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BL 판도 흔드는 PROFESSOR SUL, 안양 KGC 제러드 설린저

민준구 / 기사승인 : 2021-05-02 09: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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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17년 전, KBL에 찾아온 한 명의 ‘농구 교수’는 전국을 뒤흔들었다. 그의 이름은 단테 존스. 17년이 흐른 뒤 존스를 떠올리게 하는 또 한 명의 교수가 찾아왔다. 바로 안양 KGC인삼공사의 V3를 이끌 제러드 설린저(29)다. NBA 출신으로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한 그가 수많은 수강생들을 위해 명강의를 펼치고 있다.

※ 본 인터뷰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된 글이며, 4강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에 진행되었음을 알립니다.

뭐? 제러드 설린저가 온다고?
설린저는 지난 시즌 에메카 오카포 이후 가장 화려한 NBA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보스턴 셀틱스, 토론토 랩터스에서 통산 269경기를 출전했고 평균 10.8득점 7.5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런 그가 KBL, 그리고 KGC인삼공사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누구 하나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만큼 설린저는 큰 기대를 품게 하는 남자였다.

Q. 한국에서 생활은 어떤가.
매우 만족하고 있다. 팀 메이트, 코칭 스태프, 트레이너, 그리고 구단 직원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지금의 시간이 행복하다.

Q. NBA 커리어도 잠시 끊겼다. 중국으로 향한 후에도 2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다. 계속된 부상이 문제였다고 하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나.
부상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에 있었다. 2년의 휴식기 동안 쌍둥이를 얻었다. 제러드 주니어, 그리고 젬마 마리는 나의 모든 것이자 또 내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들과 아내가 건강하고 편안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같이 있으려 했다. 2년 후 다시 농구를 하게 되더라도 가족들 모두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Q. NBA 시절을 기억하는 한국 팬들이 많다.
5년 정도 NBA에서 뛰었다. 보스턴, 그리고 토론토에서 뛰었던 모든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농구를 잘하는 선수들과 함께 뛰었고 또 경쟁했다. 개인 기록을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는데 특히 보스턴 입단 시절, 케빈 가넷과 폴 피어스, 제이슨 테리, 라존 론도, 제프 그린 등 베테랑 선수들이 많았다. 많은 것을 배웠다.

Q. NBA에서 뛰다가 갑자기 중국으로 향한 이유가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중국프로농구(CBA)가 유럽보다 일정이 짧기 때문이다. 만약 NBA에서 영입 제의가 올 경우를 대비해 유럽이 아닌 중국을 선택했다. 복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Q. NBA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KBL에서 뛰고 있다. 이에 대한 과정을 설명해 달라.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NBA는 코로나19로 인해 굉장히 제한적인 리그 운영을 하고 있다. 또 Health and Safety Protocols(NBA 코로나19 프로토콜 지침)로 인해 복귀가 어려워 보였다. 그때 KGC인삼공사, 그리고 김승기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 오는 것에 큰 장벽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KBL행을 결정하게 됐다.

Q. KBL과 CBA의 차이는 무엇인가.
큰 차이는 없다. 내게 있어 KBL과 CBA 모두 농구를 할 수 있는 프로 리그이며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NBA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농구는 항상 같다.

갈피 잃은 KGC인삼공사를 바로잡아준 남자
KGC인삼공사는 얼 클락, 크리스 맥컬러 등 NBA 커리어를 보유한 외국선수들을 차례로 갈아치우는 등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경기력도 불안정했다. 우승후보로 꼽혔던 그들은 중위권 경쟁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김승기 감독은 결국 칼을 빼들었고 마지막 남은 한 장의 외국선수 교체 카드를 설린저에게 사용했다.

