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재혁과 농구와의 인연은 5살, 어린 나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시작은 동호회 농구를 다니시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부터였다. 눈으로만 바라보던 농구에 직접 발을 내딛게 된 때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학교 친구들과 클럽 농구를 시작하며 농구에 대한 재미에 빠져들었다. 결국 5학년 겨울방학, 한재혁은 농구에 대한 부푼 열정을 안고 부모님께 선수의 길을 걷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사실 아버지는 워낙 운동을 좋아하셔서 하고 싶으면 하라고 제 편을 들어주셨는데 어머니께서 절대 안된다고 강경하게 반대하셨어요. 농구는 키도 중요한데 그것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운동 선수라는 길이 엄청 험난한 길이라는 걸 아시니까 안된다고 하셨어요.”
한재혁의 끈질긴 설득과 애원 끝에 결국 어머니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바로 학업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성적을 잘 받았어요. 틈틈이 학원도 다니면서 공부했는데 아무래도 병행이 쉽지 않더라구요. 결국 어머니께서 제 편을 들어주시고 차라리 그 시간에 농구를 하라며 온전히 농구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어머니마저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끈질기게 농구에 매달린 한재혁은 마침내 양정중에 진학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시작한 엘리트 농구가 생각마냥 계속 즐겁지는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많은 훈련량과 선배들과의 생활이 한재혁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한재혁이 속한 양정중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재혁의 농구 인생에 이른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바로 고(故)표명일 코치가 양정중에 부임하고 한재혁의 포지션을 포워드에서 가드로 전향시킨 것이다.
“포지션 변경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저는 포워드의 길로 농구를 하다가 갑자기 가드의 시선에서 봐야 하니까 계속 실수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코치님께서 훈련을 멈춰서 하나하나 움직임을 짚어주셨어요. 한 번 알려주신 걸 틀리면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사실 터닝포인트라기엔 좀 이르긴 한데 그 때 아니었으면 이렇게 길게 농구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한재혁 개인의 성장과 맞물려 팀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표명일 코치의 지도 아래 점점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조직력을 갖춘 팀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엔 '바뀌어봤자 얼마나 많이 변하겠어. 그래봤자 1, 2승 더 하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동계 훈련 때부터 선수들끼리 점점 손발이 맞아가는 게 제 눈에도 보이더라고요.”
한재혁은 당근과 채찍이 공존하는 애정 어린 지도 아래 가드로서의 기본기를 다져갔다. 악착같은 훈련으로 다져진 팀워크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들어냈다. 3학년 마지막 추계 대회 때 차근차근 승리를 쌓아가더니, 어느새 결승 무대까지 진출해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발이 척척 맞더라고요. 저희는 그냥 열심히 뛰기만 했는데, 전광판을 보면 우리가 이기고 있고 그렇게 이기다 보니까 어느새 결승에 가 있더라고요. 다들 우승은 처음 해봐서, 속으로는 날아갈 듯 기뻐하면서도 겉으로는 엄청 담담한 척했어요.”
이날 결승전에서 한재혁의 기록은 23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 5스틸이었다. 코트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 실질적인 주역은 바로 한재혁이었다.

“진짜 힘도 다르고 스피드도 달랐어요. 고등학교에서 날고 긴다는 형들도 대학 선배들에게 고전하는 걸 보면서 속으로 벽을 많이 느꼈어요. ‘이게 대학이구나’ 싶었죠.”
하지만 좌절은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2학년 추계 대회는 한재혁의 잠재력이 대폭발한 무대였다. 한재혁은 상산전자고와의 예선 맞대결에서 39점(3P 4개) 3리바운드 12어시스트 6스틸을 기록하며 말 그대로 코트를 지배했다.
“그날따라 경기가 잘 풀렸는데, 코치님도 별다른 말씀 없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셨어요. 진짜 눈치 안 보고 원하는 플레이를 다 했어요.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까지 다 하면서 제 인생 최다 득점을 올린 날이었어요.”
선배들의 공백을 완벽히 메꾸며 성장한 한재혁은 2학년 총 26경기에 출전해 평균 13.1점, 3.7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학교의 에이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눈부신 도약이었다.

