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바언박싱] 덴버 너게츠의 경이로웠던 행진, 그 중심에 선 자말 머레이

서호민 기자 / 기사승인 : 2020-11-28 1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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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서호민 기자] '언박싱(unboxing)'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열어' 구매한 제품의 개봉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언박싱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기대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재미를 얻습니다. 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한 달을 가장 뜨겁게 달굴, 혹은 기대를 모을 키워드와 이슈를 소개합니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 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덴버 너게츠의 2020년 플레이오프는 굉장히 경이로웠습니다. 두 차례나 1승 3패 탈락 위기에 놓였지만 기어이 시리즈를 뒤집었고, 여세를 몰아 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하며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1승 3패 시리즈를 뒤집은 사례는 겨우 13번뿐이며, 단일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두 번 해낸 팀은 덴버가 최초였습니다.

이 같은 반전드라마를 주도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4년차 가드 자말 머레이였습니다. 머레이는 플레이오프 평균 26.5득점을 기록하며 버블이 낳은 최고 신데렐라에 등극했습니다. 돌파, 3점슛, 미드레인지 점퍼 등 농구에서 쓸 수 있는 모든 공격 기술을 자랑이라도 하듯 마음껏 뽐냈습니다. 버블 한정 조던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이니 말이죠. 그의 놀라운 활약상을 살펴봅시다(*경기 기록은 10월 16일 기준). 

몸값 1억 7천만 달러 아깝지 않았다

2019년 여름 덴버 구단 프런트는 리그 4년차 시즌을 앞둔 머레이에게 5년 약 1억 7,000만 달러 맥시멈 계약을 안겼습니다. 2019-2020시즌부터 적용될 이 계약은 간판스타 니콜라 요키치를 훨씬 웃도는 계약 규모였습니다.(2018년 5년 1억 4,800만 달러) 머레이는 2016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입성한 뒤 올스타 선정은커녕 단 한 번도 시즌 평균 20득점 이상조차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장래성은 충분하나 아직은 미완에 가까운 그의 계약 건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는 오버페이 논란이 일었습니다.

덴버의 의도는 확실했습니다. 조쉬 크로엔케 덴버 구단주는 머레이와 연장계약 당시 "난 코트 안팎에서 자말(머레이)을 잘 알고 있다. 그와 계약하기 위해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자말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며 머레이를 향한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요키치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뤄 팀을 이끌어줄 거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렇게 머레이는 연장계약 첫 시즌을 맞이했고 정규리그 59경기에서 평균 18.5득점 4.0리바운드 4.8어시스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대단히 특출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또래 포지션 라이벌들과 비교해 뒤처지지도 않는 성적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플레이오프에서 로소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활약은 정규리그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유타와 1라운드 시리즈부터 득점력이 예사롭지 않았는데요. 폭발력은 그 어떤 선수보다도 대단했습니다. 머레이는 1라운드 7경기에서 38.1분을 뛰며 평균 31.6득점 5.6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야투율은 55%에 육박했고 장기인 3점슛도 경기당 4.6개를 무려 53.3%의 확률로 꽂으며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자랑했습니다. 공격에 관해선 더 이상 흠 잡을 데가 없이 완벽에 가까웠던 것이죠.


특히 3, 4, 5차전 3경기에서는 40득점 이상을 쏟아 부었습니다. 8월 24일 3차전(50득점 11리바운드 7어시스트), 8월 26일 4차전(42득점 8리바운드), 9월 1일 5차전(50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이었습니다.

이 3경기로 머레이는 NBA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머레이는 마이클 조던과 함께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연속 40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한 '유이'한 선수가 됐습니다. 여기서 더 주목할 점은 3, 4차전 그가 92득점을 넣는 동안 실책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실책(턴오버) 기록은 1977년부터 집계됐는데,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연속 40득점 + 무실책' 기록은 머레이가 최초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머레이는 플레이오프 시리즈 1패만 더하면 탈락하는 벼랑 끝 상황에서 50득점을 기록한 3명의 선수 중 1명이 됐습니다.(슬리피 플로이드, 윌트 체임벌린) 여기에 더해 도노반 미첼과의 역대급 쇼다운은 팬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머레이와 마찬가지로 미첼 역시 평균 36.3득점을 퍼부으며 놀라운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머레이와 미첼이 합작한 총 득점은 475점. 이는 NBA 역대 플레이오프 단일 시리즈 최다에 해당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종전 기록 보유자는 제리 웨스트와 존 하블리첵으로 둘은 1969년 파이널에서 463점을 합작했다)

클리퍼스와 서부 준결승에서도 머레이의 활약은 이어졌습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른 탓에 야투 감각이 들쑥날쑥 하기도 했지만 덴버가 승리를 거둔 2, 5, 6, 7차전에서 모두 20+득점을 기록하며 2옵션으로서 제 몫을 다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9월 16일 7차전에서는 3점슛 6개 포함 40득점을 쏟아 부으며 팀을 10년 만에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1승 3패 기적을 써내려가던 덴버의 도전은 컨퍼런스 결승에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덴버는 레이커스에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무릎을 꿇게 되는데, 1라운드부터 치열한 접전을 치르고 올라온 터라 덴버 선수들의 체력은 그야말로 고갈될 때로 고갈된 상태였습니다. 머레이 역시 이 때문에 체력 저하는 물론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을 정도로 온 몸이 부상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그는 이 시리즈 5경기 동안 평균 25득점 4.4리바운드 7.4어시스트로 부상 투혼을 발휘, 마지막 순간까지 코트를 지켰습니다. 레이커스의 르브론 제임스는 "머레이는 이번 버블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였다. 골밑 돌파, 3점 슛, 미드레인지 점프슛 능력 등 다양한 공격 스킬을 갖춘 그를 막기가 정말 힘들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왜 막을 수 없었나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머레이는 도대체 왜 알고도 못 막는 선수가 된 걸까요? 앞서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머레이는 돌파, 3점 슛, 미드레인지 점프슛 등 모든 공격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오펜스 토털 패키지' 유형의 선수이기 때문에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막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닐 것입니다.

