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유희형이 쓰는 나의 삶 나의 농구⑭ 해군 군함에 몸을 싣고

점프볼 기자 / 기사승인 : 2021-12-06 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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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 유희형 전 KBL 심판위원장이 쓰는 <나의 삶 나의 농구>를 연재합니다.

1960~1970년대 남자농구 국가대표를 지낸 유희형 전 위원장은 이번 연재를 통해 송도중에서 농구를 시작한 이래 실업선수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살아온 농구인생을 독자들에게 담담하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점프볼 12월호에 연재된 글입니다.

2개월 늦춰진 제대
국가대표 농구선수 시절 항공료가 없어 대형 수송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전지훈련 갔던 추억이 있다. 호텔에 묵지 못하고 민박을 하고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는 고생을 했지만 국가가 가난했기에 감수했다. 그 후 1974년 12월 해병대 농구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공교롭게도 해군 군함을 타고 50일 동안 동남아를 원정 가야만 했다. 고난의 전지훈련이었다. 방문국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대만 4개국. 해군사관생도 졸업 훈련코스인 해양훈련단에 해병대 농구팀을 포함시킨 것이다. 만기제대를 코앞에 두고 있던 때였다.

나는 대학교 때문에 입대가 늦었다. 1972년 2월 해병대 농구팀에 들어갔다. 당시 군 팀에 입소하면 훈련소에 며칠 머물다 군번 받고 상경하면 되는데 운이 나빴다. 진해 해병훈련소에 있는 동안 사건이 터졌다. 당시 재벌인 독립산업 장손자 함모 공군 상병이 권총을 소지한 채 외박을 나와 자택에서 영화배우와 잠을 자던 중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도둑을 향해 총을 쏘았다. 죽진 않았지만, 전군이 난리가 나고 비상이 걸렸다. 상병 주제에 집에서 거주하고 권총까지 휴대한 사건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영외 거주자들은 즉시 부대로 복귀해야 했고 운동부에도 불똥이 튀었다. 진해훈련소에서 무한정 기다렸다. 국가대표선수이고 고귀한 몸이니 때리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상부 지시로 특별대우를 받았지만 훈련소 생활은 힘들고 괴로웠다. 3일 예상하고 갔던 훈련소에서 30일을 보냈다. 그 후 집에 거주하면서 대회에 출전했고 우승도 여러 차례 했다. 국내 최강팀인 것이 화근이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제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청천벽력의 이야기를 들었다. 해사 생도 해양훈련에 농구단이 합류한다는 것이다. 국가대표이며 주장인 내가 필요하다며 제대를 2개월 늦췄다. 당시 복무기간이 34개월이었다. 그동안 직장 휴직으로 수입이 없어 무척 고생했는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니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곳이 군대다.

‘해왕’이 되다
1974년 12월 진해에서 군함에 몸을 실었다. 세계 2차 대전 때 활약했던 미 군함인 85, 87함 두 척에 사관생도를 비롯한 농구단, 군악대, 의장대원 600명을 싣고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출발했다. 첫 기항지인 필리핀을 향했다. 대만 해협을 지나는데 심한 파도가 3일간 계속됐다. 바다가 요동칠 땐 멀건 죽을 준다. 음식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멀미하는 사람은 파도를 만나면 고역이다. 사흘간 물만 먹다가 나오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다. 항해 6일 만에 필리핀 수비크 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육지였다. 반가워서 환호하는데,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옆에 있던 미국 엔터프라이스 항공모함도 출항했다. 잠시 머물렀던 우리 군함도 움직였다. 그립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망망대해로 나갈 때 너무 아쉬웠고 서글펐다. 태풍을 만나면 항구에 정박해 있어서는 안 되고, 넓은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기착지는 인도네시아로 7일이 걸린다고 했다. 적도를 지나는 4일간의 바다는 무척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그곳을 지날 때 적도제를 지내야 한다며 날 보고 해왕(海王) 역을 맡아 달라고 간곡히 요청해 수락했다. 연극형식으로 시나리오도 있고 의상과 장비도 갖추어져 있었다. 며칠을 준비해서 바다에 제를 올리고, 각본대로 연기했다. 해왕제의 목적은 상관을 괴롭히는 것이다. 사병이나 생도들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장교를 고발하면 심문하고 벌칙을 주는 것이다. 대령인 함장도 예외가 없다. 해왕인 내가‘네 죄를 알렸다. 바닷물 텀벙 3회를 선고한다.’ 외치면 행동대원이 묶어 기중기로 바닷물에 집어넣는다. 모든 장교가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 모두 웃음바다가 되고 병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행사였다. 첫 경험이었지만 연기 잘했다는 칭찬도 들었다.

