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타고난 재능
재능은 역시 타고나야 한다. 대학생 때까지 줄곧 농구만 한 할로웨이지만, 그가 야생마처럼 코트를 누비는 모습에 다수의 NFL(미 프로풋볼리그) 스카우트들이 반해 러브콜을 보냈다. 이에 대학 졸업 후 바로 NFL에 몸을 담군 할로웨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할로웨이는 결국 자신의 오랜 벗인 농구를 다시 택했다.
농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5살 때부터 시작했다. 어머니의 권유였다. 처음에는 농구만 한 게 아니라 야구, 미식축구 등 많은 스포츠를 접했다. 그러면서 내게 맞는 종목을 찾아갔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컸나?
그러진 않았다. 보통이었다.
대학까지 줄곧 농구만 하다가 졸업 후 바로 NFL을 가게 된 배경은?
NFL 몇 명 코치들이 TV에서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러브콜을 보냈다. 경기장에도 몇 번 왔다. 그러더니 움직임이나 신체 조건이 딱 미식축구를 하기에 적합하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NBA와 NFL 두 군데 모두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그때는 NFL에서 더 좋게 봐준 것 같다(웃음).
NFL 어느 팀으로 입단했나? 포지션은?
볼티모어 레이븐스였다. 2013년 당시 우승팀이었다. 포지션은 타이트 엔드로 양쪽 측면에서 상대를 막는 역할이었다.
다시 농구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미식축구는 어색했다. 농구가 역시 편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용어 같은 것도 당연히 익숙했고 그래서 다시 농구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외에서 첫 프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힘든 시간이었다. 첫해 터키에서 생활했는데 제때 돈을 주지 않았다. 임금 체불 문제가 있었다. 그때 당시 해외에서 프로 생활을 해야겠다는 내 결정이 ‘매우 잘못된 선택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후 이스라엘 독일 프랑스 등을 거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이후 한국으로 왔다. 유럽에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보내면서 아시아 무대로 눈을 돌린 까닭은?
당시 (인천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과 변영재 통역(이하 YJ)이 나를 보러 유럽까지 왔다. 그러면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를 좋게 봐줬다. 신장 제한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좀 더 편하게 농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듣기로는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 ‘레전드’ 리카르도 포웰과도 절친한 사이라고?
나에게도 ‘레전드’다. 같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이다. 사실, (리카르도) 포웰이 먼저 KBL에 관해 소개해줬다. 유 감독과 YJ랑 만나기 전부터 한국에 대해 굉장히 좋게 말해줬다. 이미 한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상태여서 이후 한국행을 결정하는데 크게 힘들지 않았다.
포웰은 요새 어떻게 지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한 고등학교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열정적이다.
과거 전자랜드의 남자
할로웨이를 보면 아직도 전자랜드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있다. 그만큼 팀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대단했다. 진심으로 헌신했던 그다. 동시에 유 감독과 변 통역과의 관계도 특별하다고 전한 할로웨이는 인천 팬들에게 꼭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유 감독과 변 통역은 어떤 존재?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 가족 같은 존재다. 나를 한국으로 처음 데려와 준 사람들이고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해준 사람들이다. 감사하다. 또 한국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까지 (내) 가족들을 보러 와주기까지 했다. 신장 제한이 풀리고 난 이후에도 나와 함께 하면서 좋은 인연을 쌓았다.
올 시즌 상대편으로 재회한 소감은?
다시 봐서 행복했고 기뻤다. 여전히 옛 동료들과 감독, 코치 스태프들을 사랑한다. 다만 구단 연고지와 명칭이 바뀌어서 지역 팬들이 달라져 라이벌 의식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이점이 살짝 아쉬웠다.
인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응원해주고 반겨줘서 감사했다. 부상으로 인해 집에 가야 했을 때도 DM으로 많은 메시지를 보내줬다. 그중 돌아와달라는 말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따뜻하게 느껴져서 너무 좋았고 여전히 감사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첫 번째 시즌(2018-2019) 발등 부상으로 20경기도 채 치르지 못했다. 다만 한국에 남아 잔여 연봉을 받으며 재활을 택할 수 있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갔다. 당시를 설명하자면?