가장 먼저 주목할 만한 부분은 돌파 마무리 능력이 향상된 것인데요. NBA.com에 따르면 정규리그 머레이는 제한구역에서 야투율 63.3%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들어서 이 비율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제한구역에서 야투율이 65.5%로 정규리그 대비 2.2% 소폭 증가했습니다. 이는 폴 조지, 카와이 레너드, 파스칼 시아캄, 제이슨 테이텀보다 더 높은 수치라고 하는데요.

 

또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했던 골밑 수비수들이 루디 고베어, 앤써니 데이비스와 같은 리그 정상급 림 프로텍터임을 감안하면 꽤 의미 있는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머레이가 돌파 마무리 솜씨를 뽐낼 수 있었는 데는 '벌크업'이 한 몫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실제 머레이는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기간 동안 웨이트 훈련을 통해 체중을 14파운드(6kg) 가량 늘렸으며 더 강해지고 빨라지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구나 기존 미드레인지 구역에서 강점이 있었던 머레이는 자신의 슈팅 폼이 미드레인지 구역에서 최적화될 수 있도록, 상체의 흔들림이 극소화된 안정된 자세로 슈팅 폼을 수정했습니다.(*미드레인지 장인 자말 머레이의 2019-2020시즌 미드레인지 구역 야투율 정규리그 47.1%, 플레이오프 45.6%)

이 같은 변화로 머레이의 전체적인 득점 효율은 더 높아졌습니다. 정규리그 경기당 15.2개였던 야투 시도 개수가 19.4개로 상승했고, 야투율 역시 50.5%로 정규리그(45.6%) 대비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시스트 창출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림 어택 이후의 패스 숫자가 늘어나면서 머레이의 경기당 어시스트 개수는 4.8개(정규리그)에서 6.6개(플레이오프)로 상승했습니다. 또 픽-앤-롤 횟수도 5.8개(정규리그)에서 9.3개(플레이오프)로 확연히 늘어났습니다.

요키치, 제라미 그랜트 등 빅맨들과 함께 펼치는 픽-앤-롤 공격옵션은 덴버의 주요 공격루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머레이는 플레이오프에서 자신의 공격 중 39.2%를 픽-앤-롤 공격으로 전개했는데, 야투율 역시 50.7%로 높았고 경기당 평균 픽-앤-롤 득점도 10.0득점으로 매우 준수했습니다. 그 결과 머레이는 이번 플레이오프 득점과 어시스트 부문에서 모두 최고 수준의 생산력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머레이의 클러치 능력입니다. NBA.com에 따르면 이번 플레이오프 머레이는 클러치 상황에서 총 39득점을 올렸는데 그보다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는 마이애미의 지미 버틀러(48득점) 뿐이라고 합니다. 실제 머레이는 4쿼터 클러치 상황에서 더욱 높은 집중력을 발휘했는데, 기록을 보더라도 야투율은 55.6%이며 3점슛 성공률도 무려 72.7%에 달할 정도로 효율 면에서도 최고 기량을 자랑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자유투 성공률입니다. 플레이오프 23경기를 치르는 동안 머레이는 클러치 상황에서 단 한 개의 자유투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머레이 특유의 강심장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머레이의 공격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머레이를 막는 상대 수비수들은 앞선에서부터 타이트하게 그를 견제해야 했고, 또 요키치 의존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덴버 전체 팀 공격 흐름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처럼 머레이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이는 그냥 얻어진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 강점이었던 미드레인지 점퍼와 3점슛 성공률을 그대로 유지하되 골밑 돌파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관건은 머레이의 이런 성장이 내년, 내후년에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느냐입니다. 머레이는 레이커스와 컨퍼런스 결승에서 패한 뒤 다음시즌 난 더 강해져 돌아올 것이라는 다짐을 전했습니다.

다행히도 긍정적인 요소는 많습니다. 우선 5년 장기계약 체결에 힘입어 당분간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여기에 머레이는 켄터키 대학시절부터 특유의 성실함을 앞세워 워크에씩(Work Ethic) 측면에서 최고로 평가 받아왔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꾸준함을 증명하는 일만 남았는데요. 한층 더 성장한 머레이가 과연 꾸준한 기량을 이어가 슈퍼스타 반열에 오를수 있을지, 머레이의 향후 행보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자말 머레이 프로필
1997년 2월 23일 캐나다 출생, 193cm 97kg, 포인트가드, 켄터키 대학출신
2016년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덴버 너게츠 지명
2017 NBA 올-루키 세컨드 팀
정규리그 297경기 평균 29.2분 출장 15.6득점(FG 43.9%) 3.6리바운드 3.7어시스트 기록 중

 

#사진_AP/연합뉴스, NBA.com(*샷차트)

 

점프볼 / 서호민 기자 syb2233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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