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프볼=서호민 기자] 라건아. 미주리대 시절 제법 촉망받긴 했으나, 평범한 유망주 중 하나였던 그는 어느 날 불현듯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어느 덧 10년이 지났고, 그는 이제 KBL의 장수 외국선수 계보를 논할 때 첫 손에 꼽히는 선수가 됐다. 무엇이 그에게 독기를 풀었을까? 무엇이 그를 버티게 했을까? 그리고 ‘한국인’ 라건아는 오늘과 내일 무엇을 위해 뛸까? 리카르도 라틀리프로 시작해 라건아가 되기까지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다. (*인터뷰는 2월 23일 진행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점프볼 3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라건아는 지난 1월 19일 전주체육관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과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홈경기에서 서장훈(은퇴)이 보유하고 있던 프로농구 역대 최다 리바운드 기록 5235개를 넘어서며 한국 농구 역사의 새 페이지를 열었다. 498경기 5431리바운드. 경기당 평균 10.9개. 라건아가 11시즌 동안 KBL에서 뛰며 세운 기록이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꾸준했는지를 방증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Q__우선 리바운드 대기록 달성한 것을 축하한다.
감사하다.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노력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또 서장훈이라는 전설적인 선수의 기록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더더욱 영광스러웠다.
Q__서장훈과는 신인 시절 1시즌 같은 무대에서 뛰었다. 그를 어떤 선수로 기억하고 있나.
처음 KBL에서 뛰었을 때 서장훈은 은퇴 시즌을 치렀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시즌이었는데도 인상 깊은 장면들을 많이 보여줬다. 유투브를 통해 서장훈의 전성기 시절 영상도 많이 찾아봤는데 기동력도 뛰어나고 외곽슛이나 리바운드 능력도 탁월했다. 지금은 TV를 통해 잘 보고 있다(웃음). 또, 삼성 시절 경기장에 찾아와 한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마치 큰 형이 어린 동생 대하듯 나한테 “많이 성장했구나”라며 장난 섞인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Q__머지 않아 서장훈이 보유하고 있는 통산 득점 1위 기록도 갈아치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당연히 득점 기록도 내가 깰 수 있다면 영광스럽겠지만, 득점보다는 리바운드 기록이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수비 리바운드를 잡았을 때는 속공 기회도 만들어낼 수 있기에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7년 1월 1일, 새해 벽두부터 농구계가 뜨겁게 달궈졌다. 당시 삼성과 KCC의 경기 직후 공식 기자회견장에 나선 라틀리프의 한 마디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라틀리프는 올해 목표를 묻는 질문에 “패스포트(Passport)”라고 답했다. 다시 해석하면 “한국 여권을 원한다”는 짧고 굵은 한 마디였다. 귀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던 그는 그 뒤 1년여 만에 귀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국제농구연맹(FIBA)으로부터 국가대표 자격을 승인받아 이후 국가대표로도 활약 중이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삶이 마냥 그의 바람대로 그려지지는 않았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혐오·차별 등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한국은 사랑 그리고 자부심, 그 자체다.
Q__올해로 한국에 들어온지 10년 째가 됐다. 자신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작용할 것 같기도 한데.
처음 한국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당시에는 퇴출 루머가 돌기도 했는데 결국 버티고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 아이라 클라크, 로드 벤슨 등 당시 같은 팀에서 뛰었던 외국 선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운 좋게 우승도 네 차례 할 수 있었다. 또,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삼성에 지명됐고 한국 국적까지 취득했다. 그리고 KCC에서 우승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나에게는 큰 행복과 축복이다.
