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된 글이며, 2월 중에 진행됐음을 알립니다.
송도에서 삼성까지 달려온 엘리트의 길
선수 이력을 보면 서동철 감독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걸어왔다. 한국 명가드의 산실인 송도중, 송도고를 거쳐 대학무대의 강호인 고려대에서 파릇파릇한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1991년 입단했던 팀은 바로 삼성전자. 그 당시 농구선수를 꿈꾸고,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부러워할 만한 행보였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이 길에도 서동철 감독만의 후회 아닌 후회도 있었다.
민준구_ 모든 감독에게 드리는 공통 질문이다. 농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특별활동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키가 큰 편에 속했다. 친구들과 워낙 뛰어노는 걸 좋아해서 운동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싶었는데 농구가 있었다. 사실 농구에 대해 잘 몰랐는데, 키 큰 사람들이 하는 거란 얘기에 궁금해서 접하게 됐다. 처음엔 그저 초등학생답게 재밌게 놀았던 것 같다. 그러다 5학년 때 전국소년체전을 위한 인천 지역 예선에 나가게 됐다. 한두 달 정도 연습을 해서 나갔는데 인천시 준우승을 했다. 그때 같이 뛰었던 멤버가 예전에 오리온스에서 코치를 했던 김지홍이다. 이게 내 농구의 시작이었다. 그땐 부모님께 선수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잠깐 경기만 뛰는 거라고 설득을 했던 기억도 난다.
김용호_ 농구계에 정평이 나있는 송도 가드 중 한 명이다. 선수 생활을 하는 데 자부심이 컸을 것 같다.
송도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늘 간직하고 있었다. 송도하면 농구명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아무래도 그 중심에 전규삼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나. 엄밀히 따지면 전규삼 선생님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송도 출신은 곧 선생님의 제자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때는 그만큼 전규삼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과 자부심이 모든 선수들한테 있었다.
서호민_ 송도 이후 고려대로 진학했고, 명문 삼성전자 입단까지 성공했다. 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쉽게 갈 수 없었다고 들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있나.
일단 송도중을 간 것 자체가 농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공부를 하길 바라셨던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송도중을 갈 수 있는지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송도중에 가게 됐는데, 그러면 정확한 목표를 가져야 하지 않나. 송도중에 막 입학했을 때는 송도고와 한 체육관에서 같이 훈련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송도고 형들이 고려대와 연습경기를 많이 했다. 그때 고려대 4학년이 이충희 선배였다. 거의 관중처럼 경기를 보면서 ‘정말 잘하네’라며 감탄했다(웃음). 그리고 그 형들이 농구대잔치를 통해 TV까지 나오는 걸 보면서 고려대에 가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던 거다. 삼성전자를 향한 목표도 비슷했다. 내 기억으론 삼성과 현대가 만나면 현대가 이기는 경기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약자를 응원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하하. 언젠가부터 삼성을 응원하고 있더라. 사실 삼성전자에서 나를 보기엔 그렇게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산업은행에서 은퇴 이후 은행원 자리까지 제안하며 강력한 스카웃이 들어오기도 했다. 근데, 어렸을 때부터 내 목표가 삼성전자였는데 남자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목표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란 생각이었다. 솔직히 입단 후에 잘하는 형들이 너무 많아서 후회도 했었다.
김용호_ 하지만, 삼성전자 입단 이후 빠르게 입대를 했다. 제대해서 돌아왔을 땐 삼성전자가 암흑기를 겪기도 했다. 선수 생활이 매끄러웠다고는 할 수 없는데.
많이 힘들었다. 내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웬만하면 후회를 안 하는 스타일인데, 그때는 후회를 했다. 형들과 연습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좌절을 느끼게 되더라. 경쟁이 어렵겠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래서 팀에서 빠른 입대를 권유받았던 거다. 제대 후에 돌아왔을 땐 문경은 감독이 군대에 가면서 암흑기라면 암흑기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삼성의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시즌이 끝나고 발목에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었다. 말씀드렸듯 삼성전자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 아닌 후회가 있었다. 후회라기보단 판단이 틀렸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마침 1995년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뒤돌아보지 말고 아내와 함께 앞만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 와중에 지도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거다. 선수로서는 스스로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기회가 한 번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삼성생명에서 코치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선수 생활도 더 하고 싶기는 했지만,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싶었다. 아내는 내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해서 새로운 길을 걸어보기로 했던 거다. 그렇게 지도자의 길이 시작됐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도자의 길을 선택할 때 기억은 정말 생생하다.
