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기사는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농구 시작 이래 가장 긴 공백기 “저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텼죠.”
박하나는 2018-2019시즌 무릎 부상으로 먼발치서 코트를 바라봐야만 했다. 부상여파로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적은 11경기 출전에 그친 박하나는 평균 득점도 2014년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 득점인 7.1점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FA를 앞둔 시점에서 터진 부상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두 번째 FA(자유계약선수)를 맞았다. 그는 원 소속 구단 삼성생명과 연봉 6천만원에 2년 계약했다. 첫 FA자격을 획득했던 2014년, 기록적인 FA 대박의 주인공(연봉 2억1천1백만원)이었던 박하나는 FA로서 대폭 연봉 삭감을 감수하는 처지에 놓였다. 더욱이 불과 1년 전, WKBL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득점상과 자유투상, 그리고 베스트5 등 각종 상을 휩쓸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로선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계약이었지만 박하나는 명예회복을 위해서 받아들였다. 삼성생명이 FA로 풀어 시장에 내놓아 냉정한 평가를 시도한 것도 다 받아들였다.
Q. <점프볼>과 지면 인터뷰 오랜만이시죠.
5, 6년 전인가 이미선 언니와 함께 표지 인터뷰를 찍은 이후로는 거의 처음인 것 같네요. 당시에는 어렸었죠.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남동생(*연세대 농구부 1학년 박종호)이 있는데, 그 때만 해도 동생이 중학교 갓 입학했을 때이니까요. 오랜만이라 사진도 어떤 자세로 찍어야 할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네요.
Q. 큰 부상을 극복하고 코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직도 완전한 몸 상태는 아니에요. 지금도 사실 부상을 계속 안고 있는 채 경기에 출전하고 있거든요. 그나마 재활이 잘 진행됐고, 꾸준히 관리를 하면서 경기에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Q. 무거운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하면 지난 시즌이 맞나요.
2019년 8월 19일에 수술을 했어요. 떨어져 나간 연골만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안일하고 조급했어요. 제가 가벼운 부상이라 여기고 2019-2020시즌 개막전에 맞춰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사실 조금 이르긴 했어요. 결과적으로 그 때 조급했던 게 더 크게 악화됐던 것 같아요. 어쨌든 선수의 가치는 코트에 있을 때 가장 빛나기 마련인데, 저는 코트에 있는 경우가 적었고 그 여파로 FA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죠. 심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던 한해가 아니었나 싶네요.
Q. 한창 기량이 정점을 찍고 있을 때 당한 부상이라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아쉬웠죠. 제가 데뷔 이후 2018-2019시즌 처음 베스트5에 오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부상으로 인해 그 정점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으니까요. 어렵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간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어요.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했어요.
Q. 항간에서는 은퇴를 고려한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어요
사실이에요. 코트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죠. 부상으로 인한 심적 고통도 컸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은퇴를 고민하던 찰나에 우리은행 김정은 언니가 딱 한마디 해주셨어요. "하나야 은퇴는 아니다. 제발 은퇴만은 하지 말아라. 다시 재기할 수 있다"며 제 손을 붙잡아줬요. 정은 언니의 그 말을 듣고 다시 진지하게 저를 돌아보게 됐고, 마음을 다 잡게 됐죠.
Q.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나 자극제가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가족들의 힘이 컸죠. 또 어머니께서 작년에 몸이 안 좋기도 하셨는데 그렇게 몸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제가 다시 농구를 할 수 있게끔 힘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물론 주변인들의 도움도 컸고요. 방금 말했던 정은 언니를 비롯해 (이)경은 언니, 최윤아 코치님 등 저와 같이 무릎부상 전례가 있던 분들 그리고 제가 순조롭게 재활할 수 있도록 옆에서 서포트해주신 하은주 선생님까지. 현직 농구계에 계신 많은 분들로부터 재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큰 도움을 얻었던 것 같아요. 또 그 이후에 저도 다시 마음을 다 잡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멘탈을 컨트롤하려고 더 노력했고요.