Q__사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평범한 유망주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 무기를 하나 하나 씩 추가하며 눈부신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낸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배고픔이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이 나는 유년기 시절 어렵게 자랐다. 항상 성공에 대한 열망을 안고 농구를 했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 곳이 굉장히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 다른 외국 선수들은 매년 여기저기 많이 옮겨 다니곤 하는데 나는 나에게 잘 맞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정착된 삶을 사는 게 목표였다. 농구적으로도 똑같은 농구를 하는 게 아니라 매년 하나 하나 씩 무기를 추가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물론 가족 그리고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Q__데뷔 초기 때는 멘탈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지금 현재 이 같은 평가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인 때는 말수가 적었고 감정 기복도 심했다. 경기 때 감정 표출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에 비하면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양동근 같은 리더들을 보면서 배운 점도 크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도 어느 정도 찼기 때문에 리더로서 젊은 선수들을 독려하려고 한다.
Q__양동근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나.
내가 신인이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와주고 기뻐해준 선수였다. 처음부터 열린 마음으로 나를 받아줬고 유재학 감독님의 스타일을 알려주려고 했다. 양동근이 영어는 못했지만 신인 때부터 먼저 다가와서 도와줬다. 물론 함지훈과 이대성도 고마웠다.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코치로서 현장에 다시 복귀해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얼마 전 올스타 게임 때 같은 팀 코치-선수로 함께 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초반에 말씀했다시피 한국 생활이 잘 맞는다면 한국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한국인으로 귀화하는 것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웃음). 그 당시에는 특별 귀화 규정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모비스 소속으로 윌리엄존스컵 대회에 참가했을 때 퀸시 데이비스(대만), 안드레 블라체(필리핀) 등이 귀화 선수라는 것을 알았고 그 때부터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Q__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뛴 순간도 뜻 깊었을 것 같다.
나에게는 엄청난 순간이었다. 딸 레아가 태어난 것, 그리고 결혼 다음으로 가장 큰 사건이다. 그 이후로 나는 최선을 다해 나라를 대표해왔다. 태극 마크를 달고 여러 나라를 상대하는 것에 대해 큰 축복을 느끼고 있다.
Q__귀화 이후 마냥 좋았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인종차별이었다. 또, 남들이 쉽게 잡는 택시를 못 잡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몇 년전에는 경비원과 시비가 붙어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낤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크게 마음에 담아두려고 하지 않는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고 성숙해졌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그 문화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당연히 제가 살아온 환경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 차이에 대해 받아들이려고 한다.
Q__미국에 계신 어머니가 아들의 성공 과정을 보고 엄청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들었다.
마을 주변 사람들에게 매일 같이 제가 KBL에서 뛰는 영상을 보여주시면서 아들 자랑을 하신다고 들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어렵게 저를 키우셨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도 제가 한국에서 적응하고 성공해왔던 것에 대해 더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것 같다.
Q__슬하에 딸 리아가 있다. 집에서는 어떤 아빠인가.
코트에서는 완전 정반대다(웃음).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없이 자랐기 때문에 최대한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해주려고 한다. 평소에는 딸과 바비 인형을 갖고 집에서 논다. 완전 딸바보다. 상상이 잘 안 되지 않나. 하하. 딸도 지금은 미국보다 한국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가끔 미국에 놀러가면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고 조를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다.
Q__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아직까지 KBL에서 국내 선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섭섭함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전혀 민감한 질문이 아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나는 애초에 토종 한국인이 아니다. 내가 국내 선수로 등록된다면 토종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선수로 등록이 된다면 아무래도 내가 소속된 팀 전력에 무게가 쏠릴 수 있다.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게 나에게 상처가 되거나 딱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Q__최근에는 3점슛 시도 빈도가 높아졌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운동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점을 대비한 옵션이다. 사실 3점슛은 과거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주 시도했었다. 그러다가 미주리대에 편입한 이후로는 코치진에서 나한테 원하시는 역할이 있었기에 잠시 봉인했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올 시즌은 외곽슛에 대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시즌이 아닌가 싶다. 감독님께서도 슈팅에 대한 믿음을 주시고 있다.
Q__한국에서 보여준 기량이면 NBA도 충분히 도전할만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NBA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아쉬움은 없나.
