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 모교 부임’ 계성고 박현동 교장, “농구, 삶의 지혜 배움터”

이재범 기자 / 기사승인 : 2020-09-03 17: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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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이재범 기자] “농구를 단순한, 프로에 보내는 도구가 아니라, 백세시대를 감안하면 앞으로 70년, 80년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장이라고 생각하라고 해요.”

대구 계성고는 1906년 설립되어 11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농구부가 창단된 건 1922년 즈음으로 알려져 있다. 계성고가 농구로 이름을 떨친 건 1975년 이후다.

계성고는 1975년 봄철 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경복고와 결승에서 전반 34-41의 열세를 뒤집고 81-71로 승리하며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추계 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결승에서도 대경상고와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한 끝에 76-68로 이겨 두 번째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올렸다.

계성고의 질주는 끝이 아니었다. 계성고는 전국체육대회 남자고등부에서도 우승하며 3관왕을 차지했다. 지방학교가 한 해 3관왕을 차지한 건 농구 역사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계성고는 현재까지도 대구 농구를 지키며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계성고 출신 현역 프로 선수는 맹상훈(DB), 배수용(삼성), 최승욱(LG), 임종일, 전성환(이상 오리온), 정영삼(전자랜드), 박인태(상무) 등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계성고에 지난 3월 제21대 박현동 교장이 부임했다. 계성고 67회 졸업생인 박현동 교장은 계성중과 계성고에서 농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경북대(당시에는 1975년 계성고 우승 주축 선수들을 영입하려고 노력하는 등 농구부를 운영했음)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경북대를 졸업한 뒤 체육교사와 교감, 교장을 두루 지낸 뒤 모교에서 교직생활을 이어나간다.

프로 선수 출신인 김익호, 이충암, 김태주 등 임용고시에 합격한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농구 선수 출신이 모교 교장으로 부임한 건 굉장히 특이한 경우다.

현재 대구시체육교사협의회 회장까지 맡고 있는 박현동 교장을 지난 8월 중순 계성중학교 체육관에서 만나 모교 교장으로 부임한 과정을 들었다. 다음은 박현동 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계성고 교장으로 처음 부임하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금의환향이죠. 계성고 학창시절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모교 교장으로 오면서 참 학생들에게 할 말이 많아요.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 같은 사람도 계성고 교장으로 오지 않았나? 농구를 못했다고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건 아니고, 공부를 잘 했다고 늘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매 순간 성실했고, 제 마음 속에서 계성인이라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또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계성고 동문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계성고는 저에게 더욱 남다릅니다.

언제 계성고에서 선수 생활을 하셨나요?

80년에 졸업했으니까 77년부터 79년까지죠. 계성고 67회 졸업생입니다. 계성중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계성중, 대성중, 경신중 등 몇 개 (중등부) 팀이 있었고, 고등학교는 한 팀(계성고)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선수가 많아서 고등학교에 가기도 어려웠습니다. 프로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축구와 농구는 인기가 좋았습니다. 야구까지 포함해서 학생스포츠는 다 인기가 있었던 거 같아요.

농구 선수를 하셨는데 어떻게 교사가 되신 건가요?

당시 대학 진학은 서울로 가는 부류가 있었고, 대구에선 경북대와 영남대로 나뉘었어요. 우리 선배 중에선 영남대 진학도 많이 했습니다. 서울로 가서 학업과 농구를 한 분도 있고, 저처럼 경북대에서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경북대에도 농구팀이 있었습니다. 국립대학교 체육대회에 출전하거나 전국체전에 대구대표로도 나갔죠. 사범대학이었기에 (대학을 졸업 후) 1986년 처음 교사가 되었죠.

계성고 재학 시절 성적은 어땠나요?

가만 생각해보면 3~4년 선배들이 전국대회 우승을 하고, 그 이후에는 4강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준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4강 정도 전력이었어요. 우리 밑으로 김성욱, 오규덕 등 이런 친구들이 들어와서 전력이 괜찮았어요. 그 때는 우승을 하기 힘들었어요. 전국체전 포함해서 전국 3개 대회를 초과해서 출전하지 못했어요. 선수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대회 출전 제한이 있었던 거죠.
(박현동 교장이 재학시절 계성고는 1978년과 1979년 쌍용기에서 2년 연속 우승했고, 1979년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용산고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1979년 춘계연맹전과 1978년 추계연맹전에선 4강에 이름을 올렸다.)

