인농구대회에 출전하는 팀들의 실력도 천차만별이다. 그리스 같은 경우에는 예비군 제도가 있어서 민방위 출신들이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한 때는 그리스 국적의 NBA 출신 선수가 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었고, 중국은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동원해 참가하기도 했다. 왕즈즈도 한번 봤던 기억이 있다. 또 좋은 기회가 닿아 국가대표팀에서 유재학, 허재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장단점을 보고,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훈련하는 지에 대해 배우게 됐다.
김용호_ 상무를 거쳐 간 김진, 추일승 감독도 프로에 진출했다. 프로팀 지도자에 대한 꿈은 없었는지.
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한 두 번 정도 생각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막 가고 싶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화려한 선수 커리어를 보냈거나, 또 능력이 출중한 지도자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는 나는 부족함이 많았다. 물론 언젠가는 꼭 한번 올라 보고싶은 자리였지만, 아직 내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 도전 열망에 하나원큐행 결심
극과 극의 변신엔 어쩌면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그는 최고의 프로선수들을 모아놓은 상무에서 15년간 늘 우승과 함께 살았다. 상무 농구단 감독이라는 자리는 그에겐 안정적인 직장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프로행에 아내는 “왜 어려운 길을 가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부의 현장에 사는 지도자의 열정을 막을 순 없었다. 하위권 탈출이 시급한 하나원큐의 감독으로 새 출발한 이훈재 감독은 “열정이 있을 때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15년 간 정 들었던 상무를 떠나 여자농구계에 발을 들여 자신의 새로운 농구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서호민_ 2019년 하나원큐에서 처음 제의가 왔을 때는 어땠나.
금요일 저녁이었던 것 같다. 보통 금요일이면 훈련을 마치고 문경에서 집으로 올라오곤 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는데 조성남 단장님께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만간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다음 날 바로 단장님과 약속을 잡고 접선을 했다. 그 때였다. 단장님께서 차기 감독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한 번 고민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김용호_ 상무 농구팀 감독은 본인에게 있어 안정적인 직장이기도 했다. 새로운 무대를 도전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은 “왜 어려운 길을 가냐”며 만류했다고 들었는데. 본인에게도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다.
사실 그 때가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을 시기였다. 정말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는데 상무는 D-리그나 농구대잔치 같은 대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하는 데만 보내곤 한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까 어떨 때는 내가 농구 감독이 아니라 관리자 느낌이 들더라.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감독 제의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가족들은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굳이 힘든 길을 가야하냐며 만류했다. 그런데 이번이 아니면 앞으로 내 지도자 생활에서 프로팀 감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물론 지도자 생활에 있어 꽃과도 같은 프로 팀 감독에 대한 환상도 있었다.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그 때만큼은 큰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서호민_ 지도자 생활은 여자 팀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15년 간 상무에 있다 다시 여자팀으로 돌아온 것이 낯설 법도 했을텐데.
그런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남여 상관없이 같은 농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변함 없다. 물론 성향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게 있다. 여자 선수들은 뭐 하나를 시키면 하라는 대로 다 한다. 반대로 상무 선수들은 하나를 시키면 제가 한 말이 무슨 의도인지 알고 다른 것까지 응용해서 한다. 여자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내가 조금씩 도움을 준다는 게 느껴졌다.
민준구_ 감독 첫 시즌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패배 의식에 익숙해져 있던 하나원큐를 3위까지 올렸다.
하나원큐에 부임하기 전에는 여자농구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리그 전체적으로 스피드가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전통적인 빅맨 농구보다는 빠른 농구를 통해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동력을 갖춘 마이샤라는 외국선수가 우리 팀에 잘 녹아들었고, 고아라, 백지은 등 나머지 선수들도 자신감을 갖고 잘 따라왔다.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못해 아쉬움이 크긴 한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 나름대로도 패턴, 작전 등을 많이 공부하면서 방향성을 잡아갔던 시즌인 것 같다.