“같은 동작을 해도 저만 안되는 것 같아서 캠프가 끝나고 그것만 따로 연습도 했어요. 캠프에서 새롭게 느낀 것들이 많았어요. 원 소속팀에서 못 느껴봤던 다른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베스트 5 선정은 저보다 잘하는 선수들도 많았는데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한재혁은 다른 학교 선수들과 호흡하며 코트의 야전사령관으로서 시야를 넓혔다. 빅맨을 살리는 팀플레이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또래 가드들에게 받은 자극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덧 고교 무대를 마친 한재혁은 마침내 동국대 진학이라는 값진 결실을 맺었다. 양정중과 양정고를 거치며 성장해 온 그가, 대학 무대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주황색 유니폼을 입게 됐다.

동국대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된 한재혁에게 어느 ‘운수 좋은 날’이 찾아왔다. 유독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좋은 날, 생각한 플레이가 코트 위에 그대로 드러나는 날. 그날은 개막전을 앞둔 연습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몸이 진짜 좋았어요. 그날따라 코치님도 원래 칭찬 잘 안 하시는데 칭찬도 하시고 그러다 보니까 신나서 리바운드도 더 잡게 됐어요. 그랬는데 리바운드를 뛰면서 제가 상대 선수 발 위에 발등으로 착지했어요. 발목 바깥쪽 인대 3개가 전부 끊어졌어요. 원래 아픈 티를 안 내는데 정말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어요.”
설상가상으로 병원 두 곳에서 모두 수술 판정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고민하며 찾아간 세 번째 병원에서 수술 대신 재활을 제안받고 한재혁은 재활을 시작했다.
“병원을 총 세 군데를 갔어요. 근데 맨 처음에 간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 두 번째로 간 병원에서도 100% 수술하라고 하셔서 수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병원으로 향했는데 ‘수술 안 하고 일단 재활 먼저 해보자. 재활 좀 했다가 안 되면 수술로 넘어가자’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때부터 재활을 시작했어요.”
재활을 하는 도중에도 한재혁은 농구에 대한 고민을 떨쳐낼 수 없었다.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신입생 생활이 시작해보기도 전에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병원에 큰 모니터가 있었어요. 거기서 매번 농구를 틀어주셨어요. 재활 담당해 주셨던 선생님께서 ‘너도 저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해주시면서 계속 경기를 봤어요. 솔직히 좀 약간 한편으로는 좀 조급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같이 출발하는 건데 저는 한 타임을 쉬고 동기들은 잘하고 있으니까 저도 빨리 복귀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팀 경기를 봐도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많이 앞섰던 것 같아요.”
재활 판정 당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개월. 그러나 한재혁은 빠른 회복 속도와 함께 8주 만에 복귀했다. 그리고 맞이한 첫 데뷔전, 그토록 기다리던 농구공을 잡게 됐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녹록치 않았다.
“건국대 원정 경기였어요. 전날 감독님께서 내일 경기 출전하니까 체력을 끌어올리라고 해서 끌어올렸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까 눈앞이 깜깜했어요. 너무 긴장하니까 우리 팀도 잘 안 보이고 이러다 상대편에서 패스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일부러 좀 피해 다녔던 것 같아요. 허둥지둥하다가 득점도 못 하고 어시스트도 많이 못 하고 그대로 끝났어요. 그래서 그날 많이 좌절한 것 같아요. 이러려고 빨리 복귀한 게 아닌데….”
“저는 멘탈이 좀 약해요. 한 경기 못 하면 끝없이 떨어져요. 제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다음 날 운동을 하는데 발목이 아직 아프더라고요. 그렇지만 참고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잘해서 이긴 것도 아니어서….”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던 한재혁을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선배 박승재였다.
“(박)승재 형한테 많이 많은 영향이 왔던 것 같아요.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운동했어요. 근데 그게 오히려 저한테는 더 무리가 왔던 것 같아요. 야간 운동이 자율이었는데 제가 몸이 좀 아팠는데 그냥 나갔어요. 그런데 승재 형이 ‘잠옷으로 갈아입어라. 너 나가면 우리 방 들어올 생각 하지 마라’고 하셔서 그날 하루 푹 쉬고 처음으로 온오프 생활을 해본 것 같아요.”

앞선 가드들이 졸업하자 한재혁이 그 빈자리를 메꿨다. 주전으로서 리딩을 맡으며 한층 더 많은 지시 사항을 수행하게 됐다. 한재혁이 팀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니 또 다른 고충이 생겼다. 신입생 때는 주어진 동작을 수행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그 동작을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 부여해야 했다.