일단 (내가) 뛸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호하게 있고 싶지는 않았다. 괜히 시간만 보내며 거짓말하기는 싫었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그때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했고, 팀도 다시 돌아왔을 때 남은 연봉을 지급하기로 했다. (나는)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내가 돌아오면 그때 알아서 달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더불어 그 시즌 팀이 챔피언결정전에 나가서 위기(2차전 기디 팟츠 부상)에 처했을 때, 대체 외국선수 투 할로웨이를 극적으로 합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당시 전자랜드는) 한국 무대에서의 내 첫 팀이고 우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마침 (투) 할로웨이가 쉬고 있었고 바로 전화를 걸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라고 말했다(웃음). 당시 전자랜드가 아직 할로웨이랑 접촉하기도 전이었다. (할로웨이가) 질문을 많이 했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믿고 별말 없이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제는 오리온의 기둥
어느덧 한국서 세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할로웨이는 주황색 유니폼을 벗고 빨간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는 어엿한 오리온의 기둥이 됐다. 올 시즌 1옵션의 부진으로 그 몫을 대신하고 있는 할로웨이는 한국 무대서 단 한 번도 치러 내지 못한 시즌 완주 목표도 함께 두고 있다.
한국서 있었던 지난 세 시즌, 단 한 번도 시즌 완주를 하지 못했다. 올 시즌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텐데?
첫 번째 시즌(2018-2019)은 부상, 두 번째 시즌(2019-2020)은 코로나로 의도치 않게 시즌 완주를 하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 시즌을 소화하고 싶다. 다만 코로나로 인한 중단도 2020년 3월에 단행되었던 걸로 안다. 아직 1월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웃음).
올 시즌 1옵션의 부진과 부재로 출전 시간이 많았다. 체력적으로 어떤가?
계속 괜찮다가 가장 최근 (창원) LG와 4라운드 경기에서 좀 힘들다고 느꼈다. 그날은 (제임스) 메이스 합류 후 첫 경기였다. 그동안 (내가) 팀의 유일한 외국선수였기에 (내가) 잘못하면 (팀이) 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또 상대 외국선수들이 나보다 대부분 신장이 커서 주로 몸과 힘을 많이 써야 했다. 육체적으로도 피곤이 쌓였었다.
다른 특별한 부상은?
없다. 건강하다.
제임스 메이스의 합류 소식을 굉장히 반겼다. SNS를 통해서는 존경심까지 표했는데?
16살 때 처음으로 메이스가 농구 하는 것을 봤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클램슨대를 나왔는데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35살이라는 나이에 현역으로 뛴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 실제로 만나보면 별로인 사람도 있지만, 인간적으로도 완벽한 그의 프로페셔널함이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오리온 농구의 차이점은?
농구 측면에서는 크게 차이는 없다. 다만 유 감독과 비교해 강을준 감독은 고함을 거의 지르지 않는다는 점(웃음)? 실력 있는 선수들이 있다는 점과 빠르고 공격 농구를 한다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팀 ‘원투펀치’ 이승현과 이대성에 대해 말하자면?
이승현은 한국 최고의 빅맨이다. 슛도 가능하고, 터프하고, 골밑에서 포스트 업 공격과 리바운드를 잡아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다. 더불어 나의 자유투를 돕고 있다. 이승현이 알려준 방법대로 백보드를 이용해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아직은 좀 더 연습이 필요하다.
이대성 역시 최고의 리더다. 오리온의 농구 문화를 바꾼 선수라고 말하고 싶다. 전자랜드에 있을 때는 오리온이 그리 강팀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성이 오고 나서부터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승리 문화로 잘 만든 거 같다. 여기에 이승현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더 좋은 팀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영어를 해줘서 고맙다. 많이 좋아한다.
신인 이정현도 특별히 아끼는 것 같은데?
이정현은 신인이지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기복이 조금 있긴 하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선수가 될 것 같다. 옆에는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이대성과 한호빈 같은 훌륭한 선수도 있다. 거기에 나도 얼마나 한국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에는 그를 최대한 돕고자 한다.
그 밖에도 팀 내 친하게 지내는 선수가 있다면?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내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다 나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한다. 그중 굳이 뽑자면 임종일? 영어가 좀 된다. 또 박진철도 소통이 된다. 그리고 최승욱, 문시윤하고도 친하게 지낸다.