민준구_ 하나원큐는 올 시즌 더욱 강해질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6라운드 이전까지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었다. 비시즌 때 일단 포스트가 강해야 된다는 생각에 이정현과 양인영으로 이어지는 더블 포스트를 준비했다. 비시즌 양인영의 컨디션이 좋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스피드는 물론 포스트의 무게감도 떨어지게 되는 역효과를 낳았다. 포스트가 강하면 리바운드가 월등히 앞서야 하는데, 리바운드도 강하지 않으면서 속공도 나오지 않고 그러다 보니 이도저도 아닌 팀이 돼 버린 것이다. 또 포스트가 뻑뻑하다 보니까 (신)지현이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지현이는 패스가 되면서 1대1 공격도 할 줄 아는 선수인데, 골밑으로 치고 들어갈 공간이 부족하니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한계를 인정하고, 방향을 빨리 수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김용호_ 마지막 6라운드에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4라운드 때 (강)이슬이, (고)아라가 동시에 빠지면서 팀 성적은 물론 모든 공수 지표 수치가 이전 라운드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지현이가 언니들이 없는 상황속에서 자신이 언니 역할을 대신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앞장서서 팀을 이끌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지현이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단단해졌다. 어느 날 지현이한테서 “저 야간 운동 좀 시켜주세요”라고 문자 한 통이 오더라. 감독 입장에서는 그렇게 자꾸 욕심을 갖고 노력하는 선수들을 보면 이뻐 보이기도 하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물론 야간 운동을 한다고 해서 실력이 다 향상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에게 실린 무게감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까 대견스럽기도 했다. 한번은 자기가 박혜진 언니처럼 농구를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듣고 저도 가르치는 지도자 입장에서 ‘아 얘가 정말 욕심이 있구나’하고 이 선수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그 때 이후로 오히려 ‘너는 팀 에이스가 아니라 리그 에이스가 되야 한다’라는 등 쓴소리도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9연패를 할 때는 언제 연패에서 탈출할까 하는 불안감이 존재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였다. 지현이가 한 단계 더 성장한 가운데 그전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실제로 5라운드 막판부터 성적이 좋아지니까 선수단 분위기도 한층 더 밝아지곤 했는데, 한편으로는 계속 이기니까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3, 4라운드에서 졌던 경기들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갔고, 아 그때 더 잘해서 승수를 하나라도 더 챙겼으면 어땠을까 하며 혼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프로는 ‘졌잘싸’라는 말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결국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막판에 많이 이겨놔도 최종 순위가 5위인 것은 변함이 없다. 요즘 플레이오프 경기를 하는 걸 보니까 그런 아쉬움이 더 많이 들더라. 심지어 선수들이 유니폼에 달고 있는 플레이오프 패치가 부럽기도 했다. 언젠가 저희도 저들과 똑같은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목표 의식이 생겼다.
서호민_ 다음 시즌은 계약 마지막 시즌이다. 앞선 두 시즌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부분에 대한 해답도 얻었을 텐데, 다음 시즌 성적을 떠나 이 팀에 꼭 심어주고 싶은 게 있다면.
리더 의식이다. 상대 팀들로 하여금 하나원큐는 항상 승을 깔고 가는 팀이 아닌 경쟁력이 있는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선수들이 좀 더 주인의식과 리더십을 갖고 책임감있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강이슬, 고아라, 신지현, 이 3명의 주축 선수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리더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슬이는 원래 슛 밖에 없는 선수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올 시즌에 리바운드나 궂은일에도 조금씩 눈을 뜨면서 농구적으로도 그렇고 밖에서도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FA 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웃음). 그 세 선수가 중심이 되고 리더로 성장한다면 이 팀도 충분히 강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호민_ 지도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생각인가.
지도자는 선수들한테 좋은 옷보다는 어울리는 옷을 권해야 한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왜, 연예인들이 좋은 옷을 입는다고 해서 꼭 다 빛나는 건 아니지 않나. 그 선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혀야 선수의 능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명장 소리 들으면 감독으로서 그것보다 더 좋은 수식어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명장도 결국엔 선수들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감독이 아무리 좋은 작전을 구상한다 하더라도 그 작전을 수행하는 건 코트 안에 있는 선수들이다. 나는 스타일리스트처럼 우리 선수들에게는 어떤 옷이 어울릴까를 고민할 거다.
# 인터뷰_ 민준구, 김용호, 서호민 기자
# 정리_ 서호민 기자
# 사진_ 홍기웅 기자
[저작권자ⓒ 점프볼.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