김용호_ 큰 결심으로 시작된 삼성생명 코치 시절은 어땠나.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1997년에 코치를 시작해서 지금 20년 넘게 지도자를 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지도자 역할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삼성생명 코치 시절은 가뜩이나 처음이라 정신이 없었다. 더욱이 여자농구는 남자농구와 많이 달랐다. 지금도 남녀 농구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분명한 차이가 있다. 훈련의 방법이나 전술도 달랐고, 선수들을 대하고 이끄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서호민_ 1년뿐이었지만, 상무에서도 감독을 했던 이력이 있다.
쉬고 있던 때였는데, 추일승 감독님께서 연락하셨다.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분이었는데, 감독님이 프로무대로 진출하게 되시면서 나에게 상무 감독을 해보겠냐고 하시더라. 나야 감사한 일이지 않나. 그래도 궁금해서 왜 나에게 연락을 하셨냐고 여쭤보니 주변의 추천도 있었고 직접 알아보니 좋은 이미지인 것 같아서 제안한 거라고 하셨다. 상무 시절은 1년이지만 정말 재밌었다. 조상현, 이규섭, 임재현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는데, 그때는 국내대회가 없어서 해외에서만 3개 대회에 출전했다. 첫 대회가 군인선수권대회였는데 선수들이 워낙 신나게 뛰어줘서 준우승까지 했다. 지금 기준으로도 역대급 성적일 거다. 최정예로 출전한 북한도 만나서 이기고 좋은 추억을 남겼다.
민준구_ 그리고 결국 친정이었던 삼성에 코치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 삼성에서 코치 제안을 받고 나서 추일승 감독님의 연락을 다시 받았다. 워낙 상무를 아끼는 마음이 크셨고, 내가 1년 만에 팀을 옮기는 모양새도 걱정스러우셨던 것 같다. 안 가면 안 되겠냐는 말씀을 하셨으니까. 솔직히 다른 팀이었으면 추 감독님의 말을 들었을 거다. 그런데 안준호 감독님이 함께하자고 제안하신 팀이 하필 삼성이었던 거다. 과거에 목표로 삼았던 팀이고, 쟁쟁했던 선배들이 제안받지 못한 자리가 나에게 와서 살면서 한 번 올까 말까 한 행운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삼성이기 때문에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 선택은 후회하지 않는다. 안준호 감독님과 일곱 시즌을 함께했는데, 지도자는 어때야 하는지 배운 게 정말 많다. 그 당시만 해도 코치는 감독의 비서라는 인식이 꽤 있었는데, 안 감독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나에게도 많은 역할을 주시고, 조금 게을러진다 싶으면 야단도 치셨다.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서호민_ 삼성 이후에도 오리온스 코치, KB스타즈 감독까지 남녀 농구를 번갈아 지도했다. 혹시 그 과정에서 혼란은 없었는지.
앞서 말씀드렸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다. 혼란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빠르게 혼란을 해소시키려고 했다. 삼성과 오리온스에서 코치를 하다 프로감독은 여자농구팀에서 처음 하게 된 건데,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다. 그걸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KT에 왔을 때는 혼란이 적었던 것 같다.

KBL에서 코치로서 경험치를 쌓아가던 서동철 감독에게 2013년 프로 감독으로 일할 기회가 찾아온다. 그런데 KBL이 아닌 WKBL이었다. 그에게 어색한 무대는 아니었기에 서동철 감독은 KB스타즈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제는 자신이 생각해왔던 농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펼칠 시간. KB스타즈를 시작으로 여자농구대표팀, 그리고 지금의 KT까지. 서동철 감독은 지도자로서 더욱 부지런히 성장했다.
김용호_ 사실 KT 이전에 KB스타즈의 양궁농구와 런앤건이 있었다. 이런 농구 컬러는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
내가 KB스타즈를 맡았을 당시에 주축선수가 변연하와 강아정이었다. WKBL에서는 굉장히 우수한 슈터들이었다. 이 두 선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는 생각이 강했다. 그 생각으로 외국선수 드래프트에 갔는데 빅맨 중에는 마음에 드는 선수가 한 명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선수가 모니크 커리였다. 우리 팀의 높이가 낮아지더라도 그 선수의 스킬 정도면 상대팀의 수비도 만만치 않게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다. 거기에 홍아란, 정미란까지 외곽슛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사실 양궁농구가 원래 내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선수 구성에 맞는 농구를 찾다 보니 팀 컬러가 되어버린 거다. 어찌 보면 나는 모험을 했던 건데, 색다른 농구라고 조명을 많이 받았다.
