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BL 트로피 제작한 김병호 작가 “그들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김용호 / 기사승인 : 2021-01-03 14: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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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용호 기자] 지난 10월 6일에 열렸던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 이날 시즌의 주인공이 될 10개 팀 감독과 대표선수들 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이가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다. 새 시즌 리그 공식 명칭과 함께 공개된 새로운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였다. 농구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예술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트로피이기에 이에 담긴 의미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점프볼이 KBL 트로피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 김병호 작가를 만나봤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020년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작가님! 농구 매거진에서 예술가와 인터뷰는 드문 일인데, 농구팬들에게 인사부터 해주시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공부를 하고, 지금은 조각 작업을 하고 있는 김병호입니다. 주로 금속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제가 살고 있는 사회를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Q. 트로피 얘기를 하기 전에 작가님에 대해 먼저 알고 싶어지네요. 작업의 주재료를 금속으로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금속은 순수한 재료라는 거예요. 많은 작품들이 도금이나 도색 등을 통해 완성되는데, 금속은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품이 될 수 있는 순수한 재료에요. 화학적인 처리를 하면 언젠가는 그 겉이 벗겨지거든요. 하지만, 금속은 그럴 일이 없죠. 광을 내주면 다시 새 것이 되니까요. 그래서 금속을 활용해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그 작업의 일환으로 KBL의 새로운 우승 트로피를 제작했습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올게 왔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금속 중에서도 황동을 굉장히 많이 쓰는데, 황동은 훈장이나 휘장에 주로 사용되는 자랑하고 싶고,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느낌의 재료거든요. 지금 제가 보는 사회의 많은 모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트로피도 대부분 금색이잖아요. 현대적인 모뉴멘트(Monument, 광의적으로 역사적‧문화적으로 의의 있는 건축물이나 큰 조각)이라고 할 수 있죠. 마치 전쟁 후의 전리품처럼 스포츠맨십의 결과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뉴멘트가 트로피이니까요. 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상징물이라 당연히 하고 싶었어요.
 

Q. 원래 농구도 좋아하셨나요?
사실 직접 경기장을 가서 본 적은 없었어요. 개인적으로 팀을 나눠서 경쟁하는 스포츠보다는 나 자신과 싸우는 마라톤이나 육상 같은 걸 더 좋아해요. 다른 사람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죠. 하하. 그렇다고 농구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어요. 트로피 제작 제안을 받고 나서는 림의 규격, 농구공 크기의 변화, NBA 트로피의 실황 등 많은 조사를 했어요. 경기도 챙겨보게 되고요. 원래도 트로피는 제 연구대상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았죠.

Q. 처음 작업을 시작하셨을 때 어떤 걸 가장 우선적으로 반영하려 하셨나요.
기존의 트로피는 손이 농구공을 받치고 있는 디자인이더라고요. 한 마디로 농구 선수들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 담겨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순간을 담으려 했죠. 그런데 농구 경기를 보다가 선수의 슛이 들어가서 공이 그물 밑으로 떨어지는 찰나의 장면을 포착하게 된 거에요(김병호 작가의 트로피를 거꾸로 뒤집어서 살펴보자. 성공된 슛이 림을 통과해 떨어지고 있다).

Q. 트로피의 주인이 될 선수들의 입장도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선수들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트로피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이즈도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트로피 중 농구공만큼은 공식 경기구와 같은 사이즈로 설정했죠. 리얼한 느낌을 강하게 주려고 했어요.

Q. 전체적으로 트로피의 제작 과정도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다음에 컴퓨터로 드로잉을 하죠. 그렇게 디자인이 확정되면 3D 프린터로 목업(디자인 평가를 위해 만드는 실물 크기의 모형)을 합니다. 이후 목업을 절개해서 알루미늄 주물을 만들어요. 그걸로 용접 작업까지 하면, 매끈하게 만드는 연마 작업인 폴리싱을 해요. 끝으로 우승 트로피이기 때문에 전통방식의 도금을 한 뒤 기포가 남지 않게 진공증착까지 하면 완성이 되는 거죠.

