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농담(籠談)] 여자농구 대표 팀 감독 전주원

기자 / 기사승인 : 2021-01-27 17: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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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4일, 나는 춘천에 가서 여자프로농구 경기를 취재했다. 우리은행의 코치,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여자 대표 팀의 감독인 전주원이 아직 현역일 때다. 전주원은 신한은행의 리더였고, 상대는 공교롭게도 우리은행이었다. 신한은행이 68-56으로 이겼다. 전주원은 15득점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나는 이때 중앙일보 체육 면에 실을 기사를 준비하면서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1992년 스페인 비고에서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전주원이 한국 대표 팀의 리딩 가드를 맡았다. 한국은 탈락했다. 정은순이 인성여고 동기 유영주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 때 전주원은 골똘히 다음 경기를 지켜봤다. 브라질과 호주의 경기. 스무 살 처녀의 시선이 당시 33세의 브라질 가드에게 박혔다. 오르텐샤 마카리. 브라질을 94년 세계선수권 우승과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로 이끌었고, 2002년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이다. 전주원은 당시 현대 이문규 감독에게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묻곤 이름을 적어두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전주원은 33세의 리더가 되어 자신만의 전설을 쓰고 있다.”

‘이름을 적어두었다.’고 썼지만 틀렸나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전주원은 이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현대의 이문규 감독은 세계농구의 흐름을 알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비고에 갔다. 전주원이 그에게 몇 번이나 브라질 선수의 이름을 확인해서 나도 외우게 됐다. 이때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오르텐샤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당시 대표 팀의 감독을 맡은 정주현 선생이었다. 한국이 베이징에서 중국을 누르고 199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낼 때 사령탑을 맡은 분이다. 정 선생은 우리 선수들에게 “브라질의 저 선수를 잘 봐두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브라질과 호주는 바르셀로나로 가는 티켓 한 장을 놓고 격돌했다. 3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에서 오르텐샤는 43점을 기록했고, 브라질은 99-97로 이겼다.

내가 기사를 쓴 뒤 다시 15년이 지났다. 선수로서 슈퍼스타였던 전주원은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녀를 ‘전주원’이라고 부를 수 없다. 마땅히 ‘전주원 코치, 전주원 감독, 전주원 선생’으로 불러야 한다.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전주원이라고 적는다. 그의 성숙과 성공을 생각하면서 또한 내가 흘려보낸 시간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덧없이 늙어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나는 전주원이 선일여고 학생일 때 처음 그녀를 만났다. 그때 이미 성숙한 농구를 했고, 성숙한 사고를 했다. 여러 면에서 남다른 선수였다. 그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입단한 팀은 현대산업개발이다. 현대는 전주원이 1번 자리를 맡은 그해 농구대잔치에서 창단 이후 처음으로 라이벌 삼성생명(삼성의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을 이겼다.

오늘 전주원이 대표 팀의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함을 느낀다. 그녀가 대표 팀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갈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우리 여자 농구는 국제무대에서 상위권을 누비던 전성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아시아의 경쟁자인 중국이나 일본은 내가 보기에는 우리보다 강하다. 대만도 쉽지 않은 상대다. 물론 전주원 감독이 대표 팀을 지휘해야 할 무대는 도쿄올림픽이다. 현재로 보아서는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릴지 알기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러나 나는 전주원 감독이 대표 팀에서 훌륭한 경력을 쌓기를 기대한다. 우리 여자농구가 다시 아시아의 정상으로, 세계적인 강호로 복귀하는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스타의 운명을 타고난 그녀의 농구가 더 높은 곳에서 꽃을 피우기를 희망한다.

우리나라 농구대표팀의 첫 여성 감독. 진심으로 축하한다.


허진석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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