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웅‧허훈 빛날수록 높아지는 허재의 위엄

김종수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21-12-02 01: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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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KBL에서 가장 핫한 스타를 꼽으라면 대다수 농구팬들은 단연 원주 DB 허웅(29·186㎝)과 수원 kt 허훈(26·180㎝) 형제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각각 자신이 속한 소속팀의 간판 스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대외 활동을 통해 농구를 알리는 홍보대사로 맹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KBL 대표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농구 형제로 이를 입증하듯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도 나란히 1, 2위를 달리고 있다. 허웅의 최다득표 가능성이 유력한 가운데 3위와의 격차가 워낙 큰지라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1, 2위는 이대로 굳혀질 가능성이 크다. 그야말로 허씨 형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올시즌 허웅은 기량적인 면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과시중이다. 평균 17.1점, 2.7리바운드, 3.9어시스트로 모든 부분에 걸쳐 개인 커리어하이를 찍을 기세다. 득점같은 경우 전체 7위, 토종 1위다. 4개에 육박하는 어시스트 역시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현재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로 인기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가고 있다.


사실 그간 허웅은 충분히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동생 허훈의 그늘에 가린 느낌이 강했다. 허웅이 리그 상위권 2번이라면 허훈은 최고 1번을 넘어 KBL 최고 가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허웅은 한계가 있다‘는 혹평도 적지 않았으나 기존에 잘하던 ’오프 더 볼 무브‘는 물론 돌파, 패싱능력 등에서도 발전을 보이며 스스로 벽을 깨고 있다.


아쉽게 패하기는 했지만 1일 LG전에서는 본인의 프로 무대 한 경기 최다인 39득점(종전 35득점)을 폭발시키며 물오른 득점 감각을 과시했다. 문제는 현재의 활약을 꾸준히 이어가야한다는 점이다. 아직 16경기 밖에 치르지 않은지라 부상 변수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않다 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의 컨디션 유지가 중요하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허훈은 여전하다. 비록 부상으로 인해 아직 4경기밖에 치르지 못했지만 평균 16.8득점, 2.3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금새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탄력넘치는 움직임을 바탕으로한 돌파와 어디서든 적중시킬 수 있는 3점슛, 미들슛을 갖춘 만큼 경기를 치를수록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듀얼가드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듯 허웅, 허훈 형제의 활약이 커갈수록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다름아닌 부친 허재(56·188㎝)다. '농구 9단', '농구천재', '농구대통령' 등 여러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현역 시절 매우 빼어난 선수였다. 단순히 잘한 수준을 뛰어넘어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테크니션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타 종목 선수들을 제치고 남자 선수 대표로 페어플레이 선서를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 스포츠 최고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허재는 중앙대학교 시절부터 성인 무대를 맹폭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180cm후반 빅맨이 다수 뛰고 있던 시절, 그만한 사이즈를 가진 가드의 출현은 상대팀 입장에서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화려함과 안정감을 두루 갖춘 드리블 실력을 바탕으로 내 외곽을 휘젓고 다녔던 그를 국내 수비수가 일대일로 제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계같은 득점 능력에 포인트가드도 겸할 정도로 넓은 시야와 패싱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던지라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게임을 지배하기 일쑤였다. 거기에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 각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들이 함께하며 시너지 효과가 극에 달했다. 실업농구 최강의 왕조가 만들어진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했다.

 

 


국제대회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오랜 기간 에이스로 활약했다. 1990년 8월 18일 있었던 제11회 아르헨티나 세계선수권 대회 이집트전에서 54득점을 기록하며 한국의 117-115 승리를 이끈 것을 비롯 94년 대회에서는 스틸 1위를 포함해 득점, 어시스트 등에서 고르게 활약하며 당시 유럽 최고의 선수로 꼽혔던 토니 쿠코치(크로아티아)로부터 "한국 팀 9번 선수(허재)가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중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다"는 말까지 들었다. 당시의 활약에 고무된 NBA 신생팀 밴쿠버 그리즐리스에서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국내 기준 워낙 라이벌을 찾기 힘든 독보적 테크니션이었던지라 다소 나태한 모습도 노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한번 승부욕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1995~1996 농구대잔치 시절 고려대학교의 대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려대는 막강한 멤버를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있었는데 현주엽이 승리 인터뷰에서 "전승으로 우승하고 싶다"는 발언을 내뱉은 바 있다. 이는 다소 무기력한 상태에 있던 노장 허재를 자극했다. 허재는 다음 경기에서 고려대를 그야말로 무참하게 박살냈다.


당시 기아자동차의 전략은 단순했다. 허재를 이용한 일대일 공격이었다. 이같은 패턴은 전반을 넘어 후반 초까지 계속됐다. 장기인 파워 드라이브인은 물론 스탑 점프슛에 외곽슛까지 펑펑 터트리며 고려대 진영을 전방위로 폭격했다. 결국 후반 중반 경을 넘어가면서 고려대는 사실상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프로화가 되던 시점에서 허재의 전성기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었다. 특유의 센스는 여전했으나 운동능력, 체력 등 신체능력 자체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던 1997~1998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는 다시 한번 사고를 친다. 당시 소속팀 기아는 주전 센터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를 클리프 리드 한명 밖에 쓸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상대팀 현대는 한창 물이 오른 '이조추 트리오'에 조니 맥도웰, 제이 웹의 외인 트윈타워가 건재했다. 노장 중심의 기아가 외인 센터가 없는 상태로 최강 전력의 현대에 맞서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해보였다. 워낙 전력차가 컸던지라 일방적인 시리즈가 될 것이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기아는 아쉽게 패하기는 했으나 7차전까지 가는 대혈전을 펼치며 현대를 턱밑까지 위협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노장 허재가 있었다. 허재는 플레이오프 들어 이를 악물었고 외인 포함 실질적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다. 시리즈를 치르면서 오른손이 골절됐고, 발목과 허벅지에도 부상을 당했다.


5차전에서는 맥도웰의 팔꿈치에 맞아 눈썹 부위가 찢어지는 등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허재는 간단한 지혈만 마치고 코트에 나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등 전천후로 맹활약을 펼쳤다. 현대의 두 외국인 사이를 뚫고 득점을 성공시키는가하면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한 패싱플레이를 통해 팀 전체를 이끌었다. 그 결과 준 우승팀 선수로는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 MVP에 오르는 위엄을 토했다.


허재의 전성기를 지켜본 팬들은 그의 여러 가지 능력 중 볼을 오래 만지면서 상대 코트를 공략하는 감각은 허훈이, 볼없는 움직임 위주로 간결하게 득점을 올리는 능력은 허웅이 가져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전체적 완성도에서는 허재에 미치지 못한다. 거기에 허재는 어지간한 퓨어 1번 이상의 시야와 리딩능력, 패싱센스가 있었다.


거기에 사이즈도 두 아들보다 더 컸다. 신장이 살짝 아쉬운 허웅, 허훈 형제와 달리 당시 허재는 신체조건만으로도 리그 탑급이었다. 아들들이 잘할수록 허재의 위용도 함께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아버지로서의 허재는 두 아들이 자신을 뛰어넘기를 바랄지도 모를일이다.

#글 / 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 / 유용우 기자, 한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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