Q. NBA, 그리고 CBA 시절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얇은 몸을 자랑(?)하고 있다.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프로 선수로서 체중이 많이 나가면 부상 위험이 높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쉬는 동안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NBA 시절에는 체중 때문에 구단 관계자와 마찰이 있기도 했다. 주위에서 체중 감량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스스로 깨닫게 됐고 결국 체중을 감량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

Q. KGC인삼공사에 처음 합류했을 때의 첫인상은 어땠나.
시설격리 중에 내가 상대해야 할 외국선수들의 경기, 그리고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살펴봤다. 좋은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리바운드가 약해 보였지만 내가 도움이 될 거라고 봤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직접 코트에 서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본인이 오기 전, 이미 같은 NBA 출신 얼 클락과 크리스 맥컬러가 실패를 겪었다. 걱정은 없었나.
나는 다른 선수의 활약, 부진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내게 집중할 뿐이다. 부담? 걱정? 크게 중요하지 않다.

Q. 한국 생활에 대해선 라타비우스 윌리엄스에게 큰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테이(라타비우스 윌리엄스의 애칭)는 내게 있어 큰 도움이 되는 존재다. 또 KGC인삼공사에서 만난 최고의 팀메이트다. 내가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또 팀과 리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

Q. 데뷔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2경기는 다소 아쉬웠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을까.
처음 몇 경기는 내 폐가 터지지 않기를 바랐다(웃음). 2주의 시설격리 후 4일 동안 3경기를 소화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정상적으로 뛸 수 있기를 바랄뿐이었다.

Q. KT와의 6라운드 맞대결에선 무려 41득점 18리바운드 2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본인의 컨디션은 70%에 불과하다고 했다. 100%가 되면 더 무서워지는 것인가.
플레이오프에 들어오면서 100% 컨디션이 된 것 같다. 지금 내가 코트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처음 이곳에서 경기를 했을 때 전혀 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100%가 된다면? 그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나의 신발이 땀으로 가득 찰 때까지 경기를 하며 KBL에 적응할 생각이다.

Q. 당시 경쟁자 허훈에 대해선 극찬하기도 했다. 그와의 경기에 굉장히 만족한 느낌이었다.
(허훈은)정말 막기 어려운 선수다. 개인 득점능력은 물론 팀의 득점을 창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상대팀의 입장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선수다. 허훈은 포인트가드에 대한 기대, 그리고 보고 싶은 모습을 보여줬다.

Q. 한국에선 설린저 선수에 대해 설교수라고 부른다. 그만큼 농구를 잘한다는 뜻이다.
재밌는 별명이고 또 마음에 든다. 나는 살면서 교수나 박사로 불릴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은 교육자 집안이다. 어머니는 수학 선생님이신데 아마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실 것 같다.

Q. 조나단 모트리와 맞대결은 충격적이었다. 대등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압도했다. 모트리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숀 롱과 함께 가장 압도적인 외국선수로 평가됐다.
이전에도 언급했듯 외부의 것들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상대가 어느 정도의 네임 밸류를 지녔으며 커리어가 좋은지, 안 좋은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언제든 나의 경기만 신경 쓴다.

Q. 플레이오프는 정규리그와 분명히 다르다. 무게감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플레이오프는 내일이 없다. 오로지 오늘만이 있을 뿐이다. 6강, 4강, 챔피언결정전 모두 나를 아낀 채로 다음 경기를 준비할 정도의 여유는 없다. 매 경기 나의 모든 것을 쏟아내지 않는다면 다음 경기에 대한 기회 역시 얻을 수 없을 것이다.

Q. KT의 강한 도전을 이겨냈다. 이제는 4강 플레이오프인데 현대모비스에는 롱이 있다.
롱은 KBL 외국선수 MVP에 선정될 정도로 좋은 선수다. MVP가 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득점 능력이 좋고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넣을 줄 아는 선수다. 리바운드도 잘하더라. G-리그, 그리고 중국에서 만나본 적도 있다. 굉장히 기대된다.

Q. KGC인삼공사는 현재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 당신이 합류한 이후 완전히 다른 팀이 되며 얻은 평가다.
나의 목표 역시 우승이다. 다른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의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Q. 비교적 이른 시기의 질문일 수도 있다. 다음 시즌에도 설교수가 KBL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지금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 것 같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이라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향후 거취에 대한 논의는 곧 할 예정이다. 곧 결정하겠다.

