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장신자 프로그램 부활, ‘KBL 키즈’의 시대가 왔다

최창환 기자 / 기사승인 : 2021-12-03 11: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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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최창환 기자] “점점 저변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농구를 하겠다는 아이들도 줄어들고 있고요. 배구도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도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장신 유망주들을 위한 KBL의 투자는 그렇게 시작됐다. ‘도하 참사’가 일어나는 등 한국농구계가 전반적으로 위기라는 우려가 나왔던 2006년, KBL은 유망주 육성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KBL 장신자 발굴 프로그램(이하 장신자 프로그램). 뒤돌아보면 KBL의 새로운 스타로 부상한 선수들은 물론, 이제 막 데뷔한 슈퍼루키가 어린 시절 성장하는 데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한 프로젝트였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KBL 키즈’ 비기닝


KBL이 2006년 기획한 장신자 프로그램은 이듬해인 2007년 2월, 6명의 장신 선수를 선발하며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장신자 프로그램은 대한민국농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되지 않은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 중 KBL이 기준으로 삼은 신장에 부합한 가운데 엘리트 선수로 등록되면 3년간 농구용품과 훈련 지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장 기준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소아청소년 성장 도표 기준 연령대별 상위 1% 이상’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은 160cm, 중학교 3학년은 195cm 이상이 기준이었다. 선수를 발굴한 지도자에게도 일정 지원금이 전달될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이었다. KBL이 장신자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신자 프로그램 사업을 주도적으로 맡았던 관계자는 “박광호 KBL 경기 본부장이 경기이사를 맡으실 때였다. 점점 농구 저변이 약해지고 있는 데다 농구를 하겠다는 아이들도 줄고 있어 대책이 필요했다.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를 발굴하는 게 중요했고, 연간 20~30명씩 꾸준히 발굴한다면 굉장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집안 환경이 어려워 농구를 망설이는 아이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는 제도였다”라고 설명했다.

박준영(KT) 포함 6명이 첫 수혜자로 이름을 올렸던 장신자 프로그램은 2012년까지 총 107명의 장신 유망주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일본프로농구 B.리그에서 뛰고 있는 양재민(신슈)을 포함해 총 20명.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는 9명이다. 장신자 프로그램은 도입 초기에 장학금 100만 원과 월 30만 원의 지원금(총 36개월)을 지급, 선수당 최대 1180만 원의 지원금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운영됐다. 이들에게는 엘리트 캠프를 비롯해 KBL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됐고, 유망주를 발굴한 농구 종사자에게도 1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관계자는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았다. 아들의 학업, 운동을 두고 고민하던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종현(오리온) 역시 장신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미 한 달 전 대한민국농구협회에 등록된 상태였다. 당시 (이)종현이의 아버지가 굉장히 아쉬워하셨던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많은 장신 유망주가 지원을 받았던 만큼, 아웃풋도 두드러졌다. 2020-2021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얼리엔트리 역대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송교창(KCC), 허훈과 함께 수원 KT에서 원투펀치로 활약 중인 양홍석 모두 장신자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던 선수들이다. 이들이 펼치는 ‘양홍대전’은 벌써부터 KBL 팬들이 기대하는 최고의 매치로 자리매김했다. 드래프트 1순위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초대 수혜자 가운데 1명이었던 박준영이 장신자 프로그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드래프트 1순위(2018년)에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고, 이어 2019년에는 박정현(LG)도 1순위로 지명됐다. 박정현이 1순위로 선발된 2019 드래프트에서는 역대 최다인 6명의 장신자 프로그램 출신 선수가 단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른바 ‘KBL 키즈’도 있었다. 한국남자농구는 2015 U-16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에 이어 2016 U-17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8강에 진출한 바 있다. 한국이 U-16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무려 15년 만의 쾌거였다. 당시 주축으로 활약했던 양재민, 신민석(현대모비스) 등이 장신자 프로그램 출신이었다.

“너무 뿌듯했다. 어렵게 승인을 받으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2015년 당시 대표팀에 장신자 프로그램 출신 선수가 7명이나 있었다. 장신자 프로그램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 대회였다.” 장신자 프로그램 관계자의 회고다. 신민석은 “농구화, 의류, 연습복, 양말, 운동화 등 많은 지원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년 동안 지원을 받았는데, 1년에 약 10cm씩 신장이 자랐던 것 같다. 사실 처음 지원을 받았을 땐 아무것도 모를 나이여서 막연히 ‘(지원)받는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걸 깨달았다. 농구화를 꾸준히 지급 받을 수 있어서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라고 말했다. 신민석의 어머니 역시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현금으로 지원을 받는 형식이었다. 덕분에 용품뿐만 아니라 약, 테이핑을 구입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라고 돌아봤다.

신민석이 전체 4순위로 울산 현대모비스에 지명된 2021 드래프트 역시 2019 드래프트 못지않게 많은 장신자 프로그램 출신들이 프로선수로 발을 내딛게 된 드래프트였다. 신민석 외에 2021-2022시즌 초반 강력한 신인상 후보로 부상한 하윤기(KT), 선상혁(SK), 이민석(DB), 김한영(현대모비스) 등도 장신자 프로그램을 거쳐 프로선수가 됐다. 하윤기는 “농구화를 비롯해 많은 지원을 받았다. KBL 공식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장학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동기부여도 됐다. 지원을 받은 후 키가 더 커야 한다는 생각에 잠도 일찍 자려고 했다”라며 웃었다.