Q. 작년에 FA계약을 체결했어요. 흔히 '연봉 삭감'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시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죠. 더욱이 기록적인 FA 대박의 주인공에서 기록적인 FA 삭감을 감수하는 처지에 놓였어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머리가 하얘진다는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 알겠더라고요(웃음). 삼성생명과 재계약하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도 현실을 못 받아들였어요. 계약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혼자 계속 '아 정말 꿈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했어요. 그 때 감독님께서 제게 그러셨어요.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 다시 재기한 뒤에 '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감독님을 저버리겠어요. 감독님 믿고 가는 거죠."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었어요.
Q. 팀에서는 수술을 권유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본인은 끝까지 재활을 고수했어요. 수술 대신 재활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왜,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하잖아요. 저에 대한 확고한 믿음? 그런 게 있었어요. 일단 되는 데 까지는 재활을 해보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니가 무슨 니 몸을 판단하냐' 이런 비판도 듣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재활을 선택했던 것이 지금까지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어요. 또 앞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Q. 아무래도 큰 부상을 당했기에 기량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하나 선수도 이 부분이 걱정됐을 법도 한데요.
맞아요. 그렇게 겉으로 자신 있어 하면서도 내심 걱정도 많았어요. 그래도 완벽한 몸 상태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괜찮은 수준까지만 기량과 몸 상태를 끌어올리자고 목표를 잡았어요. 사실 지금도 잔부상을 안고 뛰고 있기 때문에 저로서도 굉장히 예민해 있고 언제 또 다칠지 모르는 두려움이 있거든요. 지금도 무릎에 조금이라도 무리가 간다 싶으면 바로 확인에 들어가 치료받고 그렇게 꾸준히 관리하고 있어요.
Q. 플레이스타일의 변화는 없었는지요.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어떠한 동작이든 피하면서 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한번은 경은 언니가 말씀해주셨어요. 재활을 하면서 '너가 어떤 동작했을 때 가장 힘들어했고, 또 어떤 동작을 했을 때 그나마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메모를 하고 요령을 터득하라'고 말이죠. 경은 언니의 조언에 따라 그 방법을 실천해봤고, 지금은 어느 정도 이제 적응이 돼서 순간적인 대처법이나 요령이 생긴 것 같아요.

박하나가 삼성생명 유니폼을 입은 지도 벌써 7년 째. 비록 데뷔는 신세계에서 했지만 이제는 삼성생명의 푸른색 유니폼이 더 잘 어울리는 그다. 어느덧 나이도 서른 둘. 삼성생명 팀 내에서도 서열 4위가 됐다. 데뷔 초 뽀얀 피부로 앳된 외모를 뽐내며 많은 남성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그가 어느 덧 언니가 되어 동생들을 챙길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끌어야한다는 책임감도 생겨났다.
Q. 서른 두살의 박하나는 20대 중후반의 박하나와 비교하면 어떤 면이 달라졌을까요.
참을성? 우선 그런 부분이 가장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예전에는 화가 나면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고 저도 베테랑 축에 들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런 인내심이 생겨난 것 같아요.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많이 참고 누르려고 하는 노력하고 있어요. 또 농구적으로도 어릴 때는 나 잘난 맛에 공격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연륜이 쌓이다 보니까 수비적인 디테일이나 경기 조율하는 능력을 점점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농구하면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이미지가 있나요.