농구 선수 출신인데 모교의 교장으로 부임하신 게 특이합니다.

34년 동안 대구 시내 공립학교에서 쭉 근무했습니다. 체육교사를 하면서 야구 쪽에서 많이 활동했어요. 대구고등학교가 (지금은) 야구를 잘 하는데요. 2무 18패로 팀 성적이 완전 저조했던 2000년, 지금으로 치면 특기교사로 가서, 그때 당시 이범호, 윤길현, 손승락 등 이런 선수들을 데리고 첫 해 우승을 시켰습니다. 지금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를 재창단해서 다시 다졌다고 할 정도였죠.

그 이후 승진에 관심을 가지며 교원부장도 하고, 대구 안에서도 낙후된 달성군에 가서도 근무했습니다. 2010년 교감 연수를 받은 뒤 지산중학교 교감, 중국 옌타이에 가서 한국국제학교 교감을 지낸 뒤 돌아와서 칠곡중학교와 대구여자고등학교 교감 이후 경상중학교에서 교장을 지냈습니다.


이때까지는 국가직 공무원이었는데 우리 법인(계성학원)과 동창회에서 모교 출신 교장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했어요. 또 계성고가 2025년 (자율형 사립고에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되는데 이 때 교육청과 소통도 원활하게 해야 하는 여러 가지 복합된 사정으로 법인과 동창회에서 계성고 교장으로 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전 늘 마음에 계성을 품고 살고, 계성과 계성 농구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4년 남은 교직 생활을 모교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3월 부임했습니다.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를 재창단하신 건가요?

대구고등학교 야구부가 하도 못해서 재창단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야구부장, 야구감독과 코치를 모두 바꿔서 리빌딩을 했던 거죠. 대회 나가면 1승도 못하는 팀을 첫 해에 전국체전 우승을 시켰어요. 그 때 우승을 한 뒤 지금 프로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입학해 대구고등학교 황금기의 초석을 깔아놓았죠. 사람들이 저를 이야기 할 때 대구고등학교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또 야구인 출신으로 여깁니다. 그럴 정도로 야구부에 몰입을 많이 했었죠.

야구와 농구는 다르지 않았나요?

농구는 야구와 완전 다른 부분이 있지만, 제가 현장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건 아니죠. 야구는 또 농구와 달리 감독이 있고, 투수코치, 타격코치 등 코치도 3명이나 되니까, 프로로 치면 단장의 역할을 하면서 이들이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고, 같이 고민을 했었죠.

야구 외 다른 종목의 부장을 맡으신 적이 있나요?

배구 종목 부장도 조금 했어요. 저를 교직에서 알린 계기는 1996년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좋은 학생들도 많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어요. 그 때 농구도 인기가 있고, 비선출 대회도 많았기에 농구 동아리를 만들어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영남대 총장배 등 대회에 나가서 우승, 준우승을 시켰어요. 이렇게 성적을 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던 학생들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지금은 체육선생님이 된 학생도 있고, 또 방송국 PD가 된 학생도 있어요. 전 깜짝 놀랐어요. 방송국도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게 아니라 외주를 주더라고요. 대구여고 교감을 하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더라고요. 딱 보니까 그 때 동아리농구를 했던 친구였어요. 기계공고에서 동일계열 대학교에 진학한 뒤 PD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뿌듯했어요. 이런 학생들이 훌륭한 선생님이라며 제보도 하고 그래서 2002년인가 2003년에 한국교육대상을 받았어요. 이건 굉장히 큰 상이거든요. 그 수상의 밑바탕이 동아리농구였어요(웃음).

농구 관련 일을 통해서 그런 큰 상을 받으셔서 더욱 뿌듯하셨겠네요.

그렇죠. 농구협회 이사도 했어요. 농구와 늘 밀접하게 있었고, 계성고 동문회에도 관심을 가졌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농구 인기도 떨어지고, 관심도 시들해지더라고요. 안타깝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최근 계성고 농구부 성적이 조금 좋지 않습니다. 농구 선수 출신이시기에 농구부에 더욱 관심을 가지실 거 같습니다.