KBL 관계자에 따르면, 하윤기는 엘리트선수가 되기 전 학업성적도 우수해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하윤기의 어머니는 이에 대해 묻자 “처음부터 정식선수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중학교 때 다시 공부를 시작해도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농구화 가격도 부담됐던 건 사실이다. 꼭 지원을 받아서 프로선수까지 가야겠다고 길을 잡은 건 아니지만 큰 도움이 됐던 것은 맞다. 쏠쏠했다(웃음)”라고 말했다. 하윤기의 어머니는 이어 “(하)윤기가 농구를 시작한 후에도 중 1~2학년까지는 홈스테이처럼 집에서도 공부를 하게 했다. 1학년 2학기 때는 제가 직접 함수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데 윤기가 언젠가 ‘다른 친구들은 늦게까지 TV 보다 자는데 나는 쉬는 시간도 못 쉬면서 책 읽고, 숙제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당시 코치님께도 한 소리 들었다. 이후 운동량도 많아져서 농구에 집중했다. 머리가 좋아서 농구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윤기가 ‘나는 공부를 했으면 이렇게까진 못했을 거야’라고 하더라. 윤덕주배에 출전했을 때 대회를 보러 오셨던 김상준 감독님이 ‘여기 있는 아이들 중 프로에 갈 수 있는 선수를 꼽으라면 첫 번째가 윤기’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난다”라고 전했다.

장신자 프로그램 부활, 발굴 이상의 그림을 그린다

사실 장신자 프로그램의 형평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던 시기도 있었다. “가드 중에도 좋은 기량을 갖고 있는 유망주들이 있다. 키가 작다고 장학금을 못 받는 건 형평성에서 어긋나는 게 아니냐.” 당시 아마농구 관계자가 남긴 말이었다. KBL은 이와 같은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중고농구연맹의 추천을 받아 50~70명의 유망주를 엘리트캠프에 초대해 클리닉을 진행하는가 하면 나이키와의 협업을 통해 캠프에 참가한 유망주들에게 나이키 농구화와 의류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장신자 프로그램에 선발됐다고 무조건 3년을 보장해줬던 건 아니다. 나이키 유소년캠프를 비롯한 클리닉 등을 통해 기량, 성장세를 테스트하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 선수들에 대해서는 지원을 줄였다. 대신 이를 통해 확보된 예산을 다른 유망주들에게 투자했다”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KBL이 야심 차게 선보였던 장신자 프로그램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토토 발전기금 용도가 바뀌면서 잠시 자취를 감췄다(2012년에 선발한 유망주들까진 종전처럼 3년 지원이 유지됐다). 일각에서 엘리트 선수 육성은 KBL이 아닌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KBL에는 또 하나의 플랜이 있었다. 2006년 제9차 이사회를 통해 시행한 유소년클럽이었다. 유소년클럽 역시 KBL이 농구 저변 확대, 유망주 발굴을 위해 구상한 프로젝트였다. 2006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10개 팀 모두 유소년클럽을 창설했고, KBL은 2007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매년 유소년클럽 대회를 개최하며 농구 저변 확대에 힘을 쏟았다. 유소년클럽은 엘리트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에 대한 부담이 덜한 데다 선수 입장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다. 취미로 농구를 시작했지만, 적성에 맞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엘리트선수 코스를 밟는 것도 가능하다. 2021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선발된 이정현(오리온)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정현은 전주 KCC 유소년클럽 출신으로 농구를 시작, 엘리트코스를 거쳐 성인 국가대표팀까지 선발됐다. 2021 드래프트 10순위 조은후(KGC)도 KT 유소년클럽에서 처음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이들에 앞서 우동현(KGC), 최진광(KT)도 유소년클럽을 거쳐 프로선수까지 성장한 선수들이다.

잠시 자취를 감춰 표류하는 듯했던 장신자 프로그램은 2019년에 다시 부활했다. 새로운 총재 체제 하에 육성팀을 새로 꾸린 KBL은 앞으로 나아갈 길뿐만 아니라 과거에 호평을 받았던 사업들에 대해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했다. KBL은 이와 함께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다시 장신자 프로그램을 의욕적으로 추진했고, 사라지는 듯했던 장신자 프로그램은 또 한 번의 ‘KBL 키즈’ 육성을 위한 항해를 재개하게 됐다. KBL은 부활한 장신자 프로그램을 통해 최근 2년간 36명의 장신자를 발굴했고, 예전처럼 월 30만 원을 지원하는 등 유망주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보완점에 대해서도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KBL 관계자는 “과거에는 3년 동안 지원한 후 모니터링을 하긴 했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장신자 프로그램을 통해 3년간 지원을 받고 고교에 진학한 선수들에게도 추가적인 지원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발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더 지원할 수 있도록 중고농구연맹과도 꾸준히 상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KBL 장신자 발굴 프로그램 신장 기준
만 10세 165cm
만 11세 175cm
만 12세 180cm
만 13세 185cm
만 14세 190cm
만 15세 195cm

KBL 장신자 발굴 프로그램 출신 프로선수
송교창(KCC), 장문호(SK), 양홍석(KT), 김진용(KCC), 박준영(KT), 김한솔(상무), 박정현(LG), 이윤수(상무), 양재혁(한국가스공사), 이진석(현대모비스), 박찬호(상무), 박상권(DB), 한승희(KGC), 박진철(오리온), 양재민(일본 신슈), 하윤기(KT), 김한영(LG), 신민석(현대모비스), 이민석(DB), 선상혁(SK)

KBL 장신자 발굴 프로그램 출신 대학선수
김형준(한양대), 윤성현(경희대), 장동하(경희대), 이준혁(명지대), 정규화(조선대), 김진호(건국대), 이승구(경희대), 박종호(연세대), 표승빈(한양대)

#사진_점프볼DB,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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