Q.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네요. 제작 과정에서 애로 사항도 있었을 텐데요.
어찌 보면 트로피 제작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거잖아요. 금속만 가지고 만들다 보니 더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목업도 수차례 변경되고, 주문 오류도 있었어요. 버려진 것들이 더 많죠. 골대 그물이 농구공을 감싸야하니 양각 작업도 필요했고요. 정말 많은 엔지니어들과 협력을 했는데, 여태껏 가장 어려웠던 작업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Q. 그렇게 탄생한 트로피에 ‘그들의 여정(Their Journey)’이라는 테마를 부여하셨습니다. 어떤 뜻인가요?
프로스포츠에 있어 팬들도 중요하지만, 결국 코트에서 농구 경기라는 걸 구성하는 스포츠맨들이 있잖아요. 트로피를 위해 농구공이라는 오브제(Objet,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생생활 용품)가 있는 거고요. 제가 말하는 그들의 여정은 선수들의 여정을 뜻해요. 어찌 보면 선수들의 평생이 경기에 담겨있는 거잖아요. 그 시간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이 림 위에서 들어갈 듯 말 듯 돌다가 그물 안으로 딱 떨어졌을 때 느끼는 희열을 표현한 거고요. 군인도 총을 들고 군장을 멘 게 멋있는 거지, 땀에 젖은 양말을 세탁하는 게 멋있는 건 아니잖아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Q. 올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한 트로피도 새로 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만든 이후에 바로 다시 고민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지만(웃음), 선수들이 더 탐낼만한 작품을 만들어야죠. 솔직히 영화도 시즌2가 더 훌륭하기 쉽지 않잖아요. 후작이 더 멋져야 하는데 그런 심리적 부담도 갖고 있어요.

Q. 벌써부터 많은 기대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번 트로피 제작을 발판으로 스포츠계에 활동을 확장할 계획도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스포츠보다는 트로피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근데 트로피계에서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거죠.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있는 모뉴멘트들이 정말 많아요. 과거의 전쟁기념비와는 다르게 자본주의, 경제적 논리에 의해 만들어진 모뉴멘트들이죠. 스포츠에서는 그 절정의 모뉴멘트가 트로피인 거고요. 팀이 가져야 하는 상징성에 있어 소유욕을 불러일으키잖아요. 어떤 트로피는 우승 팀이 탄생할 때마다 돌려서 소장하기도 하지만, 프로농구는 매년 새로운 트로피를 주잖아요. 아티스트가 만드는 트로피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극적인 생산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은 포부가 있어요.

Q. 프로농구계에 역사를 남기신 셈인데, 뿌듯하실 것 같아요.
솔직히 이번 작업도 단순히 하나의 트로피라기 보단 제 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들의 여정이라는 제목도 있는 거고요. 당연히 제 작품이 미술관이나 주요 장소에 영구적으로 설치되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남기는 건 뿌듯하죠. 근데 한편으로는 하면 할수록 책임감도 무거워져요. 예술가는 자신의 번창이 목적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상징성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결코 쉽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죠. 뿌듯하기도 하지만, 부담감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Q. 그 부담감이 더 좋은 작품으로 이어졌으면 하네요. 그렇다면, 이번에 작가님이 남긴 역사를 농구계가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을까요.
항상 모든 게 최고일 수는 없어요.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물건도 없죠. 그래서 이번 트로피는 예술가의 재미있는 시도였다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이 이 트로피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길 바라고요.

Q. 작가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트로피를 향해 긴 시간 땀을 흘릴 선수들에게도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도 선수분들이 더 욕심나는 트로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거에요.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는 더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 거고요. 멋진 상징물을 만들어서 작게나마 스포츠계에 예술가가 만든 트로피가 작은 파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해외의 트로피가 멋있다고 박수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트로피도 멋들어지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요. 저도 최선을 다하는 만큼 선수들도 열심히 뛰셔서 꼭 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시길 바랍니다.

김병호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공학기반의 테크놀러지아트를 공부한 뒤에 본격적인 조각, 설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예술작품을 규범, 규칙과 체계 등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제품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드로잉 대신에 도면을 가지고 철저하게 분업화된 생산시스템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시스템의 요소들을 단위화, 조직화하여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 상해 아라리오 갤러리, 2018), (소마미술관, 2010), (독일 프랑크푸르트시 문화부 스튜디오, 2009) 등 8차례의 개인전과 더불어, <징안국제조각프로젝트>(상하이, 중국, 2012), (사치 갤러리, 런던, 2012) 등 80 여회의 단체전에 작품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서울), 프랑크푸르트시 문화부(프랑크푸르트 암마인, 독일), 서울대학교 미술관, 정부종합청사, New World Development(홍콩), 현대자동차등에도 그의 작가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다양한 퍼포먼스와 아티스트 토크 등을 병행하며 활동하고 있다.

# 사진_ 유용우 기자, 본인 제공점프볼 / 김용호 기자 kk2539@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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