김용호_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포함 3시즌 동안 KB스타즈를 이끌고 지휘봉을 내려놨는데, 그다음 시즌에 바로 박지수가 입단했다. ‘혹시 남았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남자로서 그 당시 섣불리 내린 결정도 아니었다. 사실 구단에서는 재계약 의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계약 기간을 짧게 제시했는데 처음엔 나도 사람이다 보니 서운함도 있었다. 내가 잘하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근데 생각해보면 내가 암 투병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이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그런 감독에게 장기간 팀을 맡기는 건 힘든 일이었다. 돌아보니 한 시즌이라도 다시 기회를 주려 했던 구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 내가 멀리 보기 위해 쉬어야겠단 생각으로 팀을 떠났는데, 나중에는 이런 후회도 있었다. 나는 체력을 회복하려고 쉬어간 건데, 주변에서는 내 건강에 대한 걱정이 커지더라. 병원에서도 별문제가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계속 건강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속상한 마음이 있었다. 물론 다들 정말 걱정이 돼서 물어봐 준 거지만, 그 당시엔 건강 안부를 물어보는 게 그렇게 싫었다. 그 시선들을 불식시키기 위해 계속 감독을 해야 했나 싶었다. 하하.
민준구_ 말씀하신 대로 암 투병을 할 만큼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다. 다시 건강해진 지금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일단 의학적으로는 완쾌 판정을 받았다. 아주 건강하다. 확실히 큰일을 겪고 나니 관리를 하게 되더라. 담배도 끊고, 몸에 좋다는 음식도 먹고, 틈이 나면 운동도 해왔다. 지금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단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방에서 영화 한 편 보며 잊기도 하고, 가끔씩 소주 한 잔하고 후다닥 잠들기도 한다.

얼마나 영광인 자리인가. 딸이 둘 있는데, 딸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프로팀 감독이 됐을 때는 안 그랬는데, 국가대표 감독이 되니 좋아해 주더라. 그만큼 상징성이 있는 자리다. 쉽게 말해 KBL에는 프로팀 감독 자리가 10개면, 대표팀은 단 하나이지 않나. 다른 걸 떠나서 대단한 영광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훨씬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지냈고, 도와주셨던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영광스러운 이력 중 하나다.
민준구_ 그 당시 여자대표팀을 이끌면서 아시아 농구, 특히 중국과 일본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걸 느꼈을 텐데.
결국, 내 잘못이었다. 중국과 일본에 뒤처지고 있다고 느꼈던 시간이었고, 실제로 경기를 졌다. 굉장히 괴로웠다. 우리나라 여자농구가 약해졌다는 모습을 보이게 돼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 당시엔 이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김용호_ 희비가 교차했던 시간들을 견뎌내고 KT로 향했다. KBL에 감독으로 컴백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세운 목표는 어떤 거였나.
세 시즌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당시 선수 구성으로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 허훈과 양홍석이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그래도 팀의 짜임새가 괜찮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외국선수도 잘 뽑으면서 첫 시즌은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자는 목표만 세웠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이 많으니 세 시즌 안에는 정상에 도전해보려는 마음이었다. 어쨌든 목표를 높이 잡아야 올라갈 수 있지 않나. 마침 첫 시즌부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희망을 봤다.
민준구_ 결국 KT에서도 양궁농구로 꼴찌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본인에게 있어 양궁농구는 큰 의미일 것 같다.
솔직히 양궁농구라는 팀 컬러를 만들었다는 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요즘 워낙 개성시대이지 않나. 양궁농구를 해서 승리를 했다는 평을 많이 듣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확률이 떨어지면 한계가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그 컬러를 많이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확률 높은 농구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올 시즌은 우리 팀이 양궁농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제는 양궁농구보다 이기는 농구를 하고싶다.

서동철 감독과 KT의 호흡이 더욱 농익어가고 있는 올 시즌. 그만큼 팀의 미래도 밝아지고 있다. 입단과 동시에 주축으로 올라선 허훈과 양홍석은 물론 성장세를 보이는 박준영에 신인 박지원까지. 서동철 감독이 올 시즌뿐만 아니라 다음 시즌에도 당당하게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발판이 마련되고 있다. 그런 희망을 보면서 서동철 감독도 지도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아직 자신의 감독 커리어에 새기지 못한 우승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김용호_ 이제 KT 선수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픈 기억일 수도 있지만, 농구계에는 ‘변거박(변준형을 거르고 박준영)’이라는 단어가 남게 됐다. 올 시즌에서야 박준영이 확실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성장기를 옆에서 함께 겪은 감독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나.