당연합니다. 농구부를 못 살리면 제가 동문이나 농구인들에게 맞아 죽습니다(웃음). 일단 농구부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고, 계성고도 위기에 있기에 계성고 자체도 살리고,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웃음).

계성고가 최근(2016년) 이전을 했습니다. 현재 농구 선수들은 계성고가 있던 계성중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는데요. 새로 이전한 학교에서도 곧 체육관을 지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체육관을 올해 지으려고 했는데요. 계성중학교가 (최근) 교육청에서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 재단에서 (한 번 지원을 받으면) 3년 안에는 교육청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걸로 압니다. 체육관 신설 부지가 있기 때문에 2~3년 안에 체육관을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계성고 농구부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는 자주 찾아와서 선수들에게 종종 합니다. 학부모님들께도 여쭤봤어요. 야구할 때도 그랬는데요. ‘허재 같은 농구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 농구를 시키시느냐’고요. 물론 목표는 프로에 가서 잘 하는 것이겠지만, 허재 (같은) 선수만이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계성고를 다닐 때 농구를 잘 하지 못했어요. 늘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비주류였어요. 후보 선수였지만, 교직에 들어와서 제 역할을 당당하게 하고 있지 않느냐며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삶의 지혜를 얻은 게 농구라고 말씀을 드려요.

농구는 특히 다른 종목과 달리 다른 집단에 가도 굉장히 적응을 잘 합니다. 농구는 판단을 하고 행위를 하면 늦기에 동물적으로 반응을 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생각을 한 뒤 행동하면 얼마나 더 잘 하겠어요? 농구를 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다 잘 살아요.

또 농구를 몇 년이나 하겠어요? 유재학 감독님은 아직까지 농구 코트에 계시지만, 선수 수명이 길지 않아요. 그렇게 봤을 때 농구를 단순한, 프로에 보내는 도구가 아니라, 백세시대를 감안하면 앞으로 70년, 80년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장이라고 생각하라고 해요. 지금 당장 농구를 못한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고, 또 조금 잘 한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어요. 농구장에서 배운 지혜를 가지고 삶의 현장에 나오면 남들보다 성공할 수 있고, 앞서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프로까지 진출했던 선수들이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사례도 많이 있더라고요.

김달님 선생님(효성여고 졸업 후 KB 입단)을 만나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대구교총 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자리에 격려하러 갔는데 어느 분이 효성여고 농구선수 출신이라며 인사를 시켜줬는데 아주 반가웠어요. 여자프로농구에도 뽑혔는데 키가 큰 편은 아니었는데요. 대학을 나온 뒤 임용고시에 합격했는데, 이건 농구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이래서 농구를 한 사람이 머리가 좋고, 머리가 안 좋을 수 없는 종목입니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판단을 하고, 또 기억을 해야 하거든요.

임용고시에 합격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수 시절 몸에 익힌 끈기와 집중력이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방금 한 이야기가 그겁니다. (김달님 선생님도) 좋은 대학을 나온 건 아니고, 교육대학원에 들어가서 교사자격증을 획득한 뒤 임용고시에 합격한 거든요.

마지막으로 계성고 농구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말씀해주세요.


지금 대구에 중학교 농구부는 계성중과 침산중 두 팀이 있는데요. 어떻게 하다 보니 침산중의 좋은 학생이 타지역으로 진학하고 있는데 이 원인을 파악할 겁니다. 또 농구 자체 인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이유는 프로농구에서 외국선수가 뛰다 보니 국내선수가 뛸 자리가 줄었습니다. 프로농구 인기가 농구대잔치 시절보다 없으니까 계성고 차원보다 KBL과 대한민국농구협회에서 투자를 해서 (농구를) 더욱 부각시켜야 합니다. 농구도 혁신을 해야 합니다.

야구 같은 경우 중학교와 고등학교 야구부가 창단하면 2억 5000만원과 3억 원을 3년간 지원해줍니다. 후원도 많이 해주는데요. 농구는 지방팀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투자를 많이 해서 지방농구를 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변의 관심을 받는 종목이 되기 바랍니다. 예전에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 지인들에게 계성중, 계성고 농구부 테스트를 받게 해달라고 전화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야구가 그렇거든요. 농구는 엔트리를 못 채우는 팀도 나오고 있는데 주변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농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_ 이재범 기자

점프볼 / 이재범 기자 sinae@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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