딱히 아쉬움은 없다. 나는 애초에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했고, 그 당시에는 가난에 찌들어 사는게 너무 힘들다보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그게 한국이었고 내 선택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를 한 적이 없다.
Q__어느 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지.
40살까지는 한번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지금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3점슛을 쏴야 한다(웃음).
Q__한국에서 10시즌을 뛰었고, 역대 최고 외국선수라고 평가 받는다. 앞으로 한국에서 뛰는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는?
많은 것을 이뤘지만 영구결번을 받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대표팀 그리고 리그 차원에서 영구결번이 돼 보고 싶다. 나의 최종 꿈이다. 또 지금은 KCC 우승하는 데 초점 맞추고 있다. 지난 해 특별귀화선수 드래프트 참가 때 유일하게 오퍼를 건넨 팀이 KCC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꼭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라건아를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지난 10년 동안 저를 많이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정말 돌이켜보면 긴 세월이었다. 기쁜 순간도 또 슬픈 순간도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코트에서 팬들의 성원에 걸맞는 경기력으로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그리고 국가대표로도 꼭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__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 선수는?
트로이 길렌워터다. 길렌워터처럼 다재다능한 선수를 까다로워한다. 길렌워터는 힘, 슈팅력, 기술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들을 갖추고 있다. 또, 길렌워터는 힘이 워낙 좋아 상대하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Q__이대성과 최준용은 본인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내가 처음 모비스에 왔을 때 대쉬(이대성)가 첫 마디로 “우린 베스트 프렌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땐 ‘뭐지?’하고 좀 의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베스트 프렌드가 됐다. 또 대쉬로 인해 초이(최준용)와도 친해지게 됐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는 형제처럼 서로의 곁을 지켜줬다.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이대성과 최준용이 저를 위로해줬고, 또 이대성과 최준용이 기분이 안 좋으면 내가 그들을 찾아가 위로해줬다. 우린 가족 같은 존재다.
++대쉬 vs 초이
하하 어려운 질문이다. 그때 그때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관심분야 측면에서는 초이가 더 맞는 것 같다. 나처럼 패션이나 힙합, 문신 등에 관심이 많다. 보통 한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튀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대쉬가 조금 더 맞는 것 같다. 초이가 신나는 타입이라면 대쉬는 좀 더 진지한 쪽에 가깝다.
Q__유재학, 전창진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농담조로) 하하. 딱 한마디로 정리하겠다. 올드스쿨~

‘절친’ 이대성과 최준용이 말하는 라건아
대성 to 건아_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평가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역량을 지닌 선수다. 전설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꾸준함을 정말 높이 사고 싶다. 사실 반짝 잘하고 그만 두는 선수는 많다. 선수들 역시 꾸준함을 이어가는게 가장 어려운거라고 하는데 라건아는 그걸 극복해내고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 KBL에서 같이 뛰는 선수 그리고 친한 친구로서 존경심을 갖고 있고 그가 앞으로도 KBL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리그를 빛내줬으면 좋겠다.
준용 to 건아_라건아는 에브리데이, 올데이 선수다(웃음). 다른 팀으로 옮겼지만, 항상 라건아한테 하는 말이 있다. 내 마음속에 최고의 선수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 온 선수다. 지금은 가족이다.
라건아가 남긴 기록
정규리그 498경기 14272분 33초 출장 9471점 5431리바운드 1034어시스트 325스틸 607블록슛 기록 중(*3월 25일 기준)
득점 – 9471점(통산 5위)
리바운드 – 5431개(통산 1위)
블록 – 607개(통산 2위)
더블더블 – 333회(통산 1위)
연속 더블더블 – 59경기(통산 1위)
20-10 – 208회(통산 1위)
20-20 – 13회(통산 1위)
▼ 라건아 프로필
생년월일
1989년 2월 20일
신장/체중
199.2cm/110kg
포지션
센터
출신학교
미주리대
모비스-삼성-현대모비스-KCC
#사진_유용우 기자, 이대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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