드래프트 당시에도 많이 받았던 질문이지만, 이제는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박준영을 지명할 당시에 질타를 보내신 팬분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해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그때는 팀을 생각하면 빅맨진 보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페인트존에서 1대1을 할 선수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준영이가 프로에 오면서 신장 때문에 한계를 겪고 제 역할을 못 했지만, 내가 원했던 역할을 언젠가 해낼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서 뽑았던 거다. 상대적으로 가드진에는 여유도 있었다. 프로에 오자마자 준영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외부의 질타 중에는 학연 얘기도 있었다. 근데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건 오해다. 앞으로도 팀에 필요한 선수이기 때문에 더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호민_ 양홍석에게는 유독 엄격하다는 평도 있다. 그만큼 애정이 더 크다는 뜻인가.
홍석이한테도 맨날 그렇게 말한다. 야단쳐놓고 잘되라고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웃음). 정말 홍석이는 앞으로 잘 됐으면 하는 선수다. 일단 농구를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한다. 쉽게 말해 농구밖에 모르는 선수다. 훈련도 가장 열심히 하고, 잘하기 위해서 농구 생각만 한다. 신체조건도 훌륭히 갖췄지 않나. 그런 선수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다. 아직은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데에 부족함이 있는데, 그 부족함에 내가 조바심을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지켜볼 줄 알아야 하는데, 빨리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에 잔소리가 늘기도 한다.
민준구_ 올 시즌 신인인 박지원은 슛에 대한 꼬리표가 있다. 선수가 딜레마에 빠지면서 재정비의 시간을 주기도 했는데, 슈팅가드 출신으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
나도 그에 대한 고민이 많다. 지원이에게 어떤 식으로 조언을 해줘야 할까 고민스러운데, 지원이가 의외로 예민한 부분이 있더라(웃음). 그래서 조언을 해주는 게 좋은지, 마음 편히 놔두는 게 좋은지 고민하고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형들과 많은 얘기도 할 것 같아서 아직까진 많은 얘기보단 심플하게만 조언을 주고 있다.
김용호_ 앞서 말한 선수들에 든든한 허훈까지 있다. 이 선수들을 부지런히 이끌어야겠다는 책임감도 클 텐데.
우리 팀 선수들이 다들 능력이 있어서 잘 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 젊은 선수들이 농구를 알고 하는 상태가 되면 진짜 우승권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다. 일단 모두 색이 다르다는 게 장점이다. 그런 면에서 홍석이에게 지적을 했던 게 자신의 농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훈이에게는 훈이의 농구가 있고, 홍석이는 홍석이의 농구가 있다. 각자의 색을 살렸을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는 거다. 색이 같으면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개인과 팀의 미래를 모두 봤을 때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다. 훈이가 신장의 한계 때문에 홍석이의 농구를 하지 못하듯, 홍석이도 훈이 농구를 할 게 아니라 무궁무진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갔으면 한다.
민준구_ 이제 다시 자신을 바라보면, 올 시즌이 KT와 마지막 계약시즌이다. A매치 브레이크를 기준으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있지만, 안정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기 위해서 남은 시즌 어떤 게 필요할까.
남은 시즌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치르려 한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내가 뭔가 달라진다는 얘긴데, 감독이 지금 시점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남자가 애초에 세운 목표가 있으면 밀고 나가야 하지 않겠나. 솔직히 지난 시즌부터 우승 도전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바이런 멀린스에 대한 이슈도 있어 아쉬웠다. 팀 흐름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어쨌든 나는 항상 변화가 있더라도 적응하면서 나아가자는 마음이다. 스스로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게 되면 평정심을 잃고 오버하게 된다. 남은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평소처럼 조바심내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김용호_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질문을 드리려고 한다. 지도자로서는 그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쌓고 있는데 훗날 어떤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래도 우승은 한 번 해본 지도자로 남아야 하지 않겠나(웃음). 이게 맞는 대답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로는 성적이 중요하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지도자 커리어만 돌아봐도 난 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자리들이 나에게 오지 않았나.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승을 하는 지도자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올 시즌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분명히 기회가 있을 거다.
# 인터뷰_ 민준구, 김용호, 서호민 기자
# 정리_ 김용호 기자
# 사진_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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