3년 차 한국 생활은 어떤가?
올해는 구단서 제공해주는 차가 있다. 이전에 택시를 타면 멀미가 났는데 이 점이 확실히 좋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은 음식이 최고다. 먹기가 편하고 맛있다. 그중 후라이드 치킨이 최고. 다른 생활적인 면에서도 모든 것이 가깝고 사람들이 친절해 살기 좋다.
직접 운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는지?
교통 체증이 심해 몰리는 시간에는 운전을 피한다. 오후 4시, 저녁 7시 사이에는 운전을 거의 안 한다. 미국에 있을 때랑 가장 큰 차이점이다. 미국은 차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전에 미리 이동하거나 7시 이후에만 운전한다.
주로 가는 곳은?
쉬는 날이면 이태원을 자주 간다. 맛있는 집들이 많다. 특히 유명 작곡가라고 들은 돈 스파이크 바베큐 집을 한번 가보고 싶다. 가려고 할 때마다 예약이 다 차 있어 못 가고 있다(웃음).
지난 크리스마스 (울산) 현대모비스와 3라운드 경기서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50분 풀타임 소화하며 27점 27리바운드 7어시스트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 값진 승리까지 챙겼다. 최고의 선물이지 않았는지? 당시 소감은?
메리 크리스마스였다(웃음). 스타일이 비슷한 (라숀) 토마스랑 좋은 경기를 펼쳤다. 경기 뛸 때는 그렇게 기록을 올린 지도 몰랐다. 심지어 힘들지도 않았다. 게임에만 집중했고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가족들의 축하 인사도 받았는지?
사실 가족들은 내가 그날 경기를 뛰었는지도 잘 모른다(웃음). 그냥 크리스마스라고 화상 통화하면서 안부를 주고받았다.
결혼했나?
아이가 5명이다. 기자는 아이가 있나? (아니 없다) 현명한 선택이다(웃음).
보기보다 부드러운 사나이
강한 인상과 코트 위 터프한 모습과는 달리 할로웨이는 매우 부드러웠고, 성숙하며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뚜렷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확실한 목표도 설정해 두었다. 이미 은퇴 후 삶까지 미리 계획한 할로웨이는 향후 고향으로 돌아가 어린 친구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성격은 어떤가?
불의를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또 성격상 파티를 하는 것보다 조용하게 쉬는 게 더 좋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업보다. 좋은 일을 하면 언젠가 내게 다시 긍정적으로 돌아오고 나쁜 일을 하면 언젠가 다시 부정적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매사 조심해서 행동하려 한다.
쉴 때는 주로 어떻게 쉬는지?
이틀 정도 여유가 있으면 첫날에 이태원이나 번화가로 나가 저녁을 먹는다. 이후 둘째 날에는 웬만하면 집에서 조용히 쉬는 편이다. 그리고 하루 휴식인데 다음 날 오전에 훈련이 없으면 혼자 가끔 맥주도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경기 전 꼭 치르는 의식이 있다고?
거창한 건 아니다(웃음). 국가 연주가 흘러나올 때 매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감사한 것들이나 대상을 떠올리며 속으로 속삭인다. 예를 들면 부상이 사라진 것에 감사하고, 오늘같이 나를 인터뷰하러 와준 기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린다. 농구는 농구일 뿐 인생은 더 크고 의미 있다.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기보다 더 성숙한 것 같다. 혹시 은퇴 후 삶도 생각해 놓은 게 있는지?
아마 어린 친구들을 돕는 활동을 할 것 같다. 물론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도 코치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젊은 선수나 친구들에게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앞으로 우리 세대를 이끌어 갈 미래 세대기에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미 지난해 재단(31‘s foundation)을 하나 만들었다. 내가 지금 말한 것들을 전부 실행에 옮기고자 함에 있어서다.
숫자 31의 의미는?
내 친한 친구가 즐겨 썼던 등번호를 따서 재단을 설립했다. 2003년 관상동맥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빅 심스(vic sims)다. 재단 프로그램에도 빅 심스 데이가 있다. ‘운동으로 육체적 건강에 이르자’라는 뜻을 내포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할 생각도 있는지?