바다와 싸우며 항해한 지 13일 만에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도착했다. 해군기지가 있는 구도시인데, 순수하고 조용했다. 자동차 형태의 택시가 없고, 두 명을 태울 수 있는 세발자전거가 택시 역할을 했다. 깡마른 체구의 운전자가 덩치 큰 우리 일행을 태우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숙소인 군함에서 외출할 때마다 무엇인가 나누어 주는데 콘돔이었다. 입으로 풍선을 만들어 날려버렸다.


배 안에서 먹는 음식 중 두 끼가 미역국이었다. 가볍고 저렴하니 예산 절감에 최고다. 선수 중에 산부인과 의사 아들이 있었다. 미역국만 보면 뛰쳐나간다. 평생 맡았던 냄새니 오죽했겠는가! 단백질과 비타민 섭취가 부족해 입속이 헐고 빈혈을 느낀다. 이런 몸으로 농구 시합을 하라니, 어이가 없지만, 하소연할 수가 없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두 번째 도착지는 태국 방콕, 국가대표로 두 번이나 우승했던 도시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음식점도 있어 다소 나은 나날을 보냈다. 친선경기는 군과 관련된 팀과 했고, 전력도 약했다. 한 손만 가지고 해도 될 수준이었다.

세 번째 기착지 필리핀에 도착했다. 수도인 마닐라와 상륙하지 못했던 수비크에서 체류했다. 농구의 나라인 필리핀에서는 행복했다. 많은 사람이 나를 기억했고 대우도 받았다. 필리핀 팬의 집에 초대받아 접대를 받기도 했다.

군함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하루 전 외항에서 일박한다. 그때 오랜만에 목욕할 기회를 얻는다. 물이 부족해 허용 시간이 짧다. 빨리해야 하는데 샤워기가 적기 때문에 벌거벗은 상태로 아귀다툼이 일어난다. 생도는 장교인 양 사병을 다스리려고 하고 사병은 장교로 여기지 않으니 툭하면 치고받는다. 나이가 많은 내가 말리면 조용해진다.


미 7함대 본부인 수비크 항은 미국 영토처럼 풍성하고 활기가 넘쳤다. PX 물품 가격은 너무도 저렴했다. 그곳에서 전자제품도 샀다. 아키노 대통령 때 수비크와 클라크에 주둔하던 미군을 모두 내보냈다. 그 후 필리핀 경제가 무너졌다고 많은 사람이 지적한다. 70여 년간 미국 지배를 받아서 공식 언어가 영어인 필리핀, 농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필리핀이 더욱 번창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마지막 방문국은 대만이었다. 가오슝이란 도시인데 교민들이 못살았다. 군함이 도착하자, 나이 많은 교민들이 들이닥쳤다. 양담배나 인삼이 있으면 사겠다고 한다. 대만 사람들의 차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연로한 동포 할머니들의 주름살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가지고 있던 백삼 등을 모두 드렸다.

50일간의 긴 여정, 괴롭고 힘들었지만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경기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 했지만, 군대 경험 이야기는 평생 간다고 한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 사진_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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