“제가 싫은 소리를 잘 못해요. 근데 포인트가드라면 눈치 보지 않고 강하게 지시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웠어요. (이)대균 형이 많이 도와줬어요. 일부러 주위 선수들 조용히 시키고 제가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어요. 심지어 화내는 연습을 하라고 했어요. 네가 얘기하지 않으면 팀이 망한다고 하면서까지요.”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닌 도움이지만 한재혁이 느끼기엔 이대균의 도움이 정말 팀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한재혁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장하며 최고참이 된 올해, 한재혁은 이번 동계 훈련 무릎 부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그 기간 밤마다 KBL 전 경기를 모니터링했다. 노트에 전술을 적고 좋았던 플레이는 영상을 녹화해 팀원들과 공유하며 본인의 방식으로 팀과 하나가 됐다. 특히 본인 팀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현대모비스의 경기를 계속해서 복기하며 머릿속에 여러 패턴과 그림들을 그려나갔다.
올해 한재혁이 이끄는 동국대는 여러 이변을 만들어냈다. 대학 리그 최고 자리에 군림하던 고려대와의 맞대결 두 번 모두 승리를 가져왔다. 다만 그저 꿈이 아니었다. 한재혁은 동계 훈련 때부터 ‘작년 연세대를 잡은 것처럼 올해 고려대를 잡겠다’는 포부를 드러냈었고 실제로 이뤄낸 것이다. 한재혁은 동국대의 조직적인 농구에서 책임감을 더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나갔다.
“농구로 보면 가장 많이 바뀌고 배운 해인 것 같아요. 공간 활용이나 2대2 플레이에서의 세밀함을 배운 것 같아요. 당연히 상황별 지시하는 방법도 늘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방향에서 다양성을 공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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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혁의 장점은 집요한 성실함이다. 스스로 느끼는 보완점이 있다면 원하는 수준으로 도달할 때까지 언제나 몇 번이라도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무자비한 연습으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꾸준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출전 경기 수를 늘려오며 평균 득점(6→ 7.21→ 9.93→ 11.17)을 올렸다. 현재 평균 득점은 두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발전은 한 분야에서 그치지 않았다. 1학년 31.8%였던 3점 슛 성공률이 현재는 44%, 이는 팀 내 1순위이다. 게다가 어시스트 또한 선발 출전으로 나서지 않은 1학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팀 내 1순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그야말로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한재혁이 흘린 땀방울이 그를 배신한 적 없다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다.
대학교를 진학하고 발견한 단점을 보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러닝 테스트에서 항상 5등 안에 들어서 제가 체력이 약한지 몰랐어요. 대학교 올라가서 다시 테스트했는데 가드 중에서 꼴등 수준이었어요. 감독님께 ‘가드가 체력이 없다’며 꾸중을 듣기도 했어요.”
“체력 훈련 중에 정해진 시간 안에 30바퀴를 뛰어야 하는 훈련이 있었어요. 첫 시도에 들어오지 못하면 또다시 30바퀴를 뛰는 훈련이었는데 끝나고 앞으로의 훈련이 너무 막막했어요. 근데 덕분에 체력이 진짜 많이 좋아졌어요.”
단점을 방치하지 않고 악착같이 부딪혀 지워내려한 노력 덕분에, 한재혁은 40분 내내 안정적으로 공수를 소화할 수 있는 가드로 거듭났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그려보는 순간이 있다. KBL 입성을 꿈꾸는 드래프트 참가자들에게도 '프로 선수가 된 나'는 오래 품어온 가장 선명한 상상일 터다. 한재혁은 그 미래에서 자신이 팀의 한 축이 되는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
“팀 승리가 우선이라, 개인 기록은 솔직히 욕심내지 않으려고 해요. 팀 내에서 제가 없으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아쉬운 선수가 되는 게 목표예요.”
한재혁은 팀플레이에 기반한 이타적인 농구를 선호한다. 본인의 득점보다 동료의 찬스를 먼저 살피는 눈을 가졌다.
“동료들의 장점을 파악해서 팀이 편안하게 농구할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물론 제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나서겠지만, 그전에 제 패스 하나로 팀 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농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꾸준한 노력으로 멈추지 않은 성장세를 보인 한재혁은 이제 프로 무대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선보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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