물론이다. 현재 내 롤모델이 (서울) SK 리온 윌리엄스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다. 지금과 같이 2옵션으로 1옵션의 선수를 보조하면서 좀 더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만약 계약이 안 되면 은퇴도 고려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만큼 좋은 환경의 리그가 없지 않나. 생활적인 면에서도 한국만큼 좋은 나라는 없는 것 같다.
다시 농구 얘기로 넘어와 본인이 느끼는 4년 전 KBL과 지금의 KBL 가장 큰 변화는?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외국선수들에게 공을 넘겨주고 득점을 하기 바랐다면 지금은 각 구단에 몇 명씩 득점원들이 있다. 우리 팀으로만 봐도 이대성과 이승현은 매 경기 20점씩을 넣어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기술적으로 상당히 발전했다. 그리고 한 가지 꾸준했던 점이 있다면 한국에는 좋은 슈터들은 항상 많았다.
한국 선수들 가운데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면?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수원) KT 양홍석과 정성우다. 양홍석은 좋은 신체 조건에 BQ가 상당히 높은 것 같다. 정성우는 허훈이 없는 동안 앞선에서 좋은 활동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그 외에도 (안양) KGC 전성현은 정말 놀라운 슈터고 (서울) SK 김선형은 말할 것도 없다. 매년 꾸준하다. 반면 최부경은 처음에는 도드라지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성장 속도가 빨라 점점 더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여태껏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외국선수는?
(캐디) 라렌과 라건아다. 특히 라렌은 키도 나보다 훨씬 크고 타점도 높아 막기 어렵다. 거기다가 힘도 세다. 라건아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모두 힘든 상대들이다.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와 각오가 있다면?
해외리그 커리어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던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고 싶다. 팀에 좋은 선수가 많은 만큼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다. 또 현재 (내가) 스틸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스틸왕도 차지하고 싶다(웃음).
올 시즌 가장 견제가 되는 팀이 있다면?
SK가 가장 까다로울 것 같다. 높이에 스피드까지 갖췄다. 우리한테는 가장 힘든 상대이지 않나 싶다.
마지막 오리온 팬들에게 한마디.
경기력에 다소 등락이 있지만, 항상 응원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귀중한 시간을 내어 티켓 값을 지불하고 아이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아와줘서 힘을 받는다. 매 경기 이 마음을 잊지 않고 파이팅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
할로웨이의 밸런스 게임
인생철학이 뚜렷한 만큼 할로웨이가 균형을 이루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도 과연 확실한 결단력을 내릴 수 있을지 평가해봤다.
강을준 감독 vs 유도훈 감독
강을준 감독을 택하겠다(웃음). 후. 지금 우리 팀 감독을 저버릴 순 없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강 감독은 내게 꾸짖은 적이 거의 없다. 답답하면 통역을 통해 여러번 컨디션을 물어보는 정도다.
유도훈 감독 vs 변영재 통역
YJ(변영재 통역)다. 항상 붙어있었고 많이 챙겨줬고 결정적으로 영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 감독이 만약 영어를 했다면 선택했을 거다.
이승현 vs 이대성
아. 이건 어렵다. 경기할 때는 이승현이고, 밖에서 뭐 사 먹을 때는 이대성이 편할 것 같다. 확실히 경기 중에는 이승현이 필요한데, 이대성도 (내게) 패스를 해준다. 어렵다. 이대성이 삐칠 것 같다. 이대성이라고 하자.
자유투 능력 상승 vs 3점슛 능력 상승
자유투 능력 상승시키겠다. 내 자유투는 정말 최악이다. 그놈의 자유투 때문에 너무 힘들다.
‘최애’ 음식 치킨 없는 삶 vs 치킨만 먹는 삶
치킨 없는 삶을 택하겠다. 내겐 스테이크도 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기 vs 10년 후 모습 보고 돌아오기
무조건 10년 전으로 돌아가기. 대학에서 못했던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 더 똑똑해지고 싶다. 세상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탈모 치료 vs 10cm 더 커지기
10cm 더 커지겠다. 탈모는 크게 신경 안 쓴다. 오히려 비어있는 머리가 더 남자답다고 생각한다. 진짜 키가 커졌으면 좋겠다.
#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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