어릴 때는 슛, 수비, 패스 등 어느 한 분야에서 잘하는 언니들의 플레이를 보곤 ‘나도 이건 저 언니처럼 해야지’하면서 좀 닮고 싶은 욕심(?)이 많았는데, (변)연하 언니를 보면서 느꼈어요. 제가 연하 언니 선수시절 때 전담수비를 많이 맡기도 했거든요. 보면 활동량이 어마어마하잖아요. 또 그렇게 많이 뛰면서도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패스면 패스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하시는 걸 보고, '아 나도 나중에 30대 중, 후반이 돼서도 저렇게 여전히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이자'라고 다짐하게 됐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연하 언니의 모든 걸 닮을 수는 없지만 연하 언니를 보면서 체력과 꾸준함 이 두 가지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됐죠. 무릎만 잘 견뎌준다면 충분히 자신 있어요(웃음).
Q. 2대2 플레이는 원래 즐겨했나요.
저는 2대2 플레이 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프로 초기 때는 감독 선생님들이 못하게 하셨어요. 김연주 언니처럼 캐치 앤 슈터로만 키우고 싶게 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감독 선생님들이 항상 '넌 잡으면 슛만 쏘라'고 하셨죠. 그 때 또 팀 사정상 (김)지윤 언니, (허)윤자 언니, 정은 언니 등 잘하는 선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제 역할과 비중이 작기도 했고요. 프로에서 2대2 게임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삼성생명 이적한 이후부터인 것 같아요. 임근배 감독님께서 처음 부임하셨을 때부터 그런 쪽으로 기회를 많이 주시기도 했고요.
Q. 팀에서도 중고참이 됐네요. 위치가 위치인만큼 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장면도 많이 보게 되는데, 보통 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요즘 들어서는 어린 선수들에게 부상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해주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큰 부상을 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유경험자로서 그런 얘기를 많이 해주는 거 같아요. 위에 언니들이 저에게 조언해줬던 것처럼 말이죠. 동생들은 저처럼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Q. 어느덧 삼성생명에서 가장 오래 뛰었어요. 본인에게 삼성생명이란 팀은 어떤 존재인가요.
감사한 팀이죠. 삼성생명 유니폼을 입은 것이 제 농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잖아요. 사실 저는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아니었고 능력이 그렇게 특출난 선수도 아니었는데, 구단에서 저의 미래를 내다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잖아요. 또 삼성생명에 와서 저 개인적으로도 많은 커리어도 쌓기도 했고. 감사함과 애정을 갖고 있어요.
Q.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화려한 선수의 이미지보다는 코트에서 열정적이었던 선수?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또 음…10~20년이 지나도 ‘박하나’하면 ‘아! 그 선수?’하고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까 말했듯이 ‘변연하 선수’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고 기억에 남는 선수잖아요. 그렇게 바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선수요!
Q. 팀 목표는 모두가 우승일 거에요. 그렇다면 개인적인 목표가 궁금하네요.
저 포함 지금 같이 뛰고 있는 선수들, 또 재활군에서 코트 복귀를 위해 재활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이 더 이상 부상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시즌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물론 팀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해요. 제 개인적으로는 몸 상태가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Q. 올 시즌 삼성생명 키 플레이어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지금 (이)주연이가 뛰는 자리가 올 시즌 저희 팀의 KEY가 되지 않을까요. 주연이 자리 그 자리가 예빈이도 기복이 있지만 비중이 있고 어느 정도 올라왔고 한별 언니, 혜윤 언니 말할 것도 없고 주연, 이슬이가 될 수도 있고 패기로 수아가 될 수도 있는데 그 자리가 키 플레이어죠.
Q. 농구를 그만두기 전까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은퇴하기 전에 꼭 다시 한번 시상식 무대에 올라 베스트5 상을 받아보고 싶어요. 그렇게 될 수 있겠죠? 하하.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해 팬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져서 저 포함 선수들도 많이 아쉬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팬 분들이 경기장에 오셔서 응원해주셨던 것을 생각하면서 '아 그때가 정말 행복했구나'라면서 팬들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더 느끼고 있어요. 하루 빨리 코로나여파가 수그러들어 다시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코트에서 더 건강한 모습으로 팬 분들이 만족할만한 플레이 보여드릴게요. 많이 응원해주세요.
# 사진_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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