설린저의 최종 행선지는 NBA
설린저는 1992년생이다. NBA 출신으로서 프로 커리어를 KBL에서 마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이기도 하다. 설린저는 아직 NBA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젊고 건강하다. 그리고 기량 역시 일취월장했다. 설린저는 자신이 NBA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

Q. NBA 재진입에 대한 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굉장히 크다. NBA로 돌아가는 것이 내게 있어 최종 목표다. 모두가 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과 달리 더 건강하고 더 강해졌다.

Q. 가족들도 옆에서 많이 응원할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은 내게 있어 최고의 서포터다. 또 지금은 가까이 있지 않지만 어느 곳에서든 나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은 시차가 큰 편이다. 그럼에도 경기가 있을 때는 새벽에도 일어나 유튜브 중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청한다. 그 정도로 애정이 크다.

Q. 과거 NBA에서 뛰었을 때와 현재의 본인은 기량적인 면에서 얼마나 차이를 보이고 있나.
농구 선수로서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해졌다. 내 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더 날씬한 선수가 됐다(웃음). 기대해도 좋다.

Q. NBA 시절에는 3점슛을 자주 던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커리어 내내 3점슛을 던질 줄 아는 선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큰 오해다. 하하.

Q. 경기 전 루틴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굉장히 이른 시간에 코트에 나온다. 또 몸을 푸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패턴이 있는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영업 비밀이라서 쉽게 알려줄 수 없다(웃음). NBA, 그리고 보스턴에 처음 도착했을 때 (폴)피어스가 해준 조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실제로 신인 때는 경기 전 몸을 제대로 풀 시간이 부족했다. 베테랑들이 많은 팀이었기에 신인이 코트를 오래 쓸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일찍 코트에 나와 경기 준비를 했고 그때의 루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케빈)가넷은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슈팅 연습을 하며 리듬, 그리고 감각을 끌어올린다.

Q. 본인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를 준 선수는 누구인가.
나의 큰 형들인 J.J 설린저, 그리고 줄리안 설린저다. 내 생각에는 나라는 사람은 이 둘을 섞어놓은 것 같다. 그들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얻고 있다.

Q. 뻔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물어보고 싶다. 현재 KBL 선수들 중 NBA에 도전해볼만한 선수는 누구인가.
허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 팀을 제외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터프한 선수다. 가드로서 코트 위에서 자신의 플레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선수다.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Q.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지금은 행복한가.
한국, 그리고 KBL에 오게 돼 기쁘다. 좋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농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Q. 다시 NBA에 가더라도 우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고마운 말이다. 절대 잊지 않겠다.

제러드 설린저 프로필_
1992년 3월 4일생, 206cm/117kg, 포워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HISTORY | 설린저 이전 명교수였던 ‘단교수’ 단테 존스

KBL에는 설린저 이전에 최고의 명강의로 유명했던 ‘단교수’ 단테 존스가 있었다. 안양을 넘어 전국을 들썩이게 한 존스는 우리가 아는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사실 KBL 여러 구단이 구애했지만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던 선수가 존스였다. 미시시피 주립대학 시절인 1996년 켄터키 대학을 꺾고 NCAA 전미 토너먼트 파이널 포를 이끈 에이스, 그리고 1996 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21순위로 지명된 그의 콧대는 높았다. 이때 존스의 마음을 돌린 건 당시 SBS에서 뛰고 있던 주니어 버로였다.

김동광 당시 SBS 감독은 “어떤 말을 해도 설득되지 않았던 존스가 버로의 통화 한 번에 마음을 돌렸다”라고 회상했다. KBL에 안착한 존스는 대단했다.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페이드웨이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SBS는 존스와 함께 15연승을 달리며 4년 만에 4강 진출을 이루기도 했다.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프로페셔널했던 것이 존스다.

특히 팬서비스가 좋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SBS를 후원하던 FILA가 명동에서 연 사인회에서 아주머니들까지 찾아와 존스의 사인을 받아갔다. 단순히 인기가 많아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전부터 체육관에 찾아온 모든 팬들에게 친절히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함께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0년대 중반 농구를 좋아하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단교수’로 불린 존스가 남아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설린저를 보면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온다면 존스는 마음을 뜨겁게 했다고.

# 사진_ 점프볼 DB(유용우, 백승철 기자), KBL 제공

점프볼 / 민준구